2024년 5월 11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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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사랑으로 채우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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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사목국 [papangelus] 쪽지 캡슐

2007-07-04 ㅣ No.146

 

ANGELUS

Place Saint-Pierre
Dimanche 1er juillet 2007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번주 복음말씀을 요약하면 ‘자유와 그리스도를 본받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사가 루카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9,51)고 전합니다. ‘마음을 굳히셨다.’는 표현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유로운 결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이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성부의 뜻에 순종하여 사랑으로 자신을 내놓았습니다. 성부께 대한 순명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자유를, 사랑으로 움직여진 의지적 선택으로 현실화하였습니다. 누가 그분보다 자유로우며, 누가 그분보다 전능하십니까? 그분은 자신의 자유를 멋대로 쓰거나, 남을 지배하는데 쓰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섬기는데 그 자유를 쓰셨습니다. 그분은 무언가를 할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채 ‘남아있었을’ 자유를 섬김으로 ‘채우’셨습니다. 인간의 삶처럼 자유도 사랑안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습니다. 누가 가장 자유롭습니까?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 자신을 섬김과 봉사에 '굳건히' 내놓는 사람, 자신이 주고 받은 사랑에서 삶의 충만을 찾는 사람이 아닐까요?


 오늘날 터키 지역인 갈라티아 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갈라5,13) 육을 따라사는 것은 이기적인 본성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행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도되도록 맡겨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라 그분의 은총 안에서 십자가 희생에까지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자신의 자유의 정점이요 사랑의 정점을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셨습니다. 갈바리아에서 사람들이 ”당신이 만일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보시오!“라고 소리칠 때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성부의 자비로우신 뜻이 완성될 때까지 견뎌내심으로써 하느님 아들로서의 자유를 보여주셨습니다. 수많은 진리의 증거자들이 이러한 경험에 동참하였습니다. 수많은 남녀들이 감옥과 고문의 위협아래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자신들의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에 속한 이는 다른 권위의 노예가 되지 않고, 항상 형제들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모두 영적 삶의 모범이신 성모님을 바라봅시다. 모든 죄에서 자유로우신 그분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섬김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성모님 어머니로서의 고독 가운데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진리를 알고 사랑 안에서 자유를 살도록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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