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월)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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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수님께서 삶과 죽음의 주인이시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생생한 증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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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사목국 [papangelus] 쪽지 캡슐

2008-03-12 ㅣ No.168


사순 제5주

2008년 3월 9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사순 제5주인 오늘 복음은 라자로의 부활(요한 11,1-45)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행하신 마지막 ‘표징’입니다. 이후에 대사제들은 산헤드린에 모여 예수님을 죽일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삶과 죽음의 주인이시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생생한 증거자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참 사람이시요, 참 하느님이심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복음사가는 마리아, 마르타, 라자로와 예수님의 우정을 강조합니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매우 사랑하셨고”(요한 11,5), 그들을 통해 커다란 기적을 완수하고자 원하셨음을 알려줍니다. 그분은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요한 11,11)고 제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죽음을 마치 잠든 것처럼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죽음에서 깨우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이 죽음 앞에서 절대적인 힘을 보여 주십니다. 과부의 외아들(루카 7,11-17)과  12살 소녀에게 생명을 되돌려 주실 때(마르 5,35-43)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조소를 받으면서도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마르 5,39)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육신의 죽음은 잠든 것과 같고, 하느님은 우리를 언제든지 다시 깨우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주권이 이별의 고통을 참되게 연민하는 것을 막지는 않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러 온 이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한 11,33-35).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을 함께 가지셨습니다. 그분 안에는 하느님과 사람이 분리도 혼동도 없이 완벽하게 만나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모상, 아니 하느님의 육화이십니다. 그분은 하느님 사랑과 자비, 어버이의 마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생명이십니다. 때문에 그분은 마르타에게 장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한 11,25-26) 이 질문은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시고, 우리의 이해 능력을 넘어서는 질문입니다. 마치 그분이 아버지께 의탁하듯이 우리도 그분께 의탁하기를 요구하는 질문입니다. 마르타의 대답은 하나의 모범이 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요한 11,27)

  그렇습니다. 주님 ! 우리도 우리의 의구심과 어둠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우리 안에 참된 생명과 빛과 평화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께 이 기도를 맡겨드립니다. 성모님의 전구는 어려울 때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과 희망을 더욱 강하게 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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