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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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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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2-02-07 ㅣ No.29575

                             신부님의 유머

 

 

 

 

 신자 생활을 제법 오래 한 덕에 나는 꽤 많은 수의 신부님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대전교구 신부님들만 만난 것도 아닙니다. 타교구와 수도회, 군종교구에도 아는 신부님이 계십니다.

 

 신부님들을 처음 뵐 적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부님들의 인상이 한결같이 온화한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그렇습니다. 신부님들의 얼굴에서 한결같이 선량함과 따뜻함을 느끼는 거지요.

  

 신부님들 중에는 유머를 즐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아니, 신부님들은 거의 모두 유머를 즐기실 걸로 생각됩니다. 물론 성격이나 취향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유머를 싫어하는 사제는 한 분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태안 본당 신부님은 유머를 참 잘하십니다. 특히 미사 강론 중에 유머를 곧잘 하셔서 신자들이 즐겁게 웃으며 미사를 지내는 날이 많습니다. 강론을 유창하게 썩 잘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신자들이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유머를 구사하신다는 것은 신부님의 타고난 성품이기도 하고 장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지난 1월초 우리 본당 출신 방 부제 (얼마 전에 발표한 「향기 나는 방부제가 되겠습니다」라는 글의 주인공) 님이 부제 서품을 받고 와서 본당에서 미사를 도우면서 첫 번째 강론을 했던 날도 신부님의 한마디 때문에 온 성당 안이 폭소로 뒤덮였지요. 방 부제님이 강론을 마치고 나서 잠시 묵상을 한 다음 모두 사도신경을 바치기 위해 일어섰을 때였습니다. 신부님이 부제로서의 첫 번째 강론을 잘한 방 부제님을 위해 모든 신자들께 박수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박수를 치고 났을 때 신부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신세 조진 날인데…."

 

 신부님의 그 말이 하도 우스워서 나도 큰소리로 맘껏 웃었습니다만, 한 순간 아릿한 안쓰러움 같은 것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부님이 언젠가 자신의 사제 서품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사제로 서품된 날을 ’신세 조진 날’로 표현해서 많이 웃었던 일도 냉큼 상기되었고….

 

 지난주 목요일에는 더욱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본당에서는 매주 목요일에는 평일미사를 오전 10시 30분에 ’레지오 단원들을 위한 미사’로 지냅니다. 레지오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는 본당이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목요일의 평일미사에 참례하곤 하지요. 그런데 지난주 목요일에는 많은 신자들이 어느 정도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하루 전에 열 여덟 분의 새 사제가 탄생하시는 교구 사제서품식에 우리 신부님도 참석하시고 돌아오신 것을 아는 탓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해마다 사제서품식이 끝난 자리에서 주교님께서 직접 ’사제 이동’을 발표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까닭이었습니다. 즉, 우리 신부님이 우리 본당에 오신지 벌써 3년이 되어서, 기간으로 본다면 사제 이동 대상에 포함되는 처지라서….

 

 신자들의 궁금증을 헤아리기라도 하신 듯 신부님이 강론 시간에 드디어 운을 떼었습니다. 새로 나신 신부님이 열 여덟 분이나 되지만, 아쉽게도 우리 본당에 보좌신부로 오시는 분은 한 분도 없다는 말을 하시고는, "저도 인사 발령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신부님의 이동에 관한 말은 전부터 일체 없었던 터라 설마 싶으면서도 모든 신자들은 일순 바짝 긴장할 수밖에…. 잠시 동안 성당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저는 태안 성당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라는 신부님의 말이 들리자마자 와!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큰 박수소리가 온 성당 안을 뒤덮었습니다. 신부님이 3년만에 다른 곳으로 가시지 않고 앞으로 2년은 더 우리 본당에 계시게 된 사실을 온 신자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미사 후에 신부님께 "사람을 그렇게 놀래키는 법두 있대요?"라고 항의(?)를 하기도 했고….

 

 우리 신부님이 이렇게 온 신자들로부터 인기를 누리는 것에 별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늘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 강론 시간에 신자들을 비난하거나 야단치시기보다는 격려해 주시는 태도, 평일 미사 후에 한 번도 일찍 사제관에 들어가시는 법 없이 신자들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성당 문 앞을 지키시는 모습 등이 신자들에게 친근함과 정다움을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신부님이 평소에 즐기시는 유머일 듯싶습니다. 별다른 뜻이 있는 유머인 것은 아니고, 대개는 충청도 사투리를 활용하는 단순한 유머지만, 신부님의 유머가 신자들과의 사이를 얼마나 가깝게 하고 밀착시킬 수 있는가를 잘 입증해 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신부님이 늘 잃지 않고 있는 온화한 미소와 유머는 일단은 타고나신 성품 탓일 테지만, 그것은 우리 성당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듯싶습니다. 사제에 대한 신자들의 전폭적인 사랑과 존경―그것의 돈독한 분위기가 우리 신부님으로 하여금 더욱 온화한 미소와 유머를 지니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는 얘기지요.

 

 사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우리 신자들의 몫입니다. 사제를 만들어 내는 것도, 사제의 성품(聖品·性品)을 지켜 주는 것도 신자들의 몫이고 의무입니다.

 

 나는 매일같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제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을 위한 묵주기도를 5단씩 바치며 사시는 어머니를 보며 내 마음을 가다듬곤 합니다. 오랜 세월 올곧한 신앙 생활 속에서 많은 신부님들을 새로 맞고 보내고 하다보니, 때로는 인간적으로 섭섭함을 안겨 주신 신부님도 있었지만, 신앙 생활에 장애를 받은 적도 없었고 신자로서의 본분을 잃은 적도 없었지요.

 

 오늘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사제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우리 평신도들의 몫임을…. 그리고 사제들의 좋은 성품을 만들어 드리고 지켜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 평신도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존경임을….

 

 오늘 이 ’굿 뉴스’ 게시판에 어지럽게 오르는 사제들에 관한 글들을 보면서 그것의 본질적 가치들을 생각해 본 끝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는 성직자 수도자들에 대한 일반 신자들의 뜨거운 사랑과 존경, 그리고 보살핌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

 

 

 2002년 2월 7일

 충남 태안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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