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자유게시판

신부님 고백합니다.

스크랩 인쇄

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1-12-09 ㅣ No.27345

 그동안 저의 성당에서 묵묵히 사무원일을 참도 열심히 해주었던 한 자매님이 오늘 저의 성당에서 혼배미사를 드렸고 저는 거기에 참석하고 오는 길입니다.

 

하객으로 오신분들이 전부 신자가 아닌 관계로 대개가 그러하듯이 다소 시끌벅적한 분위기속에서 혼배미사가 치루어졌습니다.

 

12월 4일...그간 저의 비닐하우스 본당에 부임하시어 참도 많은 고생을 하시다 드디어 이쁘고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 수색성당으로 자리를 옮기신 전 주임신부님께서 친히 오시어 미사를 주관하셨습니다.

 

늘 뵙던 신부님이 이제는 타본당의 주임신부님이 되신채 저의 성당을 방문해주시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서글픈 마음도 없지않아...아니, 아주 많이 일더군요.

 

늘 그자리에 앉아서, 혹은 서서 미사를 집전하시던 분이 이젠 낯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이 정말로 서글퍼짐을 감출수는 없었습니다.

 

이곳 게시판에서 떠나시던 수녀님을 스타(?)로 만들어드렸고(야구방망이든 수녀님), 보좌신부님도 멋지게 부각시켜주었건만(피아노치는 남자가 아름다워) 죄송스럽게도 정작 주임신부님은 떠나셨음에도 특별히 홍보를 못해드렸으니 은근히 죄스러운 마음도 생기고 말입니다.

 

그래도 간간이 소개는 드렸던것으로 위안을 삼을까 합니다.

 

떠나시는 마지막 주일날 친히 사제관을 방문하여 신부님께 인사를 올릴때 신부님의 얼굴에는 못내 아쉬움이 그득했었던것을 전 놓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시끌했던 환송식이 끝난후 홀로 사제관에 남으셨을때는 많은 아쉬움에 두손을 합장하셨으리라 추측해봅니다.

 

처음 비닐하우스로 부임하셔서 막막하기만했던 성전건립이라는 중책을 어깨에 지웠을땐 참 갑갑하기도 했었을겁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으려던 신부님도 몇년전 한참 장마가 질때 비닐하우스 성전에 비가 몰아쳐 성전이 수장이 될뻔했을때 잠든 새벽에 홀로 나오셔서 그 많은 비를 그대로 맞으시며 물꼬를 트고 일일이 허술하기만했던 그 성전을 지키시느라 잠도 못주무시더니 그 다음주일날 어쩌면 처음으로 저희들에게 역정도 내보이셨던 신부님.

 

그 역정에 저희들은 몸둘 바를 모를정도로 많은 반성도 하게 하였던 신부님이셨지요.

 

항상 멋드러짐을 좋아하시는 관계로 뭐든지 최고가 될려고 퍽도 노력하셨고 어떤 행사에도 저희는 타본당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그렇게 최고로 치루곤 하였었지요.

 

하다못해 초등부 주일학교 여름캠프때도 초호화판 앰프를 들고가 타인들을 놀라게도 하셨던 그런분이셨습니다.

 

새성전을 지었을때 오르간만큼은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신다며 많은 신자들의 반대를 무릎쓰고도 기어코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셨던 그 멋스러움.(그때 신부님도 기억하시겠지만 전 추석날 사제관에 놀러가 파이프 오르간 설치에 적극 찬성했었습니다.)

 

결국, 처음엔 반대하였던 몇몇의 신자들도 파이프 오르간의 선율속에 내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돌아섰고 지금도 저의 성당엔 미사때 어렵지 않게 파이프 오르간의 선율이 흘러나오곤합니다.

 

그렇다고 그 신부님이 겉멋에만 치중했던 신부님이었다면 전 아마 이런글을 감히 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항상 저희들의 작은 의견에도 귀를 열어주셨고 보잘것 없는 제게도 많은 기회를 열어주셨던 분이셨지요.

 

그 신부님과 가장 기억에 남는 저와의 첫 대면은 제가 이동네로 이사오면서 그간 한참 냉담에 빠져있던 제가 다시 하느님의 콜싸인을 듣고 재등판(?)하였을때 약 4년만에 성당이라는곳을 처음 찾았더니 그곳이 바로 늘 말해오던 비닐하우스 성전이었지요.

 

그 전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이었는데 오랜만에 찾았더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으로 바뀌었었고 주기도문을 비롯한 몇몇의 기도문의 문구가 살짝 바뀌어있어 처음엔 당황도 했었지요.

 

신도시에 이주민들이 날로 늘어나는 관계로 신부님은 미사중 공지사항때 항상 오늘 처음온 신자분들을 손들게 했고 박수로 맞이하곤 했었는데 제가 4년만에 미사를 올렸던 그날도 역시 손을 들게 하더군요.

 

맨뒤쪽에 앉아 전 끝까지 손을 안들었더니 신부님께서는 "이쪽줄 끝쪽에도 처음보는 분이 있는것 같은데 손을 안드시네요?"하고 말씀하셔서 전 화들짝 놀라며 스스로 빠알개진 얼굴로 변하며 누가 이기나보자! 하는 식으로 끝까지 손을 안들고 버티었던 기억이 납니다.

 

훗날 신부님과 함께 자리하며 이 이야기를 나누면 신부님께서도 허허 하고 웃곤 했었지요.

 

다시 신앙을 되찾는데 많은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해주셨던 신부님이셨습니다.

 

전에도 밝혔듯이 제가 축구부를 만든다는데에 주저없이 협조해주셨고 신부님과 전 함께 술자리도 많이 하며 그렇게 배움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어떤일이 닥쳐도 전 결코 또다시 주님을 등돌릴 일은 결코 없을것입니다.

 

어쩌면 4년간의 냉담이 저에겐 큰 보약으로 작용할것이고 이것 역시 하느님의 각본에 의해 진행된 저에겐 아주 소중한 경험과 사랑이라고 감히 자부할수 있습니다.

 

떠나실적 사제관을 찾았더니 저와 악수를 하시며 결혼해서 신방을 수색쪽에 얻으면 수색성당으로 와라! 그러면 청년 분과 위원장 감투를 당장 주마! 하는 공약도 펼치셨지만 글쎄요. 그것은 장담할 수 없겠네요? *^^*

 

집에서 시동을 켜고 자동차를 부릉~하고 움직이면 정확히 8.3㎞에 위치한 곳에 수색성당이 자리하고 있지요.

 

출,퇴근하며 늘 볼수 있는 곳이지만 언제 제가 그곳에 들러 인사를 올릴지는 확신은 못해도 아마도 제 평생 모셨던 신부님중 가장 친근함을 느낄수 있었던 신부님이실것입니다.

 

물론 제가 결혼을 하게되면 이미 주례신부님으로는 섭외를 해놓은것은 당연하고요.

 

오늘 혼배미사중 늘 계시던곳에 계셨던 그분이 이젠 낯설어 해야 하는 이상한 처지에 마음이 심란하여 이렇게 신부님의 안녕과 건강을 게시판을 통해 몇자 적습니다.

 

신부님! 다시한번 신부님의 앞날에 건강과 주님의 사랑이 늘 깃들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신부님! 비록 제가 남자라서 유감이시겠지만 그래도 신부님께 늦게나마 고백하건대,...

 

 

 

신부님 사랑합니다!!



2,48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