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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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야 죽기전에는 만나겠제?♬~순롓길181처(경주관아옥터/진목정성지/구룡공소/명례성지/김범우순교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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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2-08-03 ㅣ No.10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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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9일(토요일) 새벽 5시42분에 출발하여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대구교구의 마지막 남은 경주와 청도를 향해 달음질한다.

어릴때 초등학교 5학년무렵 밤잠 설쳐가며 수학여행갔던 경주땅을

도대체 몇십년만에 다시 디뎌보는 걸까? 괜스리 가슴이 콩닥거릴 정도이니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란 말이 실감나네...


경주에는 불국사, 석굴암. 토함산이 있는 옛 신라 구중궁궐 문화만

자리하고 있는줄 알았는데 신앙의 젖줄 순교자들의 혼 이배인 거룩한 땅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게되었으니.... 우물안 개구리의 현실상황 파악해본다..


오늘도 하늘은 잔뜩 웅크려 있고 부슬부슬 부슬비까지 오락가락하는 새벽

6시 너머의 시간을 입이 찢어져라 하품해대며 무색한 조수석에 앉아간다.

지난밤 11시 넘어까지 오늘 준비해갈 김밥이며 음식들 준비하느라 새벽

3시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겨우 2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던 것이다.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타며 이천*호법진입 분기점에 이르면서 잠깨우기위해

오늘도 이야기 나누다 보니 뜬금없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의 이야기까지

나누게 된다.


"반석 아부지~ 알파고와 이세돌이 4대1로 승패를 가누었다 카는데

도대체 알파고등학교 우떤 아~아가 그리 머리가 좋은기요?

이세돌이도 진짜로 머리가 좋고 만만찮타 더만서도..."

반석아부지가 젊잖게 일러준다. 그게 아니라고...ㅋㅋ


황창연 신부님의 특강 속 대화중 1차산업 2차산업 3차산업 4차산업의

시대를 겪어오며 지금 우리나이의 사람들은 3차~4차 산업의 혼동속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다고.... 100살까지 살아가려면 공부해야 된다는 말씀을

하며 컴퓨터와 인공지능시대의 어정쩡한 삶을 나누다 생긴 웃기는 대화였다.


다시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타고가는 중에 충주를 지나고 괴산 휴게소가 보인다

잠시 내려 화장실도 오가며 휴식을 취하다 괴산의 춘복씨를 전화로 불러낸다.

"예! 회장님 안그려도 전화할려 그랬시유~"

"엉? 우리가 지금 괴산지나가는걸 어째 알았어?"

"예? 지는 새벽에 내유동 도착해서 지금 잘계신가하고 전화할려했지유~~"

ㅋㅋㅋㅋ

평소 이웃사촌처럼 지내던 춘복씨였기에 이심전심 텔레파시가 시공을

넘어 날아다니는 줄로 착각했네...


충청도의 괴산과 경북의 문경을 잇는 터널 하나를 건너왔더니 터널넘어

우중충 부슬비는 싸악 걷혀버리고 해가 반짝이는 이 날씨는 참으로 요상하다.

상주~영덕고속도로를 또 갈아타고 가는 9시 3분의 시간에 베로니카여사의

커피향 죽여주는 얼음커피로 정신을 차려가며 달리고 또 달린다.


10시16분 경주 톨게이트역을 통과한다 기와로 단장된 서라벌의 심볼을

지나며 서라벌 옛터저언에~~ 연꽃이 이울어라~♬의 김대건신부님의 노래가

흥얼흥얼 흘러나오는 걸 보면 역시 피는 못속이는 천주교인 인것이라~~ㅎㅎ


경주감영을 찍고 간 주소엔 성건성당이 자리하며 스템프도 그곳에 마련되어 있더라.

감실안 예수님께 오늘도 인사드리고 경주땅을 보호하고 계신 성모님께도 촛불

10개 밝혀드리며 모두의 안위와 신앙을 빌어드렸다.

오늘찾아가는 경주감영과 옥터를 찾아 나선다.

경상감영은 조선시대 경상도관할하던 관청이다. 현대의 도청과 같은 역할을 했다.

현재는 경상감영공원으로 공원화되어 있다.

 

경상감영은 경상도 일대의 순교자들의 신앙 증거터이다.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가 배교하였다가

김종한 안드레아의 권면으로 다시 신앙을 증거하고 장사한 곳이며, 밀양 출신의 신석복 마르코가

혹형을 받고 순교하는 등 많은 교우들이 혹형 속에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곳이다.

 

지리적 위치가 경상도의 정 중앙에 위치해 경상도 전체를 통합하는 데 있어

입지 조건이 이롭다는 점을 들어 후에 대구로 옮겨 대구의 대안성당이 관리하고

있음을 지난 순례길에서 또 만났던 곳이다.

옥터는 근처 우방아파트 단지내의 한귀퉁이 땅에 조촐하게 꾸며져있는

소박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앉아 있어 잠시 고개숙여 인사하고 11시 51분

산내면 산속깊은 곳 진목정성지를 향해 또 달린다.

 

병인박해때에는 울산 살티에 모여 살던 허인백야고보,이양등베드로,김종률루가

가족이 더 안전한 곳을 찾아서 이곳 산내면 소태동 범굴에 피신해살았다. 그후 세분이

체포되어 약 세달간 모진고문을 받은뒤 울산 장대에서 순교하였다. 순교자들의

유해는 허인백의 아내 박조예가 눈을 피해서 순교소 인근 외진곳에 묻어두었다가

진목정 신자들의 도움으로 교우촌 뒤편 도매산에 합장했다.가 1973년 대구 신천동

복자성당으로 모시고 광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한다.

현재 이곳에는 순교자들이 숨어살던 범굴과 진목정공소와 세분의 순교자를 합장했던

묘지가 있다. 대구교구는 세분의 순교정신을 기리고 본받기 위해 순교자기념성당을 지어

봉헌하였고, 뒤편에 납골당인 하늘원을 조성해서 죽은이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한다.

이곳 또한 성전에 들어가 십자가의 예수님께 인사올리고 나와, 성가정 가족들께 인사하고

저 꼭대기 순교현양비를 둘러보고 , 세분의 무덤을 찾아 내려가 절하고, 

뙤약볕아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다. 볕은 따갑고, 길은 경사지고...무릎꿇는 12처는

진짜 힘들다.

12시59분에 내려오다 그 아래 진목공소라고 팻말이 붙은 좁은 길을 300미터 들어가니

처음의 교우촌 사람들이 예배드렸던 곳이었던가 보다 . 신발을 벗고 올라가니 우리집

겨울동안 깔려있던 낯익은 카페트가 두장씩이나 깔려있어 친근감과 함께 안기는 향수?다.

문앞에 붙어있는 진목공소를 보며... 리노할배 왈 "어 여기다 목재랑 기구들을 갖다 놓으면

영락없는 진~목공소이네.." 배꼽을 잡고 또 한번 웃어본다.

백설공주에 나오는듯한 난장이 집같은 식물원 조성중이란 안내가 붙은 바이블가든도 뒤편에

딸려있는 아담한 정원이 딸린 시골집같은 공소이다.

1시29분에 그곳을 출발하여 청도를 향하여 또 달려간다 구룡공소를 찾아서..

청도가는길 개울물이 바싹 말라있는 것을 내려다보며 서울인근은 비가 너무많이 와서

낭패가 아니었는데... 이곳 남쪽은 아직도 가뭄이 해결안되어 나무들이 들판들이 목이

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지천에 이어진 버섯농장들이 청도사람들의 호구지책을 알려주는 듯하다.

 

구룡공소 찾아가는 길은 산 몇개를 넘어가는 외길의 아슬한 길이다.

앞에서 내려오는 차라도 있으면 큰일이라도 날판이라 졸인 가슴을 안고

올라가는 리노할배에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데 기냥 암말말고 가면 된다

고 염려의 마음 접게해준다.

 

해발 몇미터인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높은 외줄기 산꼭대기까지 간신히

올라가니, 세상에 하늘아래첫집이란 세련되지않은 간판을 달고있는 촌닭

요리 식당을 만난다.

여자 주인장이 나와 안내하며 몇안되는 이곳 사람들은 모두 교우인데

당신은 루시아라고 하며 저어기 공소에 들렀다가 이곳에 와서 김치찌게에

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친절을 베푼다.

이곳 또한 하늘아래 첫공소라고 명명하며 뜸한 순례객을 기다리는듯

외롭고 조용하다. 

이곳또한 감실앞에 앉아 예수님께 인사드리고, 이곳에선 가정미사를

미리 예약봉헌 하고 화장실을 들렀다 저 아래 또 먼길을 떠나려 서두른다.

깨끗한 수건 두장이 걸려있는 화장실은 하나뿐이지만 이곳사람들의

인정을 느끼게 해주는 뭔가 있는것 같다.

이 꼭대기 먼길까지 올라온 순례객을 위한 셀프커피까지 투박하고

도회지스럽지 않게 마련되어있는 게 또한 뭉클한 고마움을 들게 한다.

 

내려오는 길에 저 만치 산중턱에서 들려오는 뻐꾸기소리가 내유동의

뻐꾸기소리랑 참 많이도 닮아있어 정겨워 '안녕~!' 인사한다.

 

구룡산 꼭대기의 닭집아줌마 루시아씨가 아직도 밖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며 배고픈데 김치찌게에 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재촉하는데도

갈길이 빠듯해 감사의 인사만 창문밖으로 전하고...

 

외줄기 길 앞서내려가는 9인승 승합차의 뒷꽁무니를 달고 살살 내려온다.

"반석아부지~ 그 왜 아브라함이 한여름 뙤약볕 마므레의 참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있다가

나그네 세사람을 맞아들여 쉬어가기를 간청?했다던 것처럼 저 루시아씨가

축복의 사람 아브라함을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 흐뭇하네요.

 

앞서가던 차가 아래에서 멈추길레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촌닭을 맛있게 잡아 요리하는 그식당을 많이도 알고 찾아온다며 당신네들도

오늘 닭먹으로 왔다 내려가는 길이라고 하더라.

 

이로써 대구교구의 순례지도 모두 끝나고, 마산교구가 있는 밀양땅으로 넘어간다.

청도땅을 빠져나오는데 대추와 감나무 와 소싸움의 상징의 그림들이 걸려있는 걸보니

이또한 청도땅의 먹거리들 인가보다.

 

2시32분 출발한 청도땅은 밀양도착이 4시27분이다

아이구~ 힘들다 허리도 뻐근하고, 할배도 체력이 딸리는지 잠시

휴게소에 들러서 쉬었다가 가자해서 좀 쉬었다 다시 출발한다.

밀양을 들어가는 길에는 연꽃잎들의 파노라마가 이어진다. 인당수 맑은 물은

보이지않아도 효녀들이 많이도 사는 동네일테다. 효녀 심청이가 타고온 연꽃가마처럼...

넓적한 초록의 이파리들이 반짝이는 햇빛아래 하늘하늘 왈츠의 무도회라도

열고있는지 ... 한국판 심청이와 서구판 신데렐라가 쌍으로 튀어나올것 같은....^^

 

4시 41분 도착한 밀양 명례성지는...경남지역 첫번째의 천주교회 본당이다.

초대주임은 한국인으로 세번째로 서품된 강성삼라우렌시오 신부로 1903년

선종때까지 이곳에서 사목했다한다.

명례출신 복자 신석복 마르코는 누룩과 소금장수였는데 병인박해때 강건너에서

붙잡혀 대구 감영에서 순교하였다. 체포되어 끌려갈때"나를 위해 한푼도 포졸들에게

주지마라"는 말로 형제들에게 목숨과 바꿀 믿음의 의지를 밝혔다한다.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2006복자의 생가터가

발견되면서 그의 삶과 순교를 기리고자 하는 바람이 생겼고 그의 생가터옆에 전국의 후원자

순례자들의 희생과 기여로 순교와 소금의 영성을 배우고 나누는 신석복마르코 성당이 봉헌되었다한다.

 

들어가는 입구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을 많이 힘들고 지쳐있어도 또 걸어가야만 한다.

그 조금 위에있는 작은 경당만한 성모승천 성당에 들러 주모경으로 인사드리고나와

12개의 소금결정체들이 스텐드 여기저기 널려있는 곳들을 지나가며 소금장수와

믿음의 결정체의 궁합이 어쩜 참 잘 들어맞았다고 끄덕이며....

그아래 신석복마르코 성당을 들어가 또 꿇어 인사드린다.

1866년 병인박해의 와중에 순교한 그의 유해는 원래 낙동강 건너 한림정 뒷산 노루목

(현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 장항)에 매장되어 있었다. 진영 본당 신자들은 매년 9월 순교자의

묘소에서 미사를 봉헌해 오다가 1975년 진영본당 공원묘지(현 경남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로 이장했고,

이듬해부터 순교자 현양미사를 이곳에서 봉헌하고 있다.

이곳에도 들러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며 사제들을 위한 기도를 성모님께 청해본다.

땡볕이다 가는데 마다....목마르다. 물., 물.. 물...

 

5시 35분에 출발하여 밀양의 또 다른성지 김범우 순교자성지를 향한다.

이곳 또한 만만찮은 골짜기 산길이 한없이 이어지는 곳으로..굽이굽이 오르는 산길

십자가의 어마어마한 힘든 길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미 어둠이 내려앉는 골짜기의 기운을 감지하곤...

애써 외면하며 그냥 곧바로 꼭대기를 향해 오른다. 죄송합니다....ㅎㅎ

  

한국천주교회의 첫 증거자 김범우 토마스는 1784년에 한국천주교회가 창립되고 평소

두터운 친교를 맺고 지내던 이벽(세례자요한)으로부터 천주교 입교 권유를 받아 입교후

천주교 신앙집회를 명례방(지금의 명동)자신의 집에서 하던중 체포되어 고문과 형벌을 받고

밀양 단장으로 귀양을 갔다. 귀양지에서도 신앙을 신봉하고 복음을전하다 귀양온지2년후인

1787.고문을 받은 상처의악화로 숨을 거두어서 이곳에 묻혔다 한다.

 

십자가의 길을 지나쳐 올라왔더니 칠은의 길이라며 또 산길따라 펼쳐진다.

십자가의 길 못지않은 기도문과 걸음이 3-40분을 돌게하는 산길이다.

 

내 몫의 십자가는 마지막 한닢까지 다 져내어야 할 의무라고 또 한깨달음 배운다.

칠은의 고개산길 꼭대기에 성모동산이 나타나며 우리의 흘린땀을 닦아준다.

일곱가지 은혜를 얻어 누리려 기를 쓰고 올랐다 내려오는 끝지점에 김범우 선조의

묘가 평화로이 엎드려 있다.


인사드리고 내려오는데 성모동굴성당의 입구가 보인다.

이시간엔 닫혔을 거라 행여나 하고 밀어보니 열린다.....들어가는 문만 보이는데

성전안은 온통 바위산 안에 감추어져 있는 모습이 참 신비롭기 까지 하다.

이또한 성전의 예수님께 깊은 절하고 나와 이미 어두워진 주차장에 있는

차로 돌아와 이리갈까 저리갈까 고민을 해본다.

어릴적 초등학교 동무 재연이가 살고있는 밀양땅 산외면도 40분이고

내일 새벽부터 움직여야할 함안땅도 40여분이다.

동무는 오늘밤 저희집에 와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가라고 하지만 서운함과

보고싶은 마음을 참고 함안땅으로 달려가기로 정하고 미안함을 전한다.

동무야~~ 미안! 죽기전에 한번은 만나겠지?....

함안땅 대산성당 근처에 있는 사우나가 딸린 모텔에 들어 오늘 밤도

하룻밤 쉬어가려 나그네의 짐보따리를 풀어야 겠다.

다녀본 어디보다 가격도 싸고, 허름한대도 내유동 우리집처럼 편안한

잠자리라 여겨져서인지 그냥 곯아떨어져 간다.ZZZ~~~~

성령님. 성모님 오늘도 참말로 많이 고맙습니데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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