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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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_이영근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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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4-09 ㅣ No.171343

 


부활과 관련된 성경의 용어들은 크게 두 가지로 드러납니다. 

하나는 '살다, 다시 살다'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서다, 다시 일어서다'입니다. 

곧 ‘부활’과 ‘들어 높여짐’입니다. 

지난 부활 8부 동안의 말씀전례에서는 첫 번째 뜻, 곧 ‘예수님께서는 죽지 않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내용을 드러내주었습니다.

이제 오늘부터는 두 번째 뜻인 '들어 높여지다, 영광스럽게 되다'라는 뜻을 드러내줍니다.

 

이는 놀라운 사실, 아니 억지스럽고 당혹스런 사건을 전합니다.

곧 분명 누명을 쓰고 죽은 실패인데도 오히려 승리라 하고, 분명 죽었는데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도 놀라운데, 더 당혹스러운 것은 그리하여 드높여졌다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아래’로 내려갔으나 ‘위’로 올라가는 역전의 대전환이라는 ‘놀라운 변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요한 3,7)

‘위’(ano) 혹은 ‘아래’(kato)라는 말에서 '위'란 산을 오른다든지, 로켓을 타고 우주 위로 올라가는 물리적인 위치나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이 ‘위’와 ‘아래’라는 말을 쓸 때, 이는 ‘두 가지 질서(방식)’을 가리킵니다.

곧 ‘아래’는 자기중심적인 ‘나’의 통치방식에 따르는 질서요, ‘위’의 질서는 사랑의 ‘성령’의 통치방식에 따르는 질서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지상에 묶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늘에 속한 자임을 말해줍니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여쭙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요한 3,9)

 

이는 어디선가 이미 들은 낯익은 질문입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천사에게 했던 질문입니다.

그러니 마리아처럼, 이 질문은 우리가 전 인격으로 응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곧 성모님처럼 ‘피앗(fiat)’으로 응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하물며 어찌 믿겠느냐?”

(요한 3,12)

이는 우리가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 이유가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자신에 대한 고집 때문에 새로 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영으로부터, 곧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곧 믿음(피앗)으로 응답하고 실행하는 일입니다.

바로 여기에 역전의 대전환이 있고, 새로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은 모든 것을 새롭게 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눈’으로 봅니다.

곧 세상이 새로워져서가 아니라, 자신이 새로워져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희가 당신 눈으로 새롭게 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영에서 태어난 이”

(요한 3,8)

 

주님,

제 영혼의 무지를 깨우소서.

빛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제 영혼의 밤을 몰아내소서.

제 어둠의 행실을 벗기소서.

당신 빛으로 당신을 뵈옵게 하소서.

세상이 이토록 경이로운 것은 세상이 새로워져서가 아니라, 제가 새로워진 까닭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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