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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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 삼종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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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열 [khoyeoul] 쪽지 캡슐

2012-03-16 ㅣ No.286

사순 제3주일 (2012년3월 11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함께한 신자들 그리고 순례객들과 삼종기도를 하시기 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 하신 훈화 말씀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사순 제3주일 복음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환전꾼들과 동물들을 파는 자들을 쫓아내신 예수님의 유명한 일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조. 요한 2,13-25).

그것은, 모든 복음사가들이 다루었듯이, 파스카 축제에 즈음해서 일어났으며, 군중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합니까?

우선, 관리들로부터 그 어떠한 제재도 받지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은 예언자들 특유의 행동으로 보았기때문입니다: 사실,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잘못을 자주 고발하곤 했으며, 어떤 때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라고 한다면, 그들의 권위에 대한 것이 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이렇게 물어봤던 것입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요한 2,18), 진정으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하는것을 우리에게 증명해보이시오.

성전으로부터 상인들을 쫓아낸것은 또한, 예수님을 혁명당원들과 연관시켜서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혁명당원들은 하느님의 계명에 대해서 "열성적"이였습니다. 자신들이 대접받기 위해서는 폭행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의 지배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몇몇 제자들 조차도 예수님을 떠나가고 이스가리옷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정도로 그들이 예수님께 걸었던 기대는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폭력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폭력은 하느님 나라와는 정반대의 것이며, 반그리스도의 수단입니다. 인류에게는 폭력은 전혀 쓸모가 없으며 비인간적인 것입니다.

자 그러면, 성전에서 그렇게 행동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그러자 제자들은 시련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69,10).
이 시편은 적들의 증오로 인한 위험한 상황 -예수님께서 처하시게 될 수난의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집에 대한 열정은 십자가까지 가지고 갈것입니다: 예수님의 열정은, 폭력을 통해서 하느님을 섬기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열정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징"으로 주시게 되는 것은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 4,23).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예배가 시작됩니다. 그 예배는 사랑의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새로운 성전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믿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 안에서" (요한 4,23) 하느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께서 이 새로운 성전을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서 지으시기 시작했습니다. 성모님의 전구로, 모든 신자들이 이 영적 성전의 살아있는 벽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성전의 상인을 꾸짖는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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