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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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_송영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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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4-09 ㅣ No.17134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7ㄱ.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1-15).”

 

1) ‘위로부터 태어나다.’에 대한 설명이 앞의 5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8절의 ‘영에서 태어나다.’도

‘위로부터 태어나다.’ 라는 말에 대한 설명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다.”, 또는 “영에서 태어나다.”

라는 말은, 세례성사를 통해서 새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즉 영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세례성사를 받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새로 태어나고, 새롭게 변화되는 것은 아니고,

성사의 은총에 본인의 노력이 합해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무임승차는 없습니다.>

 

2)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하여 듣고 또

가르침을 받았을 줄 압니다. 곧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에페 4,21-24).”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콜로 3,1-4.9ㄴ-10).”

<‘새롭게 변화되다.’는 “세상 사람들과 구분되는

‘다른 사람’으로 바뀌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은 사람,

즉 안 믿는 사람들과는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관이 다르고,

인생의 목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사람입니다.

그 ‘다르게 살아가는 방식’이 곧 ‘좁은 문’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

이 말씀에서 강조점은 ‘생명으로 이끄는 문’에 있습니다.

문과 길이 좁든지 넓든지 간에,

신앙인은 ‘생명’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3) 15절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뜻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나를 믿어야 한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인데, 그런데 예수님은 ‘들어 올려진’ 분,

즉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분입니다(14절).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생활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앙생활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만 있는 생활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원래는 ‘기쁨 가득한 생활’입니다.

그래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일도 생기고,

슬픈 일도 만나고, 아플 때도 있습니다.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만날 때, 십자가는 십자가로 끝나지 않고

부활과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으로 잘 인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태 10,22).

 

4) ‘높이 들어 올려진’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를 ‘모세의 구리 뱀’에 연결해서

설명하셨습니다(14절).

‘모세의 구리 뱀’ 이야기는 민수기 21장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모세의 구리 뱀은 ‘높이 들어 올려진’

모습도 비슷하고, 회개와 구원과 생명의 상징이라는 점도

비슷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구리 뱀’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표시로

구리 뱀을 ‘쳐다보기만 해도’ 살아났는데(민수 21,9),

예수님의 십자가는 쳐다보기만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온 몸으로 살아야 하는 ‘신앙인의 삶’입니다.

사는 동안에 날마다 일상생활에서 삶으로 실천해야 하는

과제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사람은,

날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십자가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변화가 덜 된 사람입니다.>

 

[출처] 부활 제2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평화의 사도들 원문보기 글쓴이: 정루시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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