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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목요일 성유축성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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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열 [khoyeoul] 쪽지 캡슐

2013-04-02 ㅣ No.329

성목요일 성유축성미사 교황 강론
2013년 3월 28일


(사진 출처: 교황청 홈페이지)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1,500명이 넘는 사제들 그리고 고위성직자들과 함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하신 성유 축성 미사의 강론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쁜 마음으로, 로마의 주교로써 첫 번째 성유 축성 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애정 어린 인사드리며, 특별히 오늘, 저와 함께 서품 받은 날을 기억하는 친애하는 신부님들에게 인사드립니다.  

독서들과시편은
기름부음받은사람들”: 야훼의이사야, 다윗그리고우리예수님에대해서말하고있습니다. 분들은하느님을믿는백성을도유하도록 (기름발라 주도록)사명을받은종으로써 기름부음 받았다는 공통점을지니고있으며; 그들의도유는가난한사람들, 감옥에갇힌사람들, 억압받는사람들을위한것입니다.

성유를 통해 “누구를 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것이라는 이미지에 대해서 시편 133장은 말합니다: “머리 위의 좋은 기름 같아라. 수염 위로, 아론의 수염 위로 흘러내리는, 그의 옷깃 위에 흘러내리는 기름 같아라.”(2절)

흘러내리는 기름의 이미지, 아론의 수염에서부터 거룩한 옷깃 위에까지 흘러내리는 기름의 이미지는, 옷으로 상징되는 세상 끝까지 도달해야 하는 사제직의 기름부음의 이미지입니다.

대사제의 제의들은 많은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에폿의 양쪽 어깨를 장식하던 마노 보석 위에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지금의 우리 제의가 유래되었습니다: 여섯 개의 보석은 오른쪽 어깨에, 여섯 개의 보석은 왼쪽 어깨를 장식합니다(탈출 28,6-14 참조). 가슴받이에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탈출 28,21 참조).

즉, 사제는 자신에게 맡겨진 백성을 어깨에 올리고 그들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 전례를 거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겸손한 제의를 입을 때, 많은 믿음의 백성과 이 시대의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무게와 얼굴을 어깨에 올리고 마음에 새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전례가 아름다운 것은 제의의 옷감에 대한 감각이나 장식의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활력 있고 위로받은 당신 백성을 통해 우리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데 있습니다. 이 아름다움으로부터 이제는 우리의 실천을 볼 수 있도록 합시다. 아론의 머리에 부어 그의 인품의 향기를 끝없이 나게 했던 귀중한 기름을 이제 우리의 ‘소외된 곳’에 뿌려지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당신의 도유는 가난한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 홀로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신부님들, 도유는 우리 자신을 향기 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기름을 기름병에 보관만 해서도 않됩니다. 그렇게 하면, 쓰디쓴 마음처럼, 기름이 악취나는 것으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제는 자기 백성이 어떻게 도유되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자신이 좋은 사제인가를 분간하는 확실한 검증법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기쁨으로 도유 받았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예를 들어서, 미사를 마치고 나올 때, 기쁜 소식을 받은 사람의 얼굴인지 아닌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도유로 설교된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우리가 설교하는 복음이, 아론의 기름이 현실 속으로 흘러내리 듯이, 그들의 일상생활에 도달하게 되면 좋아합니다. 또한, 한계적인 상황들도 밝게 해주고, 믿음의 백성들이 그들의 신앙을 훔치려는 사람들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소외된 곳’을 밝게 해주면 기뻐합니다.

그들은 일상의 현실에서 자신들이 느끼는 수고, 기쁨, 고뇌, 희망과 함께 기도해준 우리에게 고마워합니다. 우리를 통해 ‘기름부음 받은 자’ 즉,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때, 주님께 도달하고자 하는 그들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자 힘을 냅니다: “신부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신부님,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것들은 기름부음이 수단 옷깃에 흘러내리고 있다는 증거이며, 하느님 백성의 청원으로 변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그분 백성과 이런 관계를 유지할 때, 은총은 우리를 통해 드러나고,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중재자로서의 사제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항상 은총이 살아 있게 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이 바라는 모든 것 안에서, 그것들이 때로는 물질적이고 허무맹랑한 요청이라도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향기 나는 기름으로 도유를 받고자 하는 하느님 백성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옷을 만진 하혈하는 여인의 희망 가득한 고뇌를 느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알아차리고 느껴야 합니다. 온 사방이 군중들로 둘러싸인 가운데 서 있던 예수님의 순간은, 기름이 흘러내리는 옷을 사제의 품위에 따라 새롭게 입은, 아론의 모든 아름다움이 육화한 것입니다.

하혈로 고생하던 충만한 신앙의 눈을 가진 여인에게서만 빛났던 감추어진 아름다움입니다. 훗날의 사제인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실존의 주변’에서 단지 예수님을 숨막히게 밀어 대는 군중들의 겉모습만 봅니다 (참조. 루카 8,42). 그러나 주님께서는 반대로 당신 옷의 끝자락에서 오는 신적 도유의 힘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도유도: 고통이 있고, 피흘림이 있고, 볼 수 있기를 갈망하는 눈멈이 있고, 나쁜 주인들에 의한 억압이 있는 ‘소외된 지역’ 안에서, 그분의 힘과 구속하시는 효력을 경험하기 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경험이나 자기반성을 통해 반복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삶 속에서 자기도움의 과정들이 유용할 수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저 과정으로, 이 방법에서 저 방법으로 옮겨 가면서 사제생활을 하는 것은, 은총의 힘을 축소시키며, 자력으로도 구원받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처럼 되기 쉽습니다.

은총은 신앙으로 활력을 찾고 성장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 자신으로부터 나와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은총(기름)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자신으로부터 조금밖에 나오지 못하고, 도유도 조금밖에 못하는 사제는 하느님 백성의 최상의 것을 잃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사제의 마음 깊은 곳을 활력있게 하는 능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못하는 이는, 중재자가 되기 보다는, 서서히 중개인이나 경영자가 됩니다. 우리 모두 이 차이점을 알고 있습니다: 중개인과 경영자는 “이미 보수가 있으며”, 자신들의 마음을 두지 않고 수고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애정어린 감사를 받지 못합니다. 

정확하게 여기에서 몇몇의 만족하지 못함이 생깁니다. 그들은 결국 기쁨이 없는 사람들, 기쁨이 없는 사제들이 됩니다. “양들의 냄새”와 함께 하는 목자가 아닌, 오래된 것이나 새로운 것을 수집하는 부류로 변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요구합니다: 양들을 듣고, “양들의 냄새”와 함께 하는 목자들이 되십시오.   

사회 전체의 위기를 요약하는 사제 정체성의 위기가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위기의 파도를 수그러들 수 있게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멀리 나가서 그물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실 자체가 하느님 은혜에 힘입어 우리들이 은총으로 보여지는, -직무가 아닌 도유만이 가치있는- 바다와 같은 현세의 이 세상 안으로 가게끔 우리를 재촉합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분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던지는 그물만이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애정과 기도로 사제들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목자들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사제들 가까이 계십시오.  

친애하는 신부님들,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기름부음 받은 그 성화의 영을 우리 안에 새롭게 하시길, 도유가 모두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또한 하느님 백성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고마워하는 “소외된 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그 성화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새롭게 하시길 기원합니다.

신자들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임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입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다른 정체성을 찾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이 예수님께서 가져다 주신 기쁨의 기름을 우리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받을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아멘.

(*원본 출처: 교황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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