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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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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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형 [largo7a] 쪽지 캡슐

2003-05-13 ㅣ No.8607

하얀 흔적

 

1955년 삭풍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 날 새벽녘이었습니다.

아직도 검푸른 하늘엔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만상이 아직도 어둠과 고요에 잠든 때, 이 마리아는 미사경본과 묵주를 챙긴 후 새벽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마당으로 내려섰습니다. 한 줄기의 찬바람이 마리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

갔습니다.

그녀가 대문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자 , 마당에 하얀 물체가 가는 선을 이루며  담으로 향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하얀 물체를 손으로 확인해 보았습니

다.

그 건 쌀이었습니다. 밤손님이 꼬리를 남겨 놓고 간 것입니다.

광문은 열려있고, 어제 낮 방앗간에서 벼를 찧어 쌀을 가득 채워 놓은 쌀독은 거의 바닥나

있었습니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보았습니다. 역시 담밖에도 하얀 흔적이 새벽길에 선명하게 드러

나 보였습니다.   그녀는 하얀 선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따라  가보았습니다. 그 하얀 선은   

네 자매를  홀로 기르는 정말 어려운 청상과부의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사립문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행상을 하는 그 과부와 네 자매의 가난에 찌든 모습, 특히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매일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지게 가득해와서 장터에서 팔아 엄마를 돕고 있는 과부의 큰 아들의 애처로운 모습이 눈에 밟혀 왔습니다.

그녀는 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싸리 빗자루로 담 밖에서 시작된 그 하얀 흔적을 없애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벽녘 찬바람에 얼굴과 귀,  맨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시려와도 그녀는 쓰레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녀가 초가집 사립문 앞의 그 하얀 흔적들을 깨끗이 지워버릴 때, 별들이 빛나는

새벽하늘에 삼종이 은은히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순재 마리아님은 천수를 누리시고, 7년 전에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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