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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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기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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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cham3385] 쪽지 캡슐

2021-03-06 ㅣ No.145072

 

 

 

<나의 십자가의 길> 3

 

제1처 사형 선고를 받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저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으신 주님!

예, 저는 큰 죄인입니다. 이제 저에게 큰 벌을 내려주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서 누리고 계시는 온 행복을 나누어주시기 위해서 저를 어머니 뱃속에 생기게 해주셨고, 저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 무엇이든 제 마음대로 선택하여 행하도록 하셨는데, 저는 지금까지 아버지이신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저의 행복을 위해 산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당신의 얼굴을 마주 뵈올 수조차도 없게 제 몸과 마음을 더럽히며 살았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루가 15,18- 19) 제 죄를 다 기워 갚을 수 있도록 – 제 안에 있는 당신과 맞지 않는 더러움을 다 없앨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제 죄를 다 기워 갚기 위해 그곳에서 오는 어떤 고통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시작은 반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제가 이제 당신을 따라 이 길로 들어섰으니

끝까지 가지 않고는 결코 되돌아서는 일이 없게 하여 주소서,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저를 당신의 사랑이 듬뿍 배인 이 길로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 2 처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사랑하올 주님! 당신께서는 아무런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시고 구세주 그리스도님의 신분을 버리고 많은 사람 앞에 하느님을 모독한 죄인이 되시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를 향해 가셨습니다.

 

이제 저도 주님!

그토록 원하던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신께서는 아브람에게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기 12, 1-4a) 라고 말씀하셨고, 아브람은 과연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나 당신께서 일러 준 그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숱한 고초를 겪고 나서 “아브람”이 “아브라함”이란 새 이름을 얻고, 큰 민족의 조상이 되고, 복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복을 내려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복을 주시겠다는 그 말씀만을 굳게 믿고, 그곳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인지도 모르면서 단 한 번도 가보지도 못한 곳으로 길을 떠난 아브람처럼 주님! 저도 그렇게 당신의 말씀만을 굳게 믿고, 전혀 알 수도 없는 곳으로 길을 떠나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곳에서 저도 제 할 일을 끝까지 다 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밀알이 땅속에서 겉껍질을 다 썩히고, 속 알갱이까지 다 썩히고 나서야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수 있듯이 저도 이곳에서 제 할 일을 다 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하온데 주님! 이곳은 정말 만만한 곳은 아닙니다. 제 죄악이 큰 만큼. 제 욕심과 교만과 불순종의 마음이 큰 만큼, 그것을 깨끗이 없애기 위해 제가 겪어야 할 고통이 그만큼 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껍질을 깨는 일이 쉬웠다면 다윗이 “야훼여! 노여우시더라도 나의 죄를 묻지 말아주소서.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나를 벌하지 말아주소서. 야훼여! 힘이 부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뼈 마디마디 쑤시오니 나를 고쳐주소서.(시편, 6, 1-2) 라고 했겠습니까?

 

주님! 이곳에 오니 알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모난 돌이었는지...

 

제 모습이 얼마나 울퉁불퉁 모가 났으면,

안일하게 살던 저와는 정 반대되는

이런 여건들을 당신께서 마련해 놓으셨겠습니까?

 

이곳에 그런 여건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저의 모난 부분들이

둥글둥글 예쁜 돌처럼 될 수 있겠나이까?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 같은 이곳에

저를 갖다 놓으신 주님! 감사합니다!

 

여기서 굴러 떨어지며 제 모난

모든 부분들이 다 깔끔히 깎여질 그날까지

끝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잘 견딜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3처 첫 번째 넘어지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나약한 인간이 되시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힘없이 넘어지시므로

온갖 수모와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그 동안 존경과 찬사를 아끼지 않고

믿고 따랐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실망만을 안겨주셨습니다...

 

주님! 저도 모든 것이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저를 사랑한다고 웃으며 말하던 사람들!

제게 친절을 보였던 사람들!

 

참 좋을 것만 같았던 일들이 모두

제게 괴로움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만을 위하며

부모님의 보호 속에 편하게 살았던 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제게 무엇을 해주는 사람보다는

챙겨주어야 할 사람이 더 많고

제게 주어진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일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매사에 긴장하며 잘하려고 애를 쓰는데도

부딪치는 모든 일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너무나도 많이 납니다.

 

그리고 제가 잘하려고

노력하는 만큼의 효과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남보다 더 잘하는 것까지도

아픈 화살이 되어 제 가슴에 꽂히기 일쑤입니다.

 

주님! 그들 모두를 좀 보십시오!

제가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더 이상 견딜힘이 없습니다...

 

이곳이 정말 제게 가장 합당한 곳입니까?

혹 제가 판단을 잘못한 것은 아닙니까?

 

이곳은 제가 생각했던

그런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 잘할 수 있는 제게 맞는 곳이 있다면

거기서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편리함만을 추구하고

무엇인가를 얻으려고만 하던 제가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을 따르기 위해

제 것을 이웃에게 내어주며

저 자신을 죽이는 작업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기만 합니다...

 

주님! 당신과 맞지 않는

제 안의 더러움을 없애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이며, 제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 다 버리고 이곳에 왔는데,

이곳에서도 제게 또 인간적이 것을

누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을 거절한 결과가

얼마나 쓰라린지 주님...

 

한 사람도 아니고,

아주 저를 죽이기 위해

동맹이라도 맺은 듯, 저희들끼리

한통속이 되어 쑥떡거리며,

공공연히 모두 하나가 되어

저를 공격하기까지 합니다....

 

이런데도 주님! 당신께서 이곳이

제게 가장 합당한 곳(聖召)이라고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까?

혹시라도 제가 잘못알고 온 곳은 아닙니까?

 

의기양양하게 전 잘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들어 온 이곳에서

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보기 좋게 넘어졌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들고 나가고 싶습니다. 주님...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4처 십자가의 길에서 어머니를 만나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혈육은 육신(살과 피)을 나누어 가진 이들입니다.

이들은 서로 고통을 함께 느끼고 영광도 함께 누리는 사람들이지요..

 

주님! 당신께서는 죄인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에서 어머니를 만나심으로 더욱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당신께서 죄인이 되시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어머니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므로 더욱 고통을 당하시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뜻(인류 구원 =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에 이 일을 중단할 수가 없으시며, 어머니 마리아님에게 그것을 설명할 수도 없고, 어머니를 위로할 아무 것도 없으십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자식이 당하는 아픔은 곧 자신의 살과 피를 죽이고 뼈를 깎는 아픔입니다. 어느 어머니라도 ‘차라리 내가 당했으면 …….’ 하고 바라기 마련이지요.... 어머니는 자식을 자신의 살과 피로써 엄청난 산고 끝에 세상에 낳았기에 자신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고 자식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아낍니다. 자기 자식이 인간적으로 남 앞에 드러나기를, 높아지기를, 남보다 더 낫게 여김 받기를 바라며, 또한 남에게 뒤지거나 죄인이 되는 것은 더욱이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어머니는 자식이 고통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사랑하올 주님! 저 스스로 택한 이 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도록 일에 시달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질시와 미움의 따가운 눈총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있을 때에 저에게 살과 피를 준 어머니(혈육)가 찾아왔습니다. 쓰러져 있는 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어머니는 당장에 저를 어머니의 집으로 데려 가려고 합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품은 너무나도 따뜻하기만 합니다. 이대로 마냥 머물러 있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전처럼 어린아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저는 어린아이의 탈을 벗어버리고 어른이 되기 위하여 진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제가 여기서 이 모든 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저는 죽을 때까지 어린아이인 채로 어머니에게 큰 짐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지금은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저를 그냥 모른 채 놓아주십시오!

제가 할 일을 다 마치고

떳떳한 어른이 된 후에

그 아픔을 다 가시게 해드리고,

어머니께서 제게 베푸신 사랑에도

반드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오 10, 37)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직은 다 이해 할 수 없지만,

당신께서 먼저 그리하셨고,

지금 이 순간 제게도 그리하라고 하시니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하지만

당신의 그 뜻을 따르려 애를 써 보겠나이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5처 십자가의 길에서 남의 도움을 받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온갖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분이심에도 불구 하시고, 우리와 똑같은 나약한 인간이 되시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서 도움을 주려고도 하지 않는 키레네 사람 시몬의 도움을 받으셨습니다. 남의 도움은 부족한 사람, 없는 사람(힘ㆍ재산ㆍ능력), 더 낮은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부족하고 가진 것이 없음을 느끼는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지요...

 

사랑하올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 시몬의 도움을 받으신 이유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저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힘을 과시하고픈 인간 본성을 거슬려 남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시려, 또한 저의 그러한 교만함을 속죄하시려고 창조주이신 당신께서 스스로 약해지셔서 피조물의 도움을 받으셨습니다.

 

시몬은 십자가의 무게를 견딜 만한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자기의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길을 가던 중에 억지로 붙들려서 예수 그리스도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힘든 일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만약에 그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끝까지 가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너무나도 외롭고 험난하기만 한 길입니다. 약한 제가 그 고통 중에 있을 때에 저의 고통의 무게를 함께 느끼고 저를 도와주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면 어떻게 제가 그 길고 험한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는 제가 이 5처를 통해서 저 자신의 힘만 믿고 남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교만한 마음을 없애고 자신을 낮추어 남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여기까지 끌고 오셨고, 저 혼자서는 도저히 단 한 발자국도 내 딛을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제게 시몬을 보내 주시어 그 도움에 힘입어 더 가볍게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갈 수 있게 하여주십니다.

 

주님! 사랑하올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너무나 힘겨워 성소에 대한 갈등을 느끼고 혈육으로 인해 그 갈등이 더욱 더 가중되어 ‘성소를 포기할 마음’까지도 가지며 불충을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주님! 당신께서는 이 십자가의 고통을 잘 알고, 이 십자가의 무게까지도 견딜 수 있는 사람을 제게 보내 주시어 너무나도 너그럽게, 너무나도 큰사랑으로 저의 모든 잘못과 약함을 감싸 안아주시며 제 숨통을 틔게 해 주셨습니다.

 

그때 느꼈던 사랑과 편안함은 이 세상 그 누구에게서도 맛볼 수 없었던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때까지 온 몸을 내리누르고 있던 십자가의 엄청난 고통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 누가 저를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었겠습니까? 부모도 형제도 가장 가까운 친구도 그 누구도 그런 도움을 결코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의 몸 전체에 느끼고 있던 십자가의 고통을 똑같이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저의 십자가를 대신 져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올 주님!

 

제가 여기서 주저앉지 않고, 또한

이곳에서 멀리 멀리 달아나지 않고,

“당신을 닮은 참사람”이 되기 위하여

시작한 이 일을, 이곳에서 끝까지 할 수 있도록

제게 “시몬”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6처 십자가의 길어서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전 인류를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속죄의 희생 제물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중에 베로니카라는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은 가까이 오는 것을 막는 병사들을 헤치고 용감하게 예수님께로 나아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로니카의 수건에 당신의 얼굴을 박아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의 고통당하는 모습을 가슴에 늘 품고 다닌 사람을 결코 외면하시거나 그 애틋한 사랑을 거절하실 분이 아니시기에 부활, 승천하시고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신 후에 그 사랑을 다 갚아주시어 베로니카에게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당신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기쁨과 행복을 누리도록 해주셨습니다.

 

베로니카는 예수 그리스도님을 극진히 사랑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주위에 눈도 아랑곳없이 용감히 군중과 군사들을 헤치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자기의 소중한, 언제나 지니고 다니는 수건을 꺼내 피와 땀과 먼지로 얼룩진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렸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지 않도록 막았을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옆에서 편하게 해드리며 함께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베로니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인간적, 개인적으로 사랑할 수 없음을, 또한 그분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임을 깨달았기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수건에 당신의 얼굴을 박아주신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계속 함께 사랑을 나누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큰 희생이며 또한 큰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독신 성소 안에 있는 사람”이든 “결혼 성소 안에 있는 사람”이든 누구나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 길에서 “인간적인 사랑에 얽매일 수 없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되기 위하여 자신의 죄를 슬퍼하며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라 가는 사람”이라면 결단코 그런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예수 그리스도님처럼 앞으로 걸어가는 일을 멈추지 않고 분연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일이 당장에는 매정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길을 끝까지 다 걸어가 신랑이신 예수그리스도님을 맞이하여 참 사람이 된 후에는 서로에게 참으로 유익한 일이었음을 알게 되겠지요...

 

오! 사랑하올 주님! 이 길은 제가 땅의 것을 차지하여 짐승처럼 됨으로 죽게 된 모든 죄악을 기워 갚으려고 들어 온 길입니다. 제가 십자가를 지면서부터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배우자나 동료, 위아래 모든 사람들)은 제 안의 온갖 더러움을 없애도록 제 살과 피 모두를 내어주라고 제게 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제게 위로보다는 뼈를 깎는 아픔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왜 저를 혼란시키시는 겁니까? 이제 어느 정도 제 살과 피를 내어주는데 익숙해지고 받아들일 각오도 되어있는 것 같았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으며 저에게 사랑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제가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랑을 받아줄 수도 보답해 줄 수도 없는 처지이기에 혼란과 고통만이 있을 뿐입니다. 다만 저는 그에게, 지금은 인간적인 그 어떤 사랑도 받아줄 수가 없다는 것과 죄인이기에 뼈를 깎는 고통 중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밖에 달리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제게 너무나도 큰 아픔일 뿐입니다...

 

주님!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어찌 이런 고통을 겪으리라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정말 두렵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이렇게나 힘이든 데, 앞으로 또 어떤 고통이 제게 닥쳐 올 지 그저 두렵기까지 합니다... 제가 대관절 무엇이온데, 제가 대관절 무엇을 보여 주었기에 저 사람은 제게 그렇게까지 저돌적으로 다가 오는 것일까요? 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저 사람에게 저는 다만 고통 받는 모습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 아무 것도 보답해 줄 것이 없습니다.

 

주님! 사랑하올 주님! 부모 형제도 버리라고 하신 주님께서 왜 제게 이런 사람까지 보내 주시는 것입니까? 정말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이곳으로 들어오기 전에 당신의 뒤를 따르기 위해 제가 가슴 아프게 떼어버린 사람들도 있는데, 왜 또 저를 흔들어 놓으시는 것입니까?

 

아직은 그저 혼란과 고통만 가득하지만 주님!

제게도 그 사람에게도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이

결코 당신 앞에서 헛되지 않게 하여 주소서...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7처 십자가를 지고 두 번째 넘어지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주님! 또 넘어졌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제 안에 다른 그 어떤

욕심이나 애착심보다도 자신을 과신하고

남 앞에 높게 보이려는 욕심이 더 크기에

그것을 꺾기가 이리도 어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원하는 만큼

그렇게 강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주님! 저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제6처에서

“인간적인 사랑”을 외면함으로 겪은 고통이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기에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버려

더 이상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또,

보기 좋게 넘어졌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

 

저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

 

저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사람들….

 

저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

 

그 모두 앞에서 또,

보기 좋게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주님!

이리 넘어져 있는 것이

왜 이리도 좋습니까?

 

바로 전까지만 해도

남 앞에 넘어진다는 것,

남 앞에 실패한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은

두렵고 피하고만 싶은 일이었는데,

이제는 전혀 그렇지가 않고,

따가운 이웃의 눈총마저도

편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조금은 고통이 제게

친근한 것이 된 것일까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이 “십자가의 길”이 그저

막막하고, 두렵고, 무섭게만 느껴졌지만,

주님! 이제는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반을 넘어섰다는 안도감!

 

반을 넘어 선 지금!

당신께서 부활하신 그곳까지

저를 이끌어 주시기 위해

이곳으로 오게 하신 주님께서

결코 이대로는 내치지 않으시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앞으로 아무리 거센 고통의 순간이

제게 닥치더라도 이제는 결코

되돌아서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제 안에서

조금씩 솟아나오고 있습니다...

 

이대로-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당신께서는 결코 저를 -

저를 죽이시지는 않으시리라는

굳은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 사랑하올 주님!

 

수천의 알을 낳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향해 오르는 연어에게

그 더러운 물을 떠나 오르고 또 올라

반쯤 올라갔을 때, 그 물이

얼마나 깨끗해져 있을지, 주님!

여기서 제가 그 연어처럼

그 물 맛을 조금은 느끼고

맛 본 것은 아닐까요?

사랑하올 주님!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를

이곳까지 이끌어 주시어

당신께서 베푸시는 “한없는 사랑”인

“위로의 맛”을 볼 수 있게 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8처 십자가의 길에서 남을 위로하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온갖 수난과

고통으로 두 번이나 넘어지시고,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고 있을 때

다른 이의 위로를 받고자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시며 가르치셨습니다.

 

“위로”는 고통이 없는 사람이

고통이 있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사랑하올 주님!

 

이제야 당신께서 왜

그 혹독한 고통 중에 위로받기보다

아무런 고통을 당하지 않는 사람들을

걱정하시고, 그들을 위로해 주셨는지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당신께서 왜

“참행복”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7처를 겪고 나서야

당신께서 주시는 “위로의 맛”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참평화의 맛“을 보았기에

이제 저도 당신처럼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참생명의 길”인 “십자가의 길”로 나아오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동안에 맛본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과 평화의 맛”은

결코 이 세상 그 어떤 일에서도,

이 세상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맛볼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겪는 고통보다도

이렇듯 사랑 겨운 길을 외면하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며 그들도

이 길로 나아가도록 권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사랑하올 주님!

이 세상에는 잘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참 삶의 길”로

나아 갈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여

당신께로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 사랑하올 주님!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아무리 알려 주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당신께로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어

채찍으로 매를 맞고,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며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살려 내시고자 하신

당신께로 향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나아 갈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9처 십자가의 길에서  세 번째 넘어지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세 번이나 넘어지신 주님!

 

저도 당신을 따라 또 넘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아주 저 밑바닥부터

성소 전반에 걸쳐 의혹을 품고

불만을 터트리며~, 또 떠벌이며~,

아주 보기 좋게 넘어졌습니다...

 

그냥 넘어진 것이 아니라,

온 몸에 힘이 다 빠져

얼굴뿐만 아니라, 온 몸을 땅에 대며

손가락 하나 까닥일 힘조차 없이

그렇게 아주 보기 좋게 넘어졌습니다...

 

제 얼굴을 가릴 아무 힘도 없고,

제 몸을 가릴 아무 힘도

제 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

이게 웬일입니까?

 

길가다 넘어지기라고 할라치면

제 아픈 곳보다도

‘누가 보지나 않을까?’ 하며

주위를 둘러보며, 혹시라도

제 체면이 깎이지 않을까를

걱정하기 일쑤이었는데, 주님!

 

그런 것은 아랑곳없이

그냥 여기 땅에 얼굴을 대고

넘어져 있는 것이 마냥 편하기만 하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넘어져 있는 저를 보러 왔습니다.

 

넘어져 있는 저를 보려고

저와 전혀 상관없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여기저기서 몰려 왔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가락질을 하며,

신이 나서 못된 소리를 지껄여 대기도 하고,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까지도 있습니다...

 

공공연히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넘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었네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 체면 자존심을 지키려

그리도 애를 쓰며 살아 왔는데,

당신을 따라 제 십자가를 지고

한 번, 두 번, 세 번

거듭 넘어지다 보니, 이제는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나 봅니다.

 

주님! 사랑하올 주님!

 

이제 드디어

당신께서 ‘죄를 진 아담’에게

입혀 주셨던 ‘가죽(짐승의)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던 제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그 옷을

벗어 버릴 때가 되었나 봅니다...

그러니, 체면, 자존심을

그리도 소중히 여기고 있던 저에게

저를 손가락질하며 ‘실패한 사람’이라고,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떠들어 대며,

제 체면,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모든 말들이 제게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저를 어찌하셔도 좋습니다.

아니, 그 누가 제게 어찌한 단들

대거리 할 힘조차도 없습니다...

 

옷 벗김 당하고 ,

십자가에 못 박히고,

십자가 위에서 죽어 무덤에 묻히는

그 모든 일들이 이제는 제게

하나도 무섭지도, 하나도,

두렵지도 않습니다...

 

어서 그 일들이 제게

일어나 주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0처 십자가의 길에서 옷 벗김을 당하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힘없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내맡기고

크나 큰 죄인처럼 취급당하여

옷 벗김을 당하셨습니다...

 

주님! 사랑하올 주님!

 

저도 당신처럼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채

거기에 그렇게 엎드려 있었더니

사람들이 제게 다가와

아무 거리낌 없이

제 옷을 벗어던져 버렸습니다.

 

제게 창피를 주기 위해서 -

제가 더 이상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하려고

공공연하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 잘못을 낱낱이 속 시원하게

들추어내 주었습니다...

제 얼굴이며,

제 몸을 감쌀 수 있는 것이

이제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아! 이제야 짐승의 옷인 가죽옷을

훌훌 벗어 던질 수 있게 되었네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형편없다고,.실패한 사람이라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놀려대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떨 수 있는

그런 어린아이가 되었습니다.

 

어른이었을 때에 공포에 질려

피땀을 흘리며 떨었던 죽음의 고통도

이제는 무섭지 않습니다...

 

옷 벗김을 당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죽어도 괜찮습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이 세상에 새 생명을 가져다주신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여기에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 저의 사랑이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당신께로 나아가기 위해

저의 더러운 옷을 다 벗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의 몸 안에 숨겨져 있는

당신과 맞지 않는

“세상에 속한 제(自我)”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만들어주신

“아름다운 저”를 온전히 되찾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 달리시어 돌아가신 당신처럼

거기에 달려 온전히

죽을 수 있게 하여 주소서.....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1처 십자가에 못 박히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사랑하올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는 이제

온갖 조롱과 멸시 속에

가장 큰 죄인이 받는 형벌을

다 받게 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시려

하늘과 땅을 잇는 십자가에

당신 몸을 내어주어 못 박게 하시므로

당신께 희망을 갖고 있던 많은 이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는 하느님을 모독한 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으로 여김 받는

이 고통의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게 되었지만,

십자가에 달려 높이 들리심으로

당신을 믿고, 당신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을 살려 내시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오르도록

이끄실 수 있게 되시었습니다.

 

원조 아담이 교만과 불순명으로

몸을 구부려 땅에 손을 대고

온 몸을 땅에 대고 기어 다니는

뱀처럼 되어 죽게 되었는데,

이제 당신께서 그 옛날 광야에서

뱀에 물려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을

살려낸 저 구리 뱀처럼

하늘과 땅을 갈라놓은 십자가에

높이 달려 계십니다...

 

주님! 사랑하올 주님!

당신께서는 하느님과 맞지 않는

“짐승처럼 된 저”를 위해

‘창조주이시며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지위’를 ‘더럽고 추악한

죽음의 대명사인 뱀의 지위’로

극도로 낮추시었는데,

제가 어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거부할 수 있겠나이까?

주님! 제게 주어지는 이 모든 고통은

얼마나 당연한 일이옵니까?

 

주님! 저도 죽기까지

저의 죄악을, 저의 더러움을,

추악함을 기억하며 완전한 침묵,

절대적인 순명 안에

십자가에 달리신 사랑하올 당신만 바라보며

여기 이렇게 매달려 있겠나이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2처 십자가 위에서 죽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주님!

 

‘죽는다.’는 것이 오죽 힘이 들면

대 데레사 성녀가 ‘못 죽어 죽겠음을’

이라고 말했겠습니까?

 

소화 데레사 성녀는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기를 원하나

비애 없이 고통을 당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비애 중에 고통을 당하셨다.” 라고 했습니다.

 

당신께서 오죽 고통스러우셨으면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래서 주님! 저도 당신처럼

비애 중에 고통당하기를 바라며

죽기로 노력을 했지만, 죽는다는 것은

정말 힘들기 그지없네요...

 

“아들아, 이제 평화와 참된 자유의 길을 가르쳐 주겠다. 네 뜻을 따르는 것보다, 남의 뜻 받들기를 힘써라. 항상 많이 가지는 것보다 적게 가지기를 원하라. 항상 낮은 자리를 취하고, 모든 이에게 복종하기를 도모하라. 항상 하느님의 성의가 완전히 네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라. 이런 사람은 평화와 안정의 경계 안에 들어가리라.”준주성범(145쪽.1996년.가톨릭출판사.‘평화를 얻는데 필요한 네 가지 주의’)

 

또, “네가 오로지 원할 것은 사나 죽으나 하느님께서 항상 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할 것뿐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모든 이의 수하에 겸손되이 너를 낮추어라. 누가 이런 말을 하고, 누가 이런 것을 명했는가 캐지 마라. 누가 네게 어떠한 것을 하라고 하였거나 하기를 바라는 듯 하거든 그가 어른이거나 아랫사람이거나 동무거나 상관할 것 없이 다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성의껏 그 뜻을 채우려고만 많이 힘써라.”(준주성범) 라는 말씀에 힘입어 몇 날 며칠을 끊임없이 노력을 하여도 죽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죽기 위해서 매사에 노력하며,

모든 애착심까지도 다 끊어버리기 위해서,

소중히 여기던 아주 작은 것까지도

다 찢고 태우고 없애 버렸는데, 주님!

저도 모르게 제 안에 깊숙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게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라틴어 격언에 이런 말이 있지.

‘세상에 필요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다.’

즉, 내가 아니면 그 일을 아무도 못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이런 생각은 교만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우쳐주는 말이겠지.“ 라고

제 편지를 받은 오라버니가

하는 말을 듣고서야 제 안에

아직까지도 끊고 버리지 못했던

‘마지막 남은 일에 대한 애착심’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일에 대한 애착심’은

‘저의 껍질 속에 마지막 남아 있던 힘’이었습니다.

 

이제 겉껍질도 다 썩어 없어졌고,

씨눈을 감싸고 있던 속껍질도

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그 순간에

완전히 썩었습니다.

 

이제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에서

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이제 제게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끈질기고 악착같이

저를 내신 아버지로부터 떼어놓으려 했던

세상과의 싸움을 끝내고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ㄷ)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님처럼

저도 당당히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덤 속에 들어가

썩은 속껍질을 벗어버리고

씨눈을 틔워 새로운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곧 “부활”하는 것이지요.

 

이제는 모든 고통이 다 사라지고,

한없는 고요와 평화 속에 머물며

다만 기다리면 됩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쁨과

영광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2처 십자가 위에서 죽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주님!

 

‘죽는다.’는 것이 오죽 힘이 들면

대 데레사 성녀가 ‘못 죽어 죽겠음을’

이라고 말했겠습니까?

 

소화 데레사 성녀는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기를 원하나

비애 없이 고통을 당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비애 중에 고통을 당하셨다.” 라고 했습니다.

 

당신께서 오죽 고통스러우셨으면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래서 주님! 저도 당신처럼

비애 중에 고통당하기를 바라며

죽기로 노력을 했지만, 죽는다는 것은

정말 힘들기 그지없네요...

 

그런데 고맙게도 주님!

제가 이곳에서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평상시에 제가 해보지도 못한 일까지

터무니없는 일을 하라고 하네요.

 

그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라면

그 누구라도 쉽게 받아들일 이지만

주님! 제가 이곳에서

죽어야 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들아, 이제 평화와 참된 자유의 길을 가르쳐 주겠다. 네 뜻을 따르는 것보다, 남의 뜻 받들기를 힘써라. 항상 많이 가지는 것보다 적게 가지기를 원하라. 항상 낮은 자리를 취하고, 모든 이에게 복종하기를 도모하라. 항상 하느님의 성의가 완전히 네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라. 이런 사람은 평화와 안정의 경계 안에 들어가리라.”(준주성범(145쪽.1996년.가톨릭출판사.‘평화를 얻는데 필요한 네 가지 주의’)

 

또, “네가 오로지 원할 것은 사나 죽으나 하느님께서 항상 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할 것뿐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모든 이의 수하에 겸손되이 너를 낮추어라. 누가 이런 말을 하고, 누가 이런 것을 명했는가 캐지 마라. 누가 네게 어떠한 것을 하라고 하였거나 하기를 바라는 듯 하거든 그가 어른이거나 아랫사람이거나 동무거나 상관할 것 없이 다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성의껏 그 뜻을 채우려고만 많이 힘써라.”...

 

외부에서 오는 그 어떤 명령에도

외부에서 오는 그 어떤 여건에도

마음 안에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기꺼이 받아들이며,

이 세상 그 어떤 것에 대한

마지막 욕심(일에 대한)까지

다 없앤 후에야 주님!

제 마음 안에 깊은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당신께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 34)

라고 하신 말씀의 뜻도 깊이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십자가를 지고

이 길로 들어 서 지금까지

저의 자존심, 체면을 깎아

내릴 수 있게 도와준 많은 사람들...

저에게 도리에 어긋난 것 같은

명령을 내려 제 뜻을 온전히 거슬러

꺾을 수 있도록 해 준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은 바로 제가

저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

십자가에 못 박혀 온전히

죽을 수 있게 도와 준 “저의 은인들”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 사랑하올 주님!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제가 이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저를 도와 준 그들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들 모두가 이 길로 나아 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십시오.

 

이제 겉껍질도 다 썩어 없어졌고,

씨눈을 감싸고 있던 속껍질도

일에 대한 애착심까지 다 버리는 그 순간에

완전히 썩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끈질기고 악착같이

저를 내신 아버지로부터 떼어놓으려 했던

세상과의 싸움을 끝내고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ㄷ)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저도 당당히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덤 속에 들어가

썩은 속껍질을 벗어버리고

씨눈을 틔워 새로운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곧 “부활”하는 것이지요.

 

이제는 모든 고통이 다 사라지고,

한없는 고요와 평화 속에 머물며

다만 기다리면 됩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쁨과

영광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3처 십자가에서 내리어져 어머니 품에 안기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저는 이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나라로 향해 나아가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세속의 나”를 온전히 죽였기에 그 시체를 세속의 부모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하늘나라와 세상은 반대이기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것을 돌려받으시는 것을 기뻐하시지만, 저의 부모는 자기 자신의 것을 돌려받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자신들이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준 것은 세속적인 것이지 하늘나라에 속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기의 소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뜻대로 자식들이 따라주기를 바라며, 자기들의 뜻에 자식들을 두드려 맞추려고 하기도 합니다. 실지로 자식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세상에 나올지, 무슨 생각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 자라나는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어찌 자식을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것은 당신께서 가져가시고 부모의 것은 부모가 가져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마태오 22, 21) 하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당연히 자기들의 것을 돌려받은 부모는 하느님께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억울하게도 생각하기에 큰 슬픔에 빠지게 되어 세상에 내보일 것 없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체가 된 자식을 보고 통곡하게 됩니다. 자기 자식이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내보일 것이 없는 시체와 다름없는 사람이 되어 돌아왔는데, 이 세상 어떤 부모가 큰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억울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너무나도 자비로우신 분이시기에 당신 창조사업의 협조자의 사명을 맡기셨던 이들의 슬픔과 아픔과 그때까지의 모든 수고와 자식이 겪은 모든 수고 수난의 값까지를 그 부모에게도 하나도 남김없이 다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부활, 승천한 후에 영원무궁토록 갚아주실 분이십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죽음의 상징이며 죄의 멍에인

십자가를 벗어버리도록 하십니다.

 

또한 혈육에게서 나온

“세속적인 나의 시체”를 혈육에게

돌려보내므로 인간적으로 당했던

극심한 고통을 혈육들도 나누어 받게 하시어

그들도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시켜

후에 영광도 함께 받게 하려고 하십니다.

 

주님! 사랑하올 주님!

이제 저는 “당신께서 만들어 주신 저(밀알의 씨눈)”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다 썩혀 너무나 편안하기만 한데, 시체가 되어 돌아 온 저를 품에 안은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큰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죽하면 시메온이 성모님께 ‘심장이 예리한 칼에 찔리는 듯한 고통’(루가 2, 35 참조)을 겪게 되리라고 예언을 했겠습니까?

 

이리 보고 또 저리 봐도,

이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이 되어

-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되어

돌아온 저를 보는 어머니의 아픔이

얼마나 클지 주님!

저에게는 가늠하기가 힘이 듭니다...

 

당신을 따르고자

이 길로 나 선, 저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어머니와 가족들을 주님!

 

결코 잊지 말아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4처 무덤에 묻히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주님께서 저의 빛 제 구원이시거늘 제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 시편 23, 4~6

 

주님, 사랑하올 저의 주님! 당신과 온전히 하나 되게 하소서. 모든 이가 저를 외면하고 버린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결코 이 몸을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모든 이와 모든 일로부터 멀어져 혼자 이방인이 된다 해도 저는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실 것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당하고 무덤에 묻히신 주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듯이 비천한 당신의 여종의 처지를 돌보아주시어 부활시켜 주시리라 믿나이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기다리겠나이다. 당신의 뜻이 있는 그날까지 조급한 마음을 없이하고 느긋하게 당신 뜻을 기다릴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시옵소서...

 

어디에, 어떤 처지에 처해지든 기쁜 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화로이 받아들일 은총을 주소서. 당신의 뜻에 한 치라도 어긋남 없이 다 채워드리게 하소서. 죽음이 그늘진 골짜기를 지나 당신 품에 안길 그날까지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하소서. 당신과 온전히 하나 되는 것만이 저의 최대의 원이옵니다. 주님, 저의 사랑하올 주님! 온 마음을 비우고 모든 일과 모든 이를 사랑하며 넓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저는 이제 무덤에 묻힘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동안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었던 자신의 모습을 다른 옷으로 감추고(수의를 입음) 모든 이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존재 가치도 없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완전히 모든 이들로부터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며 “잊힌 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하던 혈육에게마저도 아무 것도 아닌 사람, “무덤에 묻힌 사람”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희망에 찬 기다림일 뿐입니다. 다만 고요와 침묵 속에서 밖으로 나갈 때를, 예수 그리스도님과 함께 영광스러이 부활할 때를 기다리는 때입니다.

 

무덤은 캄캄함 땅 속이며, 육신이 썩어 흙과 하나가 되는 곳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 세상에서 사람이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이지요. 흙은 밟히는 존재이며, 언제나 낮은 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땅은 햇볕의 열이 가장 많이 닫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며, 생명이 만들어지고 키워지는 곳입니다.

 

주님! 사랑하올 주님!

 

사람들이 사는 그곳에 있을 때는

이곳이 이렇게도 편하고 좋은 곳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그저 두렵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곳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따라 겟세마니로 갔을 때

얼마나 극심한 번민과 공포에 시달렸나이까?

 

제가 1처에서 선뜻 사형선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화려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과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 또한 영광스러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님과 함께 있고자 한다. 그러나 그분과 같이 십자가의 길 한 처 한 처를 걷지 않으면 결코 부활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다.”(십자가의 길 시작부터 끝까지 제 영적지도자가 되어 주신 오라버니) 라고 응원해주는 말씀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는데, 주님!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다만 때를 기다리면 영광스러이 부활하신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제 캄캄하던 밤이 지나 서서히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

조금 있으면 반드시 밝은 빛이 비치는 새벽이 올 것이다.

그러면 힘차게 무덤을 뚫고 밖으로 나아갈 것이며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묵은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것이다.

한 알의 밀알로서가 아니라 열매 맺을 수 있는 싹으로서 이다.

죄인으로 고통당하는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영광에 빛나는 부활한 모습으로서 이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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