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일)
(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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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부활 제4주간 금요일 <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요한 14,1)>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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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4-26 ㅣ No.171852

 

오늘 복음 내용의 바로 전 대목(요한복음 13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수난과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신 후,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십니다. 또 충성을 장담하는 베드로가 당신을 부인하리라고 예고하신 뒤에 바로 오늘의 대목으로 이어지지요.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요한 14,1) 이미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의 심정이 어떨지 헤아리고 계십니다. 계속되는 유다인들의 배척과 공격도 힘겨웠지만, 설상가상으로 방금 스승님이 보여주신 행위는 마치 유언과도 같습니다. 당신 스스로 수난과 죽음을 받아안고 계시지만 제자들로서는 이 모든 것들이 그저 비유나 상징이기를 바라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마, 설마 하면서도 마음이 갈라지고 어지러워지는 건 피할 수 없었겠지요.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사실 지금 제자들에게 필요한 건 믿음입니다. 한없이 추락해 곤두박질 친 밑바닥에서, 발끝조차 디딜 곳 없는 벼랑 끝에서, 희미한 빛 한 줄기 찾을 길 없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죽음밖에 남은 게 없는 듯한 무기력 한가운데서 다시 힘을 쥐어짜서 생명과 진리를 부여잡게 만들 수 있는 실체는 믿음뿐이니까요. 삶의 질곡을 헤쳐오면서 깨지고 부서지고 갈기갈기 찢겨질망정 죽음같은 절망에 몸을 내맡기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킨 우리를 오늘 여기까지 오게 한 건, 돌아보면 믿음이었습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3) 제자들에게 앞으로 이어질 일들을 찬찬히 알려주시는 예수님의 자상함에 머무릅니다. 근데 예수님 참 바쁘시지요? 가서 자리를 마련하시고, 다시 오셔서 데려 가시고, 같이 계시겠다고 하시네요. 이미 세상에 오신 처음 움직임까지 치면 예수님의 동선이 아래위로 엄청나게 크고 게다가 반복적입니다. 그 반복을 조망하다 보면 아버지에게서 세상으로, 세상에서 다시 아버지께로, 또 세상으로, 또 아버지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하나의 길이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그 길 자체이십니다.

하강과 상승, 또 하강과 상승... 그런데 단순히 아래위를 몇 차례 오가시는 것이 아니라, 비움과 영광, 고통과 위로, 죽음과 부활... 참으로 극적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계시지요.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사도 13,26) 오늘 독서 내용은 사도 바오로의 안티오키아 회당 설교 중 일부인데, 예수님의 강생, 즉 하강에서 시작해 상승과 하강, 또 상승의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2)고 하십니다. "곳"이라는 표현 때문에 자칫 하늘 나라를 공간적으로만 상상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 존재, 하느님 현존, 하느님 주권, 하느님의 영광,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심장... 등 그분 앞에 서면 미물에 불과한 우리가 예수님 덕분에 (감히) 깃들여 머무를 수 있는 거대하고 영원하며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모르는 하느님의 품이 아닐까 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그런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품,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길이고 방향이고 동행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셨던 대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을 밟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갑니다. 올라가는 길일 수도 있고 내려가는 길일 수도 있지만 상관 없습니다. 목적지가 하느님이시니까요.

살다보면 오르막길도 만나고 내리막길도 만납니다. 마냥 올라갈 수도 없고, 마냥 내려만 가지도 않습니다. 선택할 수 없는 외길도, 고민스러운 갈림길도, 심지어 막다른 길도 마주치게 되는 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순리입니다. 올라갈 때 목에 힘이 덜 들어간 만큼 내려가는 길이 유연할 것이고, 올라갈 때 어깨가 너무 치솟지 않았다면 내려갈 때 가벼울 겁니다. 우리가 걷거나 서 있는 모든 길이 예수님이고, 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향해, 그분 품을 향해 그 안에 깃든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짊어지고 묵묵히 뚜벅뚜벅 나아가는 중입니다.

목적지가 분명한 우리는 행복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앞으로 닥쳐올 수난과 고통, 죽음 앞에서 이 말씀을 하고 싶으신 듯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오늘 벗님의 마음상태가 어떠세요? 뭔가 불안하고 걱정스러우세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하기도 한가요? 괜히 나이탓인지 우울해지고 삶의 의미도 재미도 별로 느끼지 못하시나요? 괜히 화가 나고 짜증스럽기도 하나요? 조급한 마음이 일고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지나요?

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내 마음이 이렇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그럴 때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쓸데없는 걱정말고 그냥 부족한대로 사랑하십시오. 그리되면 부정적으로 기울었던 내 마음이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래야 내 맘이 밝아지고 나는 걸어가는 복음이 될 것입니다. 아멘.

 

 


▶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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