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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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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3-25 ㅣ No.170892

[성주간 월요일] 요한 12,1-11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베타니아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집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그 잔치가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마리아가 예수님께 하는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잔치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잔치에 참여한 마을 사람들은 그 숨은 의미까지는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저 예수님 덕분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라자로를 축하하기 위한 잔치 정도로 생각했겠지요.

 

잔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립니다. 순 나르드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오늘날 우리 화폐 가치로 약 3천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물품입니다. 그 귀한걸 예수님 발에 아낌없이 쏟아붓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 유다 이스카리옷이 왜 그 비싼 향유를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더 가치있는 일에 사용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낭비’하느냐고 마리아에게 핀잔을 주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가난한 이들을 그만큼 많이 생각하는 의로운 사람임을 드러내려고 했겠지만, 그 진짜 의도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그 향유를 온전한 상태로 예수님께 드리면 그것을 처분하여 자기 주머니를 채울 속셈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결코 비싼 향유를 그냥 ‘낭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존경과 사랑, 자기 오빠를 살려주신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기꺼이 ‘봉헌’한 것이었지요. 또한 온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수난당하시고 죽으시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려는 예수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드리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왕을 추대하거나 중요한 임무를 맡은 사람을 파견하는 의미가 있다면, 발에 기름을 붓는 것은 시신에 향유를 발라 ‘염’을 하는, 즉 장례를 치르는 의미가 있기에, 마리아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죽음이 임박한 예수님의 장례를 먼저 치뤄드리려 했던 겁니다.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기념하고 간직하기 위한 중요한 ‘의식’이었으니 돈이 얼마가 드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지요. 마리아는 더 비싼 것이었다고 해도 기꺼이 바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리아의 깊고 순수한 사랑이 죽음을 앞두고 마음이 심란해졌던 주님께 더할 나위 없이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것저것 재거나 계산하지 않고 아낌없이 주님께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효율성과 경제성이라는 세상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라면 고통과 시련, 손해와 희생까지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사랑은 숫자로 판단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기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기 자신까지 내어주는 희생과 헌신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성주간을 지내고 있는 지금 나는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유다처럼 돈과 효율을 먼저 따지며 주님을 앞세워 제 몫을 챙길 생각만 하는지, 아니면 마리아처럼 주님과 그분 뜻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그분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각오로 사는지.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유다처럼 재물 먼저 챙기면 주님을 잃게될 것이고, 마리아처럼 주님을 먼저 챙기면 그분을 통해 ‘전부’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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