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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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신 [lucy1213] 쪽지 캡슐

2000-04-30 ㅣ No.1105

     

       

    저의 할머님께서는

    어느 날부터인가 건강이 몹시 약해지셨습니다.

    그래서 몇 차례나 입원을 거듭하시다가

    한동안 통원 치료를 받고 계실 때였습니다.

     

    할머님께서 병원을 가실 때에는

    항상 아버지가 업고 다니셨는데
    그날을 저도 함께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내버스에 올라 뒷자리에 나란히 앉게 되었죠.

     

    그런데 할머님께서

    버스를 타고 오시던 중에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할머님께서 토하신 것이 차 바닥에 쏟아지면서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아저씨 바짓자락에도 묻게 되었지요.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여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순간

    버스가 멈춰서면서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쏠리는 가운데
    아저씨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얼른 일어나

    할머님이 지금 몸이 아프시다며 사정을 말씀드렸지만
    그분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노인네가 몸이 아프면 택시나 자가용에 태워서 다닐 일이지

    왜 하필 버스를 타서 남의 옷을 더럽히냐며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면서 "재수가 없으려니..." 라며

    혀를 차고  욕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아저씨의 그 말에 불끈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제가 나서서 어른과 싸울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승객들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입고 있던 점퍼를 벗었습니다.

     

    그러더니 할머님이 토하신 것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저씨의 바지부터 닦아주고

    또 버스 바닥도 옷으로 깨끗이 닦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옷을 벗어 토사물을 닦으니

    승객들은 다들 놀라는 얼굴이었고
    화를 내던 그 아저씨마저 조용해졌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뒤처리를 하시더니

    할머님을 들쳐업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이윽고 버스는 떠나고

    우리는 근처 구멍가게에서 비닐봉지를 하나 얻었습니다.

     

    그 봉지에 아버지의 점퍼를 넣은 채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제서야 저는

    할머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할머님은 저한테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자꾸만 아버지의 등에 얼굴을 파묻으셨지만
    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할머님의 얼굴은 온통 눈물 범벅이었고
    눈두덩도 벌겋게 부어 있었습니다.

     

     

    결국 할머님은

    그로부터 반년 후,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

 

 

 

    그 사람은 꼭 그렇게 우리 할머니를 울려야만 했을까요.
    그 때 할머님은 분명 `이제 생이 얼마나 남았나’ 하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계셨을 텐데...

     

    그런 할머님께 남은 시간이나마 한번이라도
    더 웃는 얼굴로 세상을 보실 수 있도록 해드렸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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