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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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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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2-08-11 ㅣ No.156851

 

2022년 8월 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복음 마태 18,21--19,1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19,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어느 책에서 다음과 같은

아주 인상적인 글을 쓰셨습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이 문장에서 커다란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것에서 계속 감탄하는

사랑은 행복의 시간이

길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커다란 행복만을

꿈꾸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말하며,

이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하고,

내 가족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남부끄럽지 않게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만을

생각하며 쫓아가는 사람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이 전부는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의 빈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행복을 자주 느끼고또 행복감을

길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엄청난 성취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엄청난 성취는 순간의 만족에

그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상도 내 행복을 위해

필요한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귀한 시간입니다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것은 일상의 모든 것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크고 대단한 일회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용서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구약시대의 율법에는

동태복수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아라.’라는 법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복수가 아닌

용서하라는 새로운 윤리적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유다인들도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하여

남을 용서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는 4번을 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새 나라의 새 법에서

몇 번까지 용서해주어야 하는지를

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곱 번을 생각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기대와 달리,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에는 한도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빚진 것을

처리하는 한 왕의 처사를

하늘 나라에서 죄를 용서하는

하느님과 비교 설명하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커다란 용서를 통해 하느님의

뜻대로 행동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용서에는 한도가 없기에,

계속된 용서를 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만이 하느님의 용서 역시

계속해서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인 것처럼,

우리가 용서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면서 행복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오늘도 주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위안은 극도로 힘들고 추한 순간,

서로에 대해 아름다운 질문을

던지는 기술이다(데이비드 화이트)

(성녀 클라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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