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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간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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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과 김윤석이 주연한 영화 ‘남한산성’이 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에 포위된 남한산성에서 신하들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한쪽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청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실리’를 주장하고, 다른 쪽은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왕은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청나라 황제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7세기의 국제 질서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엄정하고 냉혹했습니다. 아무리 명분이 옳아도 그것을 지킬 힘이 없으면 다른 나라의 요구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에는 외교와 경제와 국방의 역량을 키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자강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비슷한 선택 앞에 서 있습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위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군사적인 기여를 요구하였고, 우리 정부는 파병을 포함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실리를 생각하는 사람은 동맹과 에너지 수송로를 지키고 안보와 경제에 미칠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 참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명분을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젊은이들을 위험한 분쟁 지역에 보내는 일은 신중해야 하며, 정당성이 충분하지 않은 전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2003년 이라크 파병 때에도 우리는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어느 쪽이든 가볍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선의만으로 평화를 지키기 어렵기에 국력을 키워야 하지만, 그 힘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판단할 지혜와 양심도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도 영적인 자강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 말하는 힘은 세상이 말하는 힘과 다릅니다. 세상은 높은 지위, 많은 재물, 강한 권력과 넓은 인맥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고 자기의 뜻을 관철하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힘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경청, 공동체를 위한 헌신, 가난한 이웃과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랑입니다. 세상의 힘은 다른 사람을 무릎 꿇게 하지만, 복음의 힘은 내가 먼저 무릎을 꿇고 이웃의 발을 씻어 주게 합니다. 미움을 참아 내고 용서하는 것,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의와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신앙인의 참된 자강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군대와 무기로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힘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병든 이를 고쳐 주고, 죄인을 용서하며, 굶주린 이를 먹이고, 마침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세상은 십자가를 패배라고 생각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구원의 길로 바꾸셨습니다.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을 드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초대받은 사람들은 밭을 샀다는 이유로, 겨릿소를 샀다는 이유로, 혼인하였다는 이유로 잔치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밭과 소와 혼인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하느님의 초대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재산과 일과 관계를 관리할 능력은 있었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초대에 응답할 영적인 능력은 부족했습니다. 결국 주인은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눈먼 이들, 다리 저는 이들을 잔치로 불러들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명예와 권력과 재물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그 초대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반면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겸손한 사람은 기쁘게 초대에 응답합니다. 국가가 냉혹한 국제 질서 속에서 자신을 지킬 힘을 길러야 하듯이, 우리도 세상의 유혹을 이겨 내고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할 영적인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 힘은 기도와 말씀 안에서 자라고, 성체성사 안에서 굳세어지며, 헌신과 나눔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에게 명예와 권력과 재물이 있더라도 그것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오히려 그것의 종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이웃의 말을 경청하며,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우리의 잔치에 초대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잔치로 불러 주실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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