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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일 가해,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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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일 가해,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마태 28,16-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은퇴하신 한 선배 신부님이 평소 꿈이었던 화가가 되기 위해 회화(繪畵)반에 등록하셨습니다. 첫 수업 시간에 강사는 원하는 그림을 자유롭게 그려보라고 했지요. 그런데 막상 붓을 들고 커다란 캔버스를 마주하니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혹시나 실수해서 캔버스를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가만히 앉아 계셨는데 강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비결은 무엇을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지 말고 우선 캔버스에 붓을 들이대고 아무거나 그려보는 겁니다. 겁내지 말고 일단 붓질을 시작하시면 그림이 나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신부님은 첫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같이 회화를 배운 다른 신부님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하셨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분들이 ‘전교’를 대하는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요. 누구에게 어떻게 전교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서,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교회 공동체에 오히려 민폐를 끼칠까 걱정되어서 아예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전교도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일단 시작하면 좋은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일단 시작하고 노력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좋은 길로 이끌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전교의 사명을 받은 제자들도 우리들처럼 부족하고 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을 만나뵙고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했지요. ‘경배’란 절대적 믿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낮은 자세로 엎드리는 최고의 예배행위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는 와중에도 “더러는 의심하였다”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기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와중에도 오롯한 믿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이 의구심과 불신으로 갈라져있던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부족한 믿음과 불신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당신께서 바라시는 모습으로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도 않으십니다. 대신 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당신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에 있지만 우리의 능력이나 조건으로 완성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부족함과 약함, 실수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당신 뜻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뜻은 당신 자녀인 우리 모두가 구원받고 참된 행복을 누리는 것이지요.
그런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하느님의 심오한 뜻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행동으로 분명히 드러내셨다면, 이제는 우리가 세상에 파견되어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계명과 가르침들을 널리 전해야 하는 겁니다. 이런 우리의 소명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오늘의 제2독서에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파견되어 복음을 선포해야만 많은 이들이 그 복음을 들을 수 있고, 복음을 들음으로써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자 주님이심을 믿을 수 있으며, 그 믿음으로 주님을 섬겨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이지요. 우리에게 맡겨진 전교라는 소명이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믿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 역시 신앙의 선배들이 선포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게 된 이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전교 덕분에 주님을 믿음으로써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된 우리들이지요. 그러니 중요한 의무로써, 또 마땅한 보은(報恩)으로써 우리도 다른 누군가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주어야 하는 겁니다.
전교는 그저 말로만 ‘예수님을 믿으라’고 떠드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름으로써 내가 먼저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고, 그 기쁨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가 살아내야 할 ‘전교의 삶’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를 세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하십니다. 첫번째는 말씀 선포의 차원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함으로써 그 안에 담긴 하느님 말씀이 어떤 뜻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깨달은 하느님의 뜻을 내 머리 속에만 가둬두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분명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삶으로 증거하는 차원입니다. 말로만 하는 복음 선포는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스며들지 못하며 오래 가지도 못합니다. 내가 깨달은 말씀을 행동과 삶으로 드러내야만 그것을 보는 이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일으켜 그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성사생활의 차원입니다. 우리가 전교하는 궁극적 목표는 그저 좋은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즉 그들과 우리 모두가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사랑을 충만하게 누리며 그분께서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함인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성사생활을 함께 하는 이유인 겁니다.
사람들을 참된 그리스도 신앙으로 이끄는 이들은 밖으로 나가 ‘예수 믿으라’고 떠들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그분 자녀임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그분 제자임을 삶으로 당당하게 드러낼 뿐이지요. 우리가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긋는 성호경 한 번이 방황하는 영혼을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 하는 고민 하나, 노력 하나가 나 자신과 나를 보는 이 모두를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선교의 삶입니다.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또한 기쁘게 사는 우리 모습 자체가 복음 선포이며 선교입니다.
* 함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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