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6일 (금)
(녹)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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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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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56 ㅣ No.192485

김건태 신부님_바리사이의 누룩

 

예수님은 당대의 종교적 지도자들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겨냥한 불행 선언을 마치시고, 이제 제자들만을 대상으로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불행 선언이 결국 제자들을 위한 또 다른 차원의 가르침임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바로, 유다교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이 지상교회의 종교 지도자로 역할을 다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할 것”을 이르십니다. 바리사이들의 위선은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형식적 행위에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은 행위를 경계하도록 촉구하십니다. 마음속 깊이 숨겨진 성향들은 말과 행동을 통하여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위선은 언젠가 벗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진리와 대충 타협하려는 온갖 시도는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제자들은 또한 신앙을 고백하는 시간과 장소에 대하여 고민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증언은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울려 퍼져야 합니다. 동굴이든 지하 묘지이든, 연회실이든 사무실이든, 감옥이든 병영이든 진리를 위한 증언은 모두 ‘밝은 데’로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 무엇도 이 증언이 한낮에 울려 퍼지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제자들은 분명 예언자들처럼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진정 하느님만을 두려워했기에 죽음 따위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실 능력을 지니신 분이기에,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 하는 자들”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의 두려움을 다른 두려움과 대립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미소한 피조물까지도 ‘잊지 않으시며’ 헤아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살아야 하며, 그 믿음으로 주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모든 벗, 사도들을 기초 삼아 세운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마땅히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나 세속적인 인간관계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거나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모든 신앙인은 늘 하느님의 시선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하루, “머리카락 까지도 세어 두실” 정도로 우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보듬으시며 따뜻한 시선으로 돌보아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두려움 없이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며 실천하는, 활기찬 신앙인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2,1-7: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먼저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1절)을 경계하라고 하신다. 누룩은 작은 것 같지만 온 반죽을 부풀게 하듯이, 위선은 작아 보이지만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한다. 겉으로는 거룩해 보이지만, 속은 탐욕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는 삶, 그것이 바리사이들의 모습이었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이 위선에 물들지 않도록 경고하신다. 

 

이어서 주님은 두려움의 방향을 새롭게 가리키신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 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4-5절) 즉,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단순히 벌을 받을까봐 무서워하는 공포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저버릴까봐 두려워하는 경외심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In Psalmos 111 요약)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주님은 곧바로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셨다.”(6-7절) 참새조차 잊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절대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머리카락까지 세신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세밀히 아신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불신앙이다.”(Homilia in Matthaeum 34 요약)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두려움, 즉,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을 이기는 길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길이다. 하느님을 두려워할 때 세상의 두려움은 작아지고, 우리는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더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하느님 앞에서의 진실을 더 두려워하는가? 나는 위선의 누룩 속에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과연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 속에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간다면, 머리카락 하나도 잊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담대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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