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4일 (수)
(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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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 마음의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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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b38927] 쪽지 캡슐

13:17 ㅣ No.3064

이번 추석 전에 귀한 메론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상자에는 큰 메론이 네 개 들어 있었습니다.

 

평소 과일을 좋아하지만, 귀한 선물이라도 우리 부부가 오랫동안 먹기에는 한 개도 많았습니다.

그대로 두면 메론이 상하고 맛도 없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 개를 꺼내 들고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이렇게 청했습니다.


“주님, 메론이 정말 필요한 사람을 제게 보내 주시면 서슴없이 드리겠습니다.”

 

성당에 도착하여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제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성당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메론 하나쯤은 스스로 사 먹을 수 있는 형편으로 보였습니다.

 

미사가 끝난 뒤에도 남아서 기도했지만, 사람들은 하나둘 자기 갈 곳으로 떠났고 성당에는 더 이상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보좌신부님께서는 명절에 혼자 계실 수 있으니, 드려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데 성당 마당에는 보좌신부님의 차량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가족들을 만나러 떠나신 모양이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당에는 메론이 필요한 사람들이 없구나.’

 

메론 두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비실에 들렀습니다.

 

마침 명절에도 홀로 근무하시는 경비 아저씨께서 식사를 하고 계시길래, 메론을 반가워하실 것 같아 한 개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께서는 무척 기뻐하시며 환하게 웃으셨고,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집으로 향하던 길에는 미화원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평소에도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이 고마워 나머지 메론 한 개를 드렸습니다. 아저씨께서는 비싼 메론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기뻐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이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이 너무 아름답게 보여 저는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렸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복음에서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루카 10,30-37)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이 말씀은 우리가 누구를 이웃으로 삼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이웃은 단지 가족이나 친척, 친구처럼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날 저는 주님께서 왜 성당에서 메론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지 않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메론을 나누어야 할 이웃은 성당 안이 아니라 성당 밖에 있었던 것입니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 자선

 

예수님께서는 자선을 베풀 때 누구를 초대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십니다.


(루카 14,12-14)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제가 메론을 드린 두 분은 제가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모르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 무엇인가를 돌려받을 이유도, 보답을 기대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기뻤습니다. 이 기쁨은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만약 평소 알고 지내던 친한 사람들에게 메론을 드렸다면, 그분들도 제게 무엇인가를 돌려주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면, 저는 가진 것을 비우기보다 오히려 무언가를 돌려받는 관계 안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자선은 보답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아무런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이웃에게 가진 것을 내어놓는 사랑입니다. 보답이나 인정을 바라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때, 우리는 자신을 채우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마음의 가난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지적하십니다.

 

(루카 11,40-41)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자선은 단순히 가진 것을 나누는 외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것을 내어놓고 자신을 비우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비울 때, 우리는 마음의 정화를 이루고 참된 기쁨을 얻습니다.

 

자신을 채우려는 마음을 비우고 사랑으로 이웃에게 내어놓는 사람, 그가 바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마태 5,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반면, 외적인 종교 의무를 지키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자신을 높이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리사이들처럼 불행한 사람입니다.

 

(루카 11,42-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참된 자선은 외적인 행위에 머물지 않고, 내면에서부터 자신을 비우는 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이웃에게 가진 것을 내어놓으며,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과 인정받으려는 욕심을 비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깨끗하고 가난한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앞서 나누었던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묵상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 참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https://blog.naver.com/letspraytogether1004/224380546964


하느님의 자비를 입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로 죄에서 깨끗해지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1테살 4,3)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루카 6,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마태 9,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자선은 하느님의 자비를 이웃에게 구체적으로 베푸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가진 것을 내어놓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본받아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보십시오


마리아 사제운동 메시지 115번 「마음의 참된 가난」에서 성모님께서는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과 당신께서 바라보시는 시선이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115. 마음의 참된 가난,3)

"이 천상 엄마는 너희 눈과는 다른 눈으로 만물을 본다. 그것은 '빛과 사랑'이 담긴 눈길이다. 사람이 보기에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내게는 큰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이어서 세상이 무시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을 특별한 애정으로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115. 마음의 참된 가난, 5-6)

"만물을 이 엄마의 눈으로 보는 습관을 길러라. 세상이 무시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흐뭇함과 특별한 애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아라.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김 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보잘것없도록 작은 사람들, 비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네 마음으로는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사람들로 여겨야 한다."


(115. 마음의 참된 가난, 9)

"마음의 참 가난은 내 부름을 받는 이들에게 주는 나의 선물이다. 내 사랑을 끌어당기는 것은 비어 있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야말로 내 음성을 감지하여 알아들을 수 있는 파장(波長)인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마음의 참된 가난이 당신의 사랑을 끌어당기는 비어 있는 마음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고, 가난하고 고통받으며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을 성모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보답이나 인정을 바라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놓는 것. 이러한 사랑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비우고 마음의 가난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뜻과 집착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여, 그분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을 닮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 참고) 마음의 가난,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예물 : https://youtu.be/Kfmzlew1RF4


빌럼 판 헤르프, 《빵을 나누어 주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약 16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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