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
|---|
|
김건태 신부님_불행선언 하나
오늘부터 사흘 동안 우리는 유다교의 지도자들인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을 겨냥한 비난의 말씀들, 나아가 불행의 말씀들을 듣고 묵상합니다. 마태오 복음 23장의 내용과 유사하기는 하나, 루카 복음이 바리사이들에 대한 비난과(37-44절) 율법 교사들에 대한 비난을(46-52절)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는 점 정도를 차이점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루카 복음 저자는, 마태오 복음 저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해 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유다교와 논쟁을 벌이는 데에 유용한 예수님의 말씀들을 이 자리에 한데 모아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첫째 비난은 그분을 식사에 초대한 바리사이가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하는 이의제기에서 비롯됩니다. 식사 전에 손이나 몸을 씻는 것은 일종의 ‘목욕재계’로서 당시의 유다교도들, 특별히 지도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식으로 각인되어 있었으나, 예수님은 이를 배척하시면서, 새로운 가르침으로 대체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의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신앙 행위를 참된 내적 신앙으로 끌어올리고자 하십니다. 이러한 의도에서, 예수님은 식기 청결, 유다인들에게 단순한 위생적 차원을 넘어 종교적 정결 예식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던 식기 청결을 예로 바리사이들을 질타하십니다. 식기를 세척할 때 겉과 속을 깨끗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에서 속은 그대로 둔 채, 겉만 깨끗이 하는 행태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그 ‘속’을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시며,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나온다.”(마태 15,19) 하고 지적하산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겉 이상으로 속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마태오 복음과는 달리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은 잔 속을, 곧 ‘너희의 속’을 깨끗이 하는 방법을 역설적으로 제안하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하는 말씀을 통하여, 그 속이 자선을 베풀기에 합당한 것으로 채워져 있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속이 자선을 향한 마음으로, 곧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로 채워져 있는 것이 바로 속을 깨끗이 하는 구체적인 방법임을 일러주십니다. 이를 통해, 속뿐만 아니라 겉까지, 마음뿐만 아니라 행위까지, 나아가 모든 것이 깨끗하게 되리라 예고하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유다교의 율법과 종교적 전통에 대해 유권 해석을 내리던 바리사이들의 위선적 행위를 고발하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에서 더 중요한 요소들인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소홀히 하고,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 찬 마음을 깨끗이 하기를 마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신앙생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신앙생활에는 권위가 있을 수 없으며, 기쁨과 보람 또한 함께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아는 대로 행동하는 자세를 뛰어넘어, 믿는 대로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자랑하는, 활기찬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1,37-41: 겉은 깨끗이 닦아도 속에는 착취와 사악이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전통적 정결례에 집착하면서도 마음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 차 있음을 지적하신다. 이는 외적 종교 행위와 내적 회개 사이의 불일치를 드러내는 말씀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잔과 접시의 겉을 닦으면서 속을 더럽힌다면, 그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외식일 뿐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가 아니다.”(Hom. in Matth. 72 재구성)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속’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중심인 마음(καρδία)이다. 성경에서 마음은 하느님께서 사시는 자리이자, 사람이 진정 누구인지 드러나는 곳이다.(마태 5,8 참조)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41절)라고 말씀하신다. 성 암브로시오는 “자선은 외적 정결례보다 훨씬 강력한 정화의 힘을 가진다. 왜냐하면, 자선은 마음을 정화하고, 그 마음에서 다시 모든 행위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Expositio in Lucam VII, 115 요약)라고 강조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자선을 영혼의 씻음으로 이해해 왔다. 토빗기와 집회서가 말하듯이, 자선은 단순한 돈이나 물질의 나눔을 넘어,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총의 길이다.
성 가이사리우스는 “자선을 단지 가난한 자에게 빵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마라. 형제를 용서하는 것도 자선이고, 죄인을 훈계하는 것도 자선이며, 기도 중에 다른 이를 기억하는 것도 자선이다.”(Sermo 25,4 요약)라고 가르쳤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큰 선행도 무익하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작은 행위도 위대하다.”(Sermo 34 요약)라고 말한다. 즉, 자선은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다.
교리서는 “자선은 영적 자선과 육적 자선으로 구분된다.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히고, 죽은 이를 묻는 것은 육적인 자선이다. 무지한 이에게 가르치고, 의심하는 이에게 조언하며,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죄를 용서하고, 불의를 참아내며, 적을 사랑하는 것은 영적 자선이다.”(2447항)라고 가르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자선 행위를 가르치며, 이것이 신자의 삶을 정화하고 성화로 이끈다고 강조한다.
오늘 복음은 신앙인의 삶이 단순한 형식이나 외적 의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내적 정화와 사랑의 행위로 드러나야 함을 일깨워 준다. 나는 겉으로는 신앙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 마음속에는 탐욕과 자기중심주의가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자선’을 단지 물질적 나눔으로만 한정시키지 않고, 용서·위로·훈계·기도와 같은 영적 자선으로 확장하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가장 큰 정화의 힘은 자선(사랑)에 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선을 통해서 우리는 참으로 깨끗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192441 |
10.13.화 / 한상우 신부님 |
2026-10-13 | 강칠등 |
| 192440 |
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
2026-10-13 | 박영희 |
| 192439 |
전삼용 신부님_바리사이의 초대 |
2026-10-13 | 최원석 |
| 192438 |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
2026-10-13 | 최원석 |
| 192437 |
이영근 신부님_“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 |
2026-10-13 | 최원석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