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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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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모든이에게 열려 있는 하느님 나라
[말씀] ■ 제1독서(이사 5,1-7) 기원전 8세기, 상류계급 출신의 이사야는 당대 지배계급의 비도덕성을 거슬러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는 지도자들이 공정과 정의를 경시하는 현실 속에서 하느님의 개입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위협적인 세력으로 다가오는 아시리아 제국을 통하여 전개될 것임을 내다보며 예고합니다. 포도 재배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포도밭이라는 비유를 들어,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은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저버림을 받게 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세상에 하느님을 증언하기 위해 선택된 이스라엘은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지 못했으므로 그 특권을 빼앗길 날이 올 것입니다. ■ 제2독서(필리 4,6-9)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인지를 설명합니다. 이 공동체는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공동체로서 감사의 마음과 평화 속에 사는 공동체이며, 언제나 참되고 고결한 것, 의롭고 순결한 것, 사랑과 명예를 받기에 합당한 것들을 추구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이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복음(마태 21,33-43) 포도밭 비유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은 율법과 성전을 자기들의 것인 양 자랑하고 있는 바리사이들과 대사제들의 잘못된 의식을 질타하십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소홀히 한 채 하느님으로부터의 선택을 하나의 특권으로 인식했으며, 이로써 모든 민족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왜곡시켰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제 그들이 아니라 그 나라를 향해 열려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유다교 지도자들의 저항은 거세져 그들로부터 저버림과 단죄를 받을 것이나, 예수님은 끝내 하느님의 새 성전 머릿돌이 되실 것입니다. [새김] 그리스도교 신자들로서의 우리, 우리의 자부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혹시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왜곡된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 그분의 자리를 취하려는 사람들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 하느님의 구원계획 실현을 위해 봉사자로 선택된 사람들이지, 그 계획을 함부로 조정하거나 변경 또는 변질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잘못된 자만심에 빠져 있는 경우,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전혀 다른 세계 또는 종교의 사람들이 우리가 수행해야 할 사명을 너무나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때로는 충격까지 받습니다. 이러한 놀람과 충격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우리의 잘못된 의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언자들의 뒤를 이어 예수님이 박해와 죽음 앞에 서신 것은 선택된 사람들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다는 의식을 바로잡기 위함이었습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이든 새 이스라엘 백성, 곧 그리스도교 신자이든 하느님께서 이들을 선택하신 목적은 세상의 모든 이를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선택에 따른 우리의 사명은 이웃의 구원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우리에게, 나아가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에 큰 기쁨과 함께 중대한 사명을 부여해 줍니다. 교회를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성실한 일꾼들의 모임으로 평가해 주신다는 자부심과 함께, 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소출을 바쳐야 한다는 사명, 공정과 정의를 바탕으로 서로를 아끼고 살피는 구원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명 앞에 섭니다.
이번 한 주간, 남을 업신여김이 아니라 존경하는 마음,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모습,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으로 구원의 세계를 미리 맛보는 가운데, 이웃의 구원을 위한 노력이 바로 우리의 구원을 밝게 해 준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는, 신앙인의 나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태 21,33-43: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1. 하느님의 포도밭: 사랑의 계약과 구원의 역사 오늘 복음의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는 단순한 경제적 비유가 아니라, 구원사의 상징적 요약이다.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며,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가꾸신 선택된 백성을 상징한다.(호세 10,1; 예레 2,21) 이사야서의 “포도밭 노래”(5,1-7)는 상처받은 하느님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하느님께서는 울타리를 치고, 망대를 세우고, 술틀까지 마련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좋은 포도 대신 들포도”를 맺었다.
이것은 하느님과의 계약적 사랑이 인간의 불충으로 배반당한 비극을 드러낸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포도밭을 이렇게 해석한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 당신의 포도밭을 세우셨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뜻이 아니라, 자기 욕망의 열매를 맺는다면, 우리는 이미 그 포도밭에 돌을 옮겨 놓은 자들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동업자’(cooperatores Dei)로 부르시며, 그분의 사랑이 인간의 자유 안에서 결실을 기다리신다. 이 포도밭은 단순히 과거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를 가리킨다.
2. 아들의 파견: 구원의 절정과 인간의 거부 비유의 절정은 주인이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낸 사건이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37절) 그러나 그들은 아들을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내던져 죽였다. 이는 명백히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한다. 히브리서가 말하듯, “하느님께서는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번에 걸쳐 여러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한다. “주인은 끝까지 기다리셨다. 하느님의 인내는 형벌보다 앞서며, 자비는 정의보다 크다.”(Homilia in Matthaeum 68,3 현대 요약) 이처럼 하느님은 죄를 벌하시기보다 회개를 기다리시는 분이다. 그러나 인간이 끝까지 그 아들을 거부할 때, 구원의 질서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간다.
3. 버려진 돌, 머릿돌이 되다.: 십자가의 역설 예수님께서는 시편 118편을 인용하시며 말씀하신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22절) 이 인용은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를 요약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버린 그리스도를 새 창조의 머릿돌로 삼으셨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건축에서 머릿돌이 되셨다. 그분 안에서 율법과 예언자들이 결합되고, 하늘과 땅이 다시 연결되었다.”(사상 요약) 교리서는 이 구원의 중심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결정적 도구이며, 부활은 그 계획의 완성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인간의 죄를 극복하는 사랑의 승리이다.”(599-620 참조) 즉, 버림받음의 자리가 구원의 기초가 되었다는 역설이 하느님 나라의 신비다.
4. 새로운 백성: 교회, 하느님 나라의 열매 맺는 공동체 예수님은 선언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43절) 이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배척이 아니라, 교회의 탄생을 예고한다. 하느님 나라는 혈통이 아니라, 믿음의 열매로 주어진다. 베드로 사도는 이를 명확히 표현한다.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1베드 2,9)
교회는 이제 하느님의 포도밭의 새로운 소작인, 즉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열매 맺는 새로운 계약의 백성이다. 교회 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계약을 세우시어,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부르셨다. 이 백성은 사랑으로 살아가며,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9항 요약)
5. 열매 맺는 신앙: 행동하는 교회의 본질 하느님의 나라는 단순한 이론이나 교리의 문제가 아니다. 복음은 분명히 말한다.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나라가 주어진다고 하였다. 잔프랑코 바르발리오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본질적 특성은 행동하는 데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정통교리는 불충실한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다.”(I Vangeli, Assisi 1975, p. 472)
바오로 사도도 이 점을 강조하며,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을 간직하십시오.”(필리 4,8)라고 권고한다. 이는 신앙이 사유에 머물지 않고, 행위로 열매 맺는 것을 뜻한다. 교리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신앙은 행위 안에서 완성된다. 믿음은 사랑을 통하여 활동할 때에만 살아 있는 것이다.”(1815항; 갈라 5,6 참조)
6. 결론: 포도밭의 열매, 교회의 사명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는 하느님의 포도밭 안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하느님께서 맡기신 포도밭은 곧 우리의 공동체,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포도밭에서 신앙과 사랑, 정의와 자비, 용서와 평화의 열매를 맺도록 부름을 받았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대가 포도밭의 일꾼이라면, 그대의 손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를 보라. 하느님께 열매를 바치지 않는 자는 이미 포도밭 밖에 있는 자다.”(Sermo 179,2 요약)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시작된 구원의 포도밭은 오늘도 우리 안에서 자라난다. 그분께 충실한 이들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새 백성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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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90 |
"오늘 예수님은, 그저 하느님의 자비를 베푸시는 분입니다."(루카 10, 37 마음에 와 ... |
06:30 | 한택규엘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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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4 | 박양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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