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4일 (일)
(녹) 연중 제27주일 주인은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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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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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4:49 ㅣ No.192275

‘인류 미래 보고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에는 미래의 로봇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달과 화성에는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동굴이 있는데, 이런 곳은 외부보다 온도 변화가 적고 방사선과 운석의 위험을 피할 수 있어서 미래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구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먼저 들어가기 어려운 그곳에 로봇을 보내 탐사하고, 언젠가는 사람이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 벌과 나비처럼 꽃의 수분을 돕는 작은 로봇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군사 분야에서도 이미 드론을 비롯한 무인 장비가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역할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생각하게 만드는 분야가 있습니다. 인공 자궁과 같은 기술입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언젠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돌보고 출산을 돕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기술은 여러 윤리적인 문제와 함께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기술은 출산의 위험과 고통을 줄여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가지 질문은 남습니다. 기술이 생명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서 사랑까지 만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서 많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엄마의 품, 아버지의 손길, 사람과 사람이 맺는 사랑과 신뢰까지 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 신앙에서 결코 대신 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복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전한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경계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지식이 아무리 발전하고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향상된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은 아닙니다. 권력도, 재물도, 명예도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욕망을 채워 주고 성공과 번영만을 약속하는 것도 참된 복음은 아닙니다. 참된 복음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고, 죽음을 넘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없는 복음은 온전한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희생 없는 사랑, 용서 없는 신앙, 나눔 없는 종교는 복음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낼 수 없습니다. 집 짓는 이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듯이, 세상의 눈에는 실패처럼 보였던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구원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반석이며, 그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답하지 않으시고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사제도 지나갔고 레위인도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인들이 가까이하기를 꺼렸던 사마리아인은 멈추었습니다. 상처를 싸매 주고, 자기 짐승에 태우고,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바꾸십니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는 대답합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여기에 신앙의 핵심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 주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명을 알고 있습니다. 교리를 알고 있고, 성경을 읽고,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모두 중요합니다. 종교에는 교리와 신학이라는 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틀의 목적은 우리를 그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어 주는 데 있습니다. 악기는 악보를 안다고 연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연습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해야 기도의 맛을 알 수 있고, 사랑도 실천해야 사랑의 기쁨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앞으로 우리에게 놀라운 세상을 열어 줄 것입니다. 로봇이 우주를 탐사하고, 사람 대신 위험한 일을 하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로봇도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이 나의 이웃이구나.”라고 사랑의 결단을 내리는 인간의 마음마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제도와 프로그램이 아무리 좋아져도, 우리의 지식이 아무리 깊어져도, 상처 입은 사람 곁에 멈추지 않는다면 복음은 우리의 삶에서 살아 움직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오늘 하루 우리도 물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 줄 것인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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