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회개, 하느님 첫째 자리 다음에는 ‘순종’입니다 |
|---|
|
10월 2일 첫 금요일, 목 부위의 고통이 심해 묵주기도를 더 바치기 위해 저녁 미사 두 시간 전에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평소에는 성당 밖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기도 하지만, 이날은 목의 고통으로 계속 서 있기가 어려워 성당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앉아 기도했습니다. 감실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어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묵주기도 20단을 봉헌했습니다. 그 기도 안에서 주님께서는 제게 ‘순종’에 대해 깊이 묵상하도록 이끌어 주셨고, 제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도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이 고통이 순종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미사 후에도 성당에 남아 기도하고, 집에 돌아와 체나콜로 기도와 예수님 수난 15기도를 바치면서 계속해서 순종을 묵상했습니다. 그러자 기도를 마칠 무렵부터 목의 고통이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떤 죄와 관련되어 있는지 깨닫게 해 주셨고, 그 죄에 대한 보속을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10월 3일 첫 토요일, 오늘 오전에도 묵주기도 30단을 바치고 첫 토요일 신심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성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묵주기도를 바치며 순종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었던 목의 고통에서 많이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화면을 바라보며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의 은총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때때로 고통을 통해 저를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동안 주님께서 이 고통을 통해 깨닫게 해 주신 ‘순종’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왜 주님께서는 제가 그토록 순종을 묵상하도록 하시고, 또 사람들에게 순종에 대해 알리도록 이끌어 주셨을까요? 순종은 초석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모든 은총의 시작에도 순종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 저를 시험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기도만 하라고 하셨고, 저는 통장에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황에서도 기도만 했습니다. 관리비와 생활비를 낼 돈조차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구하지도 않았고, 제도나 정책을 통해 해결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5년이 지나도 저는 지금까지 먹고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들을 통해 필요한 것을 넉넉하게 채워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포기하여 내려놓고 주님께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주님께서 베푸시는 수많은 은총과 기적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순종은 결국 참된 사랑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순종하는 자녀는 자신의 뜻만을 고집하지 않고 부모의 말을 듣고 참고 인내하며 따릅니다. 그리고 성장하면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부모를 위해 자신의 삶을 다해 효도합니다. 반대로 불순종은 관계를 갈라놓습니다. 불순종하는 자녀는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뜻만을 고집하며, 부모가 베풀어 준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순종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나아가지만, 불순종은 자기 자신을 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하느님께 불순종한 피조물은 누구입니까? 바로 루시펠, 곧 붉은 용이며 사탄이고 악마입니다. 루시펠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능력에 빠져 하느님께 불순종했습니다. 하느님보다 자신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교만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교만의 중심에는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아름다움, 가진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하느님보다 앞세우기 시작할 때 자기애에 빠지게 됩니다. 루시펠은 자신의 능력으로 다른 천사들을 유혹했고, 하느님보다 자신을 따르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로운 도성》 제1권 제7장에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루시펠은 아주 극심한 자기애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른 천사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충만한 은총과 고결한 성품과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자아도취로 말미암아 루치펠은 자신이 가진 모든 덕과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기를 태만하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은총과 완전함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비정상적인 자기애로 인해, 루치펠은 하느님께 받은 모든 권능으로 정도 이상으로 한없이 자신을 치켜세웠습니다. 질투와 시기심이 가득한 루치펠은 다른 이들이 가진 은총과 완덕을 탐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피조물이 가진 은총을 자기 능력으로는 갈취할 수도 얻어 낼 수도 없게 되자, 루치펠은 자신을 무로부터 창조하신 하느님과 다른 피조물을 향해 분노를 내뿜게 되었습니다. 불순명과 교만, 불의와 불신, 하느님을 모독하는 악과 심지어 우상 숭배까지도 모두 여기서 탄생되었습니다. 루치펠은 사악하게도 모든 피조물들을 파멸시키기로 작정하였고, 그외의 일들도 능히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능력을 받은 모든 지성적 존재들은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분의 백성이 되어 그분을 섬기고 경배해야 합니다. 이어서 하느님께서는 천사들에게 이와 관련하여 지켜야 할 규율을 일러주셨습니다. 거룩하고 선한 천사들은 겸허한 마음과 사랑으로써 그리고 온전한 자유의지로써 그 명령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루치펠은 그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천사들을 하느님께 대들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러자 그들도 루치펠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를 전면 거부했습니다. 루치펠은 자신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그리스도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나라를 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이 한 천사의 시기와 교만과 무질서한 욕망은 무수히 많은 천사들을 현혹시켰고, 그들 전부를 죄로 감염시켜 버렸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는 요한 사도가 전하는 저 위대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불순종은 자기 자신을 향하게 하며, 결국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느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셨다면,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지 않은 상태에서는 참된 순종을 시작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개하고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순종의 의미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순종해야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순종을 이렇게 전합니다. (필리 2,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길에서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순종해야 참된 사랑을 알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첫째 계명은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계명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계명이 결국 순종에서 시작된 참된 사랑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순종은 복음을 곧이곧대로 살아가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복음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않는 모습을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이 베푼 자선을 사람들에게 알립니까? (마태 6,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여 자선을 베풉니까? (루카 14,12-14)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결국 자신의 유익과 관계, 자신의 명예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보다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따르지 않는 것은 불순종이며, 결국 자기애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마리아 사제운동 메시지를 통해 전하시는 말씀에서도 순종을 강조하십니다. (59. 기도하면서 내 말에 순종해라,6) "나는 어떤 선전도 원하지 않는다. 오직 기도하면서 내 말에 순종하기만을 원한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시는 순종은 결국 의탁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37. 오직 내게만 의탁하여라,4) "내게만 의탁하고, 인간적인 수단은 믿지 말아라. 오로지 나만 신뢰해야 한다. 네가 언제나 할 수 있고 또 내가 순간마다 네게 바라는 유일한 것은 바로 너의 기도, 너의 고통, 내게 대한 너의 의탁일 뿐이다. 그것만이 내 운동을 위해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에 자신을 봉헌하고, 그 봉헌을 실천하는 삶 역시 순종하고 의탁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삶의 첫걸음은 봉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걸음은 자신을 성모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 자신을 맡길 때,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세워 두신 목표에 이르도록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130. 너희의 순종,1-6) "너희는 티없는 내 성심에 봉헌함으로써 너희 '사제직'을 나에게 맡겼다. 안전한 곳에 맡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첫걸음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 이제 너희 각자로 하여금 내 아들 예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게 하는 일이 어머니인 내게 맡겨져 있다. 너희가 내디디어야 할 두번째 걸음은 사람마다 다른 방법으로 양육하는 내게 너희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너희를 아주 특별하고 개인적인 방법으로 양육하는 것이 어머니로서의 나의 소임이다. 내가 너희를 이끌어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만, 어느 길이나 목표는 동일하다. 내 아들 예수께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워두신 목표인 까닭이다. 내가 너희를 양육하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쏟지 말고, 너희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내게 묻지 말아라. 내가 너희를 위해 마련한 길이 어떤 것인지 미리 알려고 애쓰지도 말아라. 그저 너희의 순종으로 내 활동을 돕는 것이 너희가 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순종이 사라지면 개인의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규율의 부재가 나타나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를 교회 정화의 마지막 때를 알려 주는 하나의 표징으로 말씀하십니다. (169. 둘째 표징:무(無)규율,7-9) "교회 안에 규율 부재의 분위기가 확산되어, 바로 목자들 가운데도 이것의 희생자가 되는 이들이 있다. 교회에 정화의 마지막 때가 왔음을 너희에게 알려 주는 둘째 표징이 바로 이것이니, 규율 부재가 어느 신자 계층을 막론하고, 특히 성직자들 사이에 두루 퍼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무규율'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내적 순종이 없음을 의미한다. 성직자라는 너희 신분 고유의 본분, 즉 기도하고 착한 모범을 보이며 경건한 사도적 삶을 영위해야 하는 본분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과도한 활동에 빠져 이제는 기도하지 않는 사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들은 '성무일도'며 묵상, 거룩한 묵주기도를 예사로 빠뜨린다. '미사 성제'를 서둘러 후딱 집전하는 것이 바치는 기도 전부인 것이다."
저 역시 교회 안에서 교회의 규정과 전례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불순종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한 예로 강론대에서 강론을 하지 않고 제대 앞에서 강론하시는 사제, 또는 미사 중 특정인을 위해 박수를 치도록 유난히 권유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모두 사람을 예수님보다 중심에 두는 모습입니다.
(169. 둘째 표징:무(無)규율,12) "'무규율'은 전례 생활과 교회 생활을 규제하기 위해 교회가 정해둔 규정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위반하는 데서 초래된다."
결국 불순종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자기애로 나아가게 하며, 자기 자신의 취향이나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169. 둘째 표징:무(無)규율,13) "오늘날에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취향이나 자유분방한 선택에 의거하여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루치펠도 바로 그러했습니다. 하느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고 하느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뜻과 취향을 하느님의 뜻보다 앞세우는 것은 불순종의 길이며, 하느님께 대드는 루치펠의 군대를 따르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와 묵주기도, 봉헌과 보속의 삶을 요청하셔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오”라고 저항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요청하시는 첫 토요일 신심에 순종하여 이를 실천하는 사제와 신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묵주기도를 바치고 그 신비를 묵상하며, 고백성사를 받고, 미사 성제에 참여하여 보속하는 뜻으로 영성체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여러분만은 순종하십시오. 회개하여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고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그분의 참된 자녀이며, 자신의 목숨을 내어줄 만큼 참사랑을 알고 실천하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성모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169. 둘째 표징:무(無)규율,16-18) "이 천상 엄마가 극진히 사랑하는 아들들이며, 티없는 내 성심의 빛의 사도들인 너희는,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더없이 조그만 내 아기들이 되어 내 팔에 안겨 다닐 수 있도록, 너희 자신을 맡겨 다오. 그러면 내가 너희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게 해주겠다. 그리하여, 교회법에 온전히 순종하는 점에 있어서 너희가 만인의 착한 모범이 될 터이니, 너희 천상 엄마가 자신의 '집'에 질서를 회복하려고 너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환난을 치른 후의 교회에서, 마침내 이 엄마의 티없는 성심의 승리가 빛나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192271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10.04) |
02:27 | 김중애 |
| 192270 |
매일미사/2026년 10월 4일 주일[(녹) 연중 제27주일] |
02:26 | 김중애 |
| 192269 |
다니엘 나기정신부의 편지 173번째 연중 제27주일(10월 4일)、 함꼐 나눌 말씀은 ... |
2026-10-03 | 오완수 |
| 192268 |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10월 4일 연중 제27주일 |
2026-10-03 | 박양석 |
| 192267 |
+찬미예수님 대구대교구 나기정 다니엘신부님 이주일(연중27주일)의 복음묵상 입니다. |
2026-10-03 | 오완수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