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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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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전하기 위해 영상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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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b38927] 쪽지 캡슐

2026-09-19 ㅣ No.3037

주님께서 저를 이끄시고 허락하시어, 제가 잠시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제작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온라인과 유튜브를 통한 신앙활동에 머무르는 것은 올바른 신앙의 길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다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있겠습니까?

 

그동안 많은 글을 올렸지만, 글을 읽기 어려운 분들이나 글을 잘 읽지 않는 분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사람들에게 전하여, 그들에게도 진리를 받아들이고 기도의 삶으로 나아갈 기회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부디 거부하지 말고, 끝까지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편 가라반달이 전한 경고와 그 앞에 있을 대환난 : https://www.youtube.com/watch?v=UovkOSMwaV8


2편 붉은 용, 거짓 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ppAzvmpCacU


3편 교회의 마지막 시련, 그 황폐의 모습 : https://www.youtube.com/watch?v=QGFhXNvls5Q


 

제목: 다시 살아난 묵시록의 우상, 그리고 구원의 길


<텔레비전, 다시 살아난 우상>

 

우리는 이제 성모님께서 왜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고 하셨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마리아 사제운동 메시지에서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우상이 바로 텔레비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74. 회개하여 주님께로 돌아오너라,9)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우상(묵시 13,14; 14,9.11)이 바로 텔레비전인 것이다. '악마'가 장악하여 형상과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지상 모든 나라가 경배하게 하려고 세운 우상이요, 유혹과 타락의 가공할 수단이 되게 하려고 세운 우상이다."

 

또한 대중 전달매체가 사람들을 기만하여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씀하십니다.


(486. 대환난기,11)

"그러나 사람들이 이제는 죄를 악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때때로 죄를 참으로 가치있는 어떤 것, 훌륭한 무엇으로 칭송하기까지 한다. 대중 전달 매체들의 기만적인 영향으로 이렇듯 죄를 악으로 의식하는 태도마저 점차로 사라져서, 사람들이 갈수록 많은 죄를 지으며 그것을 정당화하고, 더는 고해성사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텔레비전이 한 번 죽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요한 묵시록에는 칼을 맞고도 살아난 짐승의 상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묵시 13,12-14)

"첫째 짐승의 모든 권한을 첫째 짐승이 보는 앞에서 행사하여, 치명상이 나은 그 첫째 짐승에게 온 땅과 땅의 주민들이 경배하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짐승은 또한 큰 표징들을 일으켰는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게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첫째 짐승이 보는 앞에서 일으키도록 허락된 표징들을 가지고 땅의 주민들을 속였습니다. 그러면서 땅의 주민들에게, 칼을 맞고도 살아난 그 짐승의 상을 세우라고 말하였습니다."

 

텔레비전도 한때 그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가정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전하면서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졌습니다.

1998년에 설립된 구글은 2005년 안드로이드를 인수한 뒤 이를 스마트폰용 운영체제로 발전시켰고, 이후 안드로이드를 스마트 TV용 운영체제인 Android TV로 확장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텔레비전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컴퓨터, 태블릿 등 인터넷에 연결된 다양한 화면을 통해 영상을 접합니다.

텔레비전이라는 하나의 기기에서 영상을 보던 시대를 지나, 인터넷에 연결된 수많은 화면이 영상을 전달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영상은 이제 하나의 화면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화면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 묵시록에는 짐승의 상에 숨을 불어넣어 그 상이 말을 하게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묵시 13,15-18)

"둘째 짐승에게는 첫째 짐승의 상에 숨을 불어넣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짐승의 상이 말을 하기도 하고, 자기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죽임을 당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로 표가 찍힌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을 숫자로 풀이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그 숫자는 육백육십육입니다."




<교회와 세상이 연결되다>

 

오늘날 우리는 화면을 통해 말하고, 보고, 정보를 얻으며 서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 전달매체의 영향력은 교회 안에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도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환경 관련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교회 안에서 시청하거나, 신자들에게 시청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길은 기도와 단식, 회개와 보속입니다.



(306. 너희에게 당부하는 단식,1-2)

"보속과 극기의 길을 걸어라."

"오관을 극기하기 위한 방법으로 몸의 단식을 하기 바란다. 오직 육체적 물질적 쾌락을 마음껏 누리는 것만이 추구할 가치가 있는 행복이라는 기만이 오늘날 허다한 내 자녀들을 유혹하고 있으므로, 널리 퍼져 있는 이 오류를 보상하기 위함이다."


(306. 너희에게 당부하는 단식,5-7)

"정신의 단식으로 온갖 악을 끊어 버려라. 그러면 다만 선과 은총과 사랑의 음식만을 취할 수 있다."

"고귀한 양식인 '성서' 및 특히 예수님의 '복음'에서 자양분을 섭취하여라. 그리고 너희 천상 엄마가 오늘날 여러 가지로 주고 있는 메시지들도 받아들여, 그것을 묵상하며 실행하여라."

"신앙에 위배되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주의 깊게 배척해야 한다. 이것들은 간교하고 위험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어서, 너희가 '영세' 때 발한 서약을 충실히 지키며 성장하는 데에 상당히 많은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306. 너희에게 당부하는 단식,8)

"마음의 단식도 요구되니, 이는 너희 자신과 재물과 피조물에 대한 무질서한 애착에 대해 마음을 닫아걸고 경계함을 뜻한다."


(306. 너희에게 당부하는 단식,10-11)

"너희에게 또 당부하는 것은 영혼의 단식이다. 이는 아무리 사소한 죄라 할지라도 죄라면 모조리 멀리하는 것이다."

"죄를 짓기 쉬운 기회도 피해야 한다. 이 때문에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는 너희 영혼 안에 순결과 은총의 빛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성모님께서 가르치시는 회개는 단순히 생각이나 말의 변화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바꾸고,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까지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2005년 9월, 브라질 마라조 교구의 호세 루이스 아스코나 주교는 메주고리예를 방문하여 성모님의 메시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2005년 9월 13일, 호세 루이스 아스코나 주교의 메주고리예 증언)

"저는 첫 번째 메시지가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회개에서 비롯됩니다. 사회의 변화, 하느님과의 평화, 이웃과의 평화, 자연과의 평화, 환경과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문제를 바라보기 전에 먼저 인간이 하느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속죄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면, 성모님께서 말씀하시는 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대중 전달매체의 영향력은 교회 안에서 신앙을 전달하는 방식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온라인 게시물과 영상물을 통해 사제의 강론과 사목 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신앙 관련 내용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과 그 믿음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많은 말씀이 전해지고 있어도 그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가는 믿음이 없다면, 신앙은 말과 화면 안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믿음은 순교자의 믿음입니다.

순교하신 정하상 바오로와 신앙의 선조들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분들은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았고, 감옥에 갇혀 순교했습니다.

그들은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사람들을 모아 집회를 열고 세상에 항의함으로써 믿음을 증거한 것이 아닙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십자가의 길을 자신의 삶으로 따랐습니다.




<복음은 삶으로 증거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대중 전달 매체를 통해 세상 곳곳에 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지는 것과 복음의 진리가 우리의 삶 안에 들어오는 것은 다릅니다.

 

성모님께서는 진리를 다른 이들에게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는 작고 가난하고 단순하며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304. 나의 말,6)

"하느님의 '진리'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작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올바른 빛 안에서 진리를 보려면 가난해져야 하고, 진리를 온전하게 보존하려면 단순해져야 하며, 진리를 본연의 광채대로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려면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나의 말'로 너희를 겸손하고 단순하고 작은 사람이 되도록 기르고 있다. 곧 아기같이 되도록 너희를 이끌어 주고 싶은 것이다. 너희가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내가 말을 건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은 예수님과 복음에 충실히 머무르며 참신앙을 굳건히 지키는 사람입니다.


(485. 마지막 때,12)

"셋째 표징은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에 충실히 머무르며 참신앙을 굳건히 지키는 이들에게 가해질 유혈 박해이다. 그 반면에 '복음'은 세상 도처에 전파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삶으로 증거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루카 9,23-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이러한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삶은 성경이 말하는 의인의 모습과도 이어집니다.


(지혜 3,1-9)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을 바꾸어 주실 은총을 청하며, 성모님께서 요구하신 기도와 보속과 희생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11. 나의 큰 고통,11)

"내 가련한 아들인 모든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너희 역시 주님께 바치는 희생제물로 티없는 내 성심의 제대에 너희 자신을 봉헌하지 않으려느냐? 나의 이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내가 지금 당부하는 것을 실행해야 한다:

더욱 많이 기도하여라. 무엇보다 거룩한 '묵주'로 기도하여라.

보속의 성체조배 시간을 자주 가져라.

주님께서 너희에게 보내시는 고통은 무엇이든지 사랑으로 받아들여라.

이 마지막 시대의 '천상 예언자'로서 내가 너희에게 주고 있는 이 메시지들을 두려움없이 전파하여라."

 

결국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기도하고, 보속하며, 고통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삶입니다.

그 삶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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