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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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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9-19 ㅣ No.191983

김건태 신부님_들을 귀가 있는 사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복음서는 예수님 시대에 이어 제자들을 포함한 목격 증인들의 시대가 지나고 난 다음, 목격 증인들이 증언한 내용을 기초로 집필된 작품입니다. 따라서 초기 교회가 부대껴야 했던 여러 힘든 상황들이 복음서의 배경을 이룰 뿐만 아니라, 복음 저자들이 이러한 상황 극복을 위해 애쓰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오늘 루카가 전하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역시 초대 교회가 극복해야 했던 버거운 현실로부터 영향을 받아 기록된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선 하느님의 말씀을 뿌리는 선교활동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신통치 못했음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고, 다음 말씀이라는 용어의 의미 파악이 절실했습니다.

 

루카 복음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다.” ‘다른 이들은 마음을 바꾸어 회개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언뜻 보기에, 이 단정적 말씀은 몇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다른 이들을 단죄하고자 하시는가? 왜 그분은 모든 이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시지 않는가? 사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예수님이 직접 그 시대의 청중을 위해서 하신 말씀으로 해석한다면, 우리의 이의제기는 정당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대가 아니라, 초기 교회의 삶의 틀 속에 이 본문을 자리하게 한다면, 앞선 질문들은 정당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루카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고 난 다음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청중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접하기는 했으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분께 대한 믿음 또한 갖추지 못했습니다. 루카는 이렇게 하나의 탁월한 문학 작업을 통하여 현재를, 다시 말해서 청중들이 여전히 교회의 선포를 거부하고 있는 초기 교회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이미 그렇게 예고하고 그렇게 원하시기나 했던 듯이 말입니다.

 

결국 루카는 오늘 비유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신비스러운 계획이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인간이 구원의 표징을 읽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함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근접할 수 없는 곳에 감춰져 있거나 봉쇄된 메시지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읽고 이해해야 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신앙을 튼실하게 일구어나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길이나 바위나 가시덤불이 아니라,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으로 변화시켜 나가겠다는 다짐과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볼 수 있는 눈들을 수 있는 귀를 갖출 수 있도록, 사랑과 인내로 양성하신 사도들을 신앙의 모범으로 보내주시고, 이들을 기초 삼아 세우신 교회 안에 우리를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는 신앙인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이고 그들의 바람에 좀 더 눈을 여는 가운데, 신앙인들은 누구보다도 편견 없이 잘 보고 잘 듣는 사람들임을 드러내는, 자랑스러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오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과 우리 마음의 상태를 묵상하게 하신다. 씨는 곧 하느님의 말씀이고, 밭은 우리의 마음이다. 씨는 동일하지만, 밭의 상태에 따라 열매 맺음의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 비유를 주석하며 이렇게 말했다. “말씀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가 부족하다. 같은 씨가 백 배의 열매를 맺기도 하고, 전혀 뿌리내리지 못하기도 한다.”(Homilia in Matthaeum 참조) 즉, 문제는 하느님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내적 준비와 열려 있는 마음이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 굳어 있는 땅은 씨가 뿌리내릴 수 없다. 마음이 닫히고 고집스러우면, 말씀은 들어와도 악마가 곧 빼앗아 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닫힌 마음은 말씀을 차단하고, 복음을 들어도 변화를 거부하게 만든다.”라고 하였다. 

 

★바위에 떨어진 씨앗: 처음에는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기에 시련이 오면 곧 쓰러진다. 이는 일시적 신앙, ‘분위기 신앙’이라 할 수 있다. 교부들은 이를 “깊은 뿌리 없는 감정적 신앙”이라 경고했다. 믿음은 기쁨만이 아니라, 십자가를 함께 짊어질 때 뿌리 깊이 자리 잡는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 말씀을 듣고도 세상의 근심, 부와 쾌락에 숨 막혀 열매 맺지 못하는 이들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했다. “가시덤불은 단순히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자라는 욕망이다. 그것을 뽑아내지 않으면 말씀은 결코 자라지 못한다.”(Sermones 참조) 오늘날 우리가 쉽게 빠지는 물질주의, 비교심리, 과도한 경쟁심이 바로 이 가시덤불이 될 수 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 착하고 바른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며 인내로 열매를 맺는 이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내’다. 하느님의 말씀은 즉각적인 효과가 아니라, 시간과 기다림 속에서 성장한다. 말씀은 인내하는 사람에게서만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 비유는 단지 네 가지 유형 중 어디에 속하느냐를 판가름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밭을 가꾸라는 초대이다. 아무리 굳은 길가나 가시덤불이라도, 갈아엎고 회개를 통해 옥토가 될 수 있다.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하면, 나의 마음은 좋은 땅이 될 수 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우리 마음의 땅을 갈아엎어 돌과 가시를 제거하고, 말씀의 씨앗이 깊이 뿌리내리게 하자.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청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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