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
|---|
|
우연히 두 개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조선의 왕은 극진한 보호를 받고, 잘 먹는데도 당시 사람보다 단명하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60억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사막화를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의 왕이 단명한 이유는 현대의 상식으로는 맞지 않는 구조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왕은 하루에 다섯 번 식사하였다고 합니다. 많은 반찬, 특히 고기 위주의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고된 일에 시달리면서 운동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경연이 있었고, 회의가 있었고, 상소문을 읽어야 했습니다.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도 가마를 타고 이동했다고 합니다. 조선의 왕은 너무 먹었고, 운동은 부족했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왕들의 사망 원인 중에 ‘종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면역력이 강해서 종기를 쉽게 이겨낼 수 있었지만, 당뇨와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은 면역력이 약해져서 종기의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조선의 왕은 바로 그런 구조에서 살았기에 생각보다 단명하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조선의 백성과 신하 그리고 같은 궁궐에서 살았던 내시는 왕들보다 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이는 적당한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왕 중에 장수한 왕으로 ‘영조’가 있는데 그는 조선의 왕을 보호하는 구조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사막화가 심화하여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방지책으로 나무를 심어 만리장성을 쌓기로 했습니다. 6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사막화를 막으려 했습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무를 심으면서 지하수가 고갈되었고, 나무는 시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사막화는 막을 수 없었고, 중국의 수도인 북경도 매년 사막화로 불어오는 황사로 피해를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원래 사막에 살던 야생마를 풀어놓자는 아이디어입니다. 야생마는 사막을 다시 원래의 생태계로 돌아오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야생마가 돌아다니면서 땅을 밟았습니다. 야생마가 땅을 밟으면서 그 사이로 물이 스며들었습니다. 야생마는 이동하면서 변을 보았는데 그 변에는 발아되기 쉬운 씨앗이 함께 있었습니다. 야생마가 먹은 씨앗은 변으로 나오면서 쉽게 싹이 돋았습니다. 야생마가 다니면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땅이 부드러워졌고, 그 위로 식물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식물이 자라면서 곤충도 날아오고, 곤충이 날아오면서 새도 날아왔다고 합니다. 인간의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막을 수 없던 사막화가 수만 년 동안 그곳에 살면서 생태계를 유지했던 야생마가 함께 하니 사막화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은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복음입니다. 군인들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도 복음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복음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복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은 마음 졸이던 사람에게 복음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부모에게 복음입니다.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맞이하는 제대의 날도 복음입니다. 서류 미비자로 불안하게 살던 사람이 영주권을 받았다는 소식도 복음입니다. 의식을 잃었던 환자가 마침내 눈을 뜨고 가족을 바라보는 순간도 복음입니다. 제게도 복음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합격자 명단이 붙어 있던 벽보에서 제 이름을 발견했던 순간입니다. 그 이름은 제가 신학교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새로운 삶으로 초대받았다는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가장 큰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지 않으셨습니다. 군대를 조직하지 않으셨고, 권력을 차지하지 않으셨으며, 돈으로 사람을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픈 사람을 치유하셨고, 죄인을 용서하셨으며, 소외된 사람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는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까지 용서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십니다. 그때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리고, 향유를 발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주었다.” 바리사이 시몬에게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율법이 있었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따뜻한 사랑과 자비가 부족했습니다. 반면에 죄인이라고 손가락질받던 여인에게는 내세울 만한 지위도 없었고, 율법에 관한 지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회개의 눈물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죄는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죄인이 용서받고, 상처 입은 사람이 위로받고, 길을 잃은 사람이 다시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심판과 비난이 아닙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강요와 두려움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가 사람의 마음을 바꿉니다. 인간은 나무를 심을 수 있지만 생명을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에 사랑을 심어 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병을 치료할 수 있지만 영혼의 상처까지 온전히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머물면 메마른 사막에도 생명이 돌아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우리 마음에 스며들면 미움이 용서로 바뀌고,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며, 전쟁이 평화로 바뀝니다. 오늘도 인간의 힘과 능력만을 의지하기보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면 좋겠습니다. 판단보다는 용서를 선택하고, 비난보다는 위로를 건네며, 소유하기보다는 나누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이웃에게 기쁜 소식이 되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191920 |
09.16.수 / 한상우 신부님 |
07:26 | 강칠등 |
| 191918 |
인생은 나를 찾아 가는 일 |
06:36 | 김중애 |
| 191917 |
살아 있음을 기뻐하라! |
06:34 | 김중애 |
| 191916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9.16) |
06:33 | 김중애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