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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묵상] 서 있었다 _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준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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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히브리 5,7-9 / 요한 19,25-27 "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요한 19,25) 서 있었다 십자가 아래, 아들이 죽어가는 그 자리에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요한 복음은 그분의 어머니가 쓰러진 것이 아니라, 서 있었다고 합니다. 도망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 끔찍한 자리에 두 발로 서서, 아들의 마지막 순간을 온몸으로 맞이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관계, 사랑 "고통이 사라져야 내 삶이 완전해질 거야." "이 아픔만 지나가면, 그때야 진짜 행복해질 거야." 이런 생각으로 고통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버텼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모님의 십자가 곁에 서 있는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삶이 완성되는 순간은 고통이 사라진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 성모님은 가장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존재가 완성된다는 것은 아픔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끝까지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완성입니다. 성모님은 아들의 고통을 없애줄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 고통 곁에 끝까지 머물렀습니다.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 바로 그것이 어머니가 보여준 완성된 사랑의 모습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매일 아침 사랑하는 이들의 병이 낫기를, 문제가 해결되기를, 아픔이 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기도의 시간은 길고 깁니다. 때론 포기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모님의 모습은 저에게 다른 연결을 보여줍니다. 아픔이 있는 그 자리에서도 누군가와의 사랑, 신뢰, 연결을 지켜낼 수 있다면, 그것이 이미 완성된 삶입니다. 멀리서 지켜보시는 하느님이 아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다"고 오늘 독서는 전합니다. 하느님의 아들도 고통 앞에서 울부짖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저 높은 곳에서 우리의 아픔을 내려다보시며 지켜만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실제로 고통을 겪으신 하느님입니다. 아파하고, 눈물 흘리고, 부르짖으신 하느님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플 때, 하느님은 우리를 멀리서 내려다보고만 계시지 않으시고, 이미 그 아픔을 아시고 그 자리에서 함께 울부짖으시겠지요. 성모님이 십자가 곁에 서 계셨듯, 하느님도 우리의 고통 곁에 서 계시리라 믿습니다. 곁에 서 있는다는 것 성모님은 아들의 고통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곁에 서 있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정답이나 설명이 아닐지 모릅니다. 누군가 아파할 때, 우리가 그 이유를 완벽히 설명해줄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도망가지 않고 곁에 서 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붙잡고 있다면, 그리고 이미 그 고통을 함께 겪으신 하느님이 우리 곁에 서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도 마리아처럼 무너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서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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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화 / 한상우 신부님 |
00:25 | 강칠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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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묵상] 서 있었다 _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준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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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
2026-09-14 | 박양석 |
| 1918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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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4 | 이경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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