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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그리스도’의 모습 - ④) 이성 중심의 사고에서 상대주의로, 그리고 디지털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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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b38927] 쪽지 캡슐

12:29 ㅣ No.3034

앞의 ②편과 ③편에서는 1332년과 1998년을 기준으로 나타난 ‘거짓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②편에서는 인간 이성을 진리에 대한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이 공격받고 교회가 분열되는 과정을 살펴보았고, ③편에서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대신하는 우상, 곧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가 세워지고 배교가 확산되는 단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시대 사이에는 어떠한 사상적 변화가 있었으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이성 중심의 사고에서 상대주의로>

 

1332년을 전후하여 나타난 이성 중심의 사고는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서구의 철학과 사상에 여러 형태로 전개되었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의 사상은 더욱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지식과 진리를 탐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베이컨과 로크, 뉴턴 등으로 대표되는 경험론과 새로운 자연과학도 발전하면서, 인간이 스스로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18세기의 계몽주의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사상적 흐름이 더욱 넓은 사회와 문화로 확산되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비판적 판단을 중시하고, 전통과 권위에 대해서도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하려는 태도가 강해졌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신앙과 이성』에서 설명하시면서, 중세 후기에 철학과 신학 사이의 정당한 구별이 점차 분리로 바뀌었고, 일부 사상가들의 과장된 합리주의로 인해 신앙과 독립된 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진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도 달라졌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과 별개로,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통해 진리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점차 강해진 것입니다.

근대 이후에는 이러한 흐름에 대한 여러 비판과 반작용도 나타났으며,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회의주의와 불가지론, 허무주의 등 다양한 사상적 흐름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상대주의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상대주의는 모든 진리가 동일하다는 단순한 뜻이 아니라, 진리나 가치의 타당성이 개인이나 문화, 관점과 같은 특정한 기준에 상대적일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상대주의의 위험을 매우 분명하게 지적하신 분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입니다.

교황님께서는 2005년 교황 선출을 위한 미사에서 당시 추기경 요제프 라칭거의 이름으로, 오늘날의 세계가 “상대주의의 독재”를 향하고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상대주의의 독재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상대주의의 독재는 아무것도 확정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자아와 욕망만을 최종적인 목표와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는 이에 맞서 그리스도와의 친교에 뿌리를 둔 성숙한 신앙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신앙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상대주의가 신앙 안으로 들어오면 교회가 무엇을 가르치는가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해지고,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도 여러 의견 가운데 하나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테파노 곱비 신부님 경고>


이러한 시대의 위험에 대해 마리아 사제운동의 고 스테파노 곱비 신부님께서도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곱비 신부님께서는 2010년 10월 25일 파티마 강론에서 교회 안에 나타난 두 가지 흐름으로 합리주의와 상대주의를 지적하시고, 이것이 교회의 신앙을 파괴하는 위험으로 작용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오류를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을 분별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참된 교사와 거짓 교사를 분별하는 기준으로 가톨릭 신앙의 진리를 충실히 전하는지, 겸손하게 교도권에 순종하는지를 제시하셨습니다.

 

* 참고) [곱비 신부님] 강론(파티마) & 유언 : https://youtu.be/g8W8NHHdCHo?list=PLAcj4S2Y8fGM

 



<철학적 변화에서 디지털 환경으로>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쉽게 수많은 주장과 해석을 접하고, 그 가운데 하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확산과 검색엔진의 발전을 시작으로, 스마트폰과 SNS, 동영상 플랫폼을 거쳐 오늘날에는 AI까지 등장하면서 이러한 환경은 우리의 일상 속에 더욱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에는 정보를 얻기 위해 특정한 책이나 신문, 방송 또는 전문가를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하나의 질문에 수많은 답과 서로 다른 주장이 동시에 제시되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신앙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함께 개인의 주장과 다양한 종교적 해석, 영상과 글 등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함께 제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문제는 단순히 정보가 많아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정보 가운데 무엇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누구의 가르침을 따를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곱비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합리주의와 상대주의, 그리고 거짓 교사를 분별해야 한다는 경고가 오늘날 더욱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성모님께서는 ‘혼란’이라는 말로 지적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교회에 정화의 때가 왔음을 알려주는 여러 표징 가운데 첫째가 바로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혼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68. 정화의 첫째 표징: 혼란,4-14)

"교회에 정화의 때가 왔음을 알려주는 여러 표징들이 있다. 그 첫째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혼란이다. 지금은 과연 혼란이 극에 달한 시대이다.

혼란이 교회 내부에 퍼져 있어서, 교의(敎義)며 전례며 규율이며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온통 뒤죽박죽이다.

그러나 너희에게는 내 아들 예수께서 계시해 주셨고 교회가 자체의 신성한 무류권(無謬權)으로 언제나 분명히 확정해 온 진리들이 있다.

이 진리들은, 바로 하느님의 '진리'가 그러하듯, 불변성을 지닌다. 또한 이들 중 많은 진리가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진정한 신비에 속한다. 인간 지성으로는 알아듣지 못하고 결코 알아들을 수도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은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셨고 세세대대로 교회의 교도권을 통해 제시되어 온 이 진리들을, 하느님께 대한 순수한 믿음과 확고한 신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매우 위험한 경향이 널리 퍼지고 있으니, 모든 것을 -- 심지어 신비에 속하는 것까지도 -- 꿰뚫어 보며 해명하고자 함으로써 인간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진리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이다. 바로 하느님 신비의 베일을 벗겨 그 정체를 파헤쳐 보겠다는 욕구이다.

이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진리는 무엇이나 내던지고, 계시된 모든 진리를 소위 새롭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제시하는 경향인 바, 만인이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이라는 착각에 빠져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진리가 오류 때문에 부패되고 있다. 오류가 대단히 위험한 방법으로, 다시 말해서 이른바 새롭고 현대적인 '진리 이해'라는 것으로 널리 퍼져가고 있어서, 바로 가톨릭 신앙의 바탕을 이루는 진리들을 전복(顚覆)시키려고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오류들은 공공연한 부인이 아니라 오히려 애매모호한 얼버무림으로 교리 안에 수용되고 있거니와, 교리가 이 정도로 심하게 오류와 타협한 적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논쟁을 계속하든, 결국 믿음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오류의 암흑만 번지고 있는 것이다.

교회 내부를 지배하며 교회 고유의 진리들을 뒤엎으려고 드는 혼란이야말로, 교회에 정화기가 왔음을 너희에게 알려 주는 명확한 표징이다."


이 말씀에서 성모님께서는 교회 안에 퍼지는 혼란을 진리와 오류가 뒤섞이는 문제로 지적하십니다.

특히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려 하면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와 신비까지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경고하십니다. 그 결과 진리가 오류와 뒤섞이고 교회의 고유한 진리가 흔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러한 주장과 해석이 더욱 빠르게 전달되고 확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가 많아진다고 해서 진리가 더 분명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주장 가운데 무엇이 참된 가르침인지 분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진리를 삶으로 살아가는 신앙>


성모님께서는 이어서 이러한 혼란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168. 정화의 첫째 표징: 혼란,17-22)

"이제는 교회의 '원수'가 그의 간교하고 거짓투성이인 사업을 통해, 교회 안에 엄청난 암흑을 초래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는 사탄이 내뿜는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다.

사탄은 무엇보다 허다한 내 아들들의 오성(悟性)과 사고력을 어둡게 했다. 헛된 명예와 교만으로 이 아들들을 유혹함으로써 이들을 통해 교회를 어둡게 한 것이다.

이 천상 엄마가 극진히 사랑하는 아들들인 너희, 내 티없는 성심의 사도들인 너희는, 오늘날 이와 같이 하라고 부름을 받았다: 너희의 말과 모범으로 싸워라. 만민이 더욱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싸워라. 그러면 빛이 혼란의 암흑을 몰아낼 것이다.

따라서 너희는 내 아들 예수님의 '복음'을 말씀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순수하고 단순하게, 산 '복음'이 되어라. 그런 다음 힘차고 용감하게 너희가 살고 있는'복음'을 만민에게 선포해야 한다. 그러면 너희의 말이 너희를 충만케 하시는 성령의 힘을 입을 것이요, 이 천상 엄마가 주는 '지혜의 빛'도 얻게 될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혼란의 시대에 필요한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십니다.

수많은 주장과 가르침 속에서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오류인지 분별하고, 하느님께서 계시하시고 교회가 전해 온 진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복음을 말씀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순수하고 단순하게, 산 ‘복음’이 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말과 모범으로 진리를 증언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많은 정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믿고 그 진리대로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그럴 때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빛이 혼란의 암흑을 몰아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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