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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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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9/13) : 연중 제24주일 * 제1독서 : 집회 27, 30-28, 7 * 제2독서 : 로마 14, 7-9 * 복음 : 마태 18, 21-35
* <오늘의 강론>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드넓고 한계가 없는 무한한 용서를 입었으니, 너희도 그렇게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 현인 벤시라는 말합니다.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집회 28,2)
이는 인간이 죄인을 용서해주면, 하느님께서는 용서하는 그 사람도 용서해 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용서하는 것이 용서받는 길임을 말해줍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셨기에,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8) 라고 고백합니다.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이 질문은 앞 장면의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라는 말씀의 반론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카인을 죽이는 이는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받았던 것보다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창세 4,15절). 이는 카인에게 내리는 자비의 표시였습니다. 곧 그를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그를 보호해 주신다는 ‘큰 자비의 표시’였습니다. 반면에, 카인의 후손 라멕은 “나를 조금이라도 해치는 이는 누구든지 일곱 배가 아니라 ‘일흔일곱 배’로 앙갚음을 할 것이다!”(창세 4,23-24)라고 떠벌립니다. 여기서 보듯이, 사람은 악하기 때문에 되갚고 앙갚음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악함이 클수록 앙갚음도 더 격렬해서. 눈에는 눈, 손에는 손으로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에 더하여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 반면에, 하느님은 자비롭고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용서는 그 한계를 두지 않는데서 더 잘 드러납니다. 그러니 ‘일흔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은 ‘상대방의 악함보다 항상 더 큰 선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단지 용서할 뿐만 아니라, 혹은 끝까지 무한히 용서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를 보호해 주고,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하고 도와주고 돌보아주라는 말씀입니다. 용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하여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이를 산상설교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예수님께서는 이를 설명하시기 위해, 오늘 <복음>에서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에는 대조적인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조금만 참아달라는’ 종의 간청에 청하지도 않은 빚을 조건 없이 탕감해주는 ‘자비로운 왕’과 “동료의 간청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버리는”(마태 18,30) 카인의 후손 라멕과 같은 ’무자비한 종’이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왕은 종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너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마태 18,33)
이는 ‘우리가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가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기도 전에, 고백하기도 전에,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당신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입었기 때문임을 말해줍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십시오.”(에페 4,32)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골로 3,13)
예수님께서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마치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6)
그러니 형식적이거나 의무적으로 마지못해서 혹은 관대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가 아니라 그를 위하는 진실한 마음, 곧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용서하는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진정한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당신의 호의로 용서한 다음에 더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비록 제가 용서하기를 원하지 않아도, 당신이 원하니까 저도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주님! 일곱 번이 아니라 더 큰 사랑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먼저 용서하고 용서에 사랑을 더하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용서하셨으니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선으로 사랑하고,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아무리 꺾이어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 주님처럼, 저 역시 당신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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