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1일 (금)
(녹)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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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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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5:36 ㅣ No.191813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모든 일은 결국 바른길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고, 무엇을 마음에 심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열매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갈 때, 하느님께서는 백성에게 바른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의 길을 충실하게 걸으면 사막의 뜨거운 태양도 견딜 수 있고, 광야의 거친 바람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십계명의 핵심은 두 가지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하느님만을 섬기고,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으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생명을 존중하며,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고, 거짓된 삶을 버리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자유를 빼앗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이정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의 사랑은 죄인까지 품어주는 사랑입니다. 배반한 제자들을 용서하는 사랑이고, 집을 나갔다 돌아온 아들을 받아들이는 사랑이며, 죄지은 여인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는 사랑입니다. 조건을 따지는 사랑이 아니라, 잘못했을지라도 다시 믿어주고 품어주는 사랑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고통과 수난을 감수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관을 쓰는 사랑입니다. 세 번이나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끝까지 걸어가는 사랑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예수님의 사랑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사랑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밤을 새워 들판을 헤매는 사랑입니다. 죽음의 골짜기를 걸어갈지라도 함께해 주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계명이 지난 2,000년 동안 교회를 이끌어 온 생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에 쉽게 현혹됩니다. 재물과 권력, 명예와 성공을 하느님보다 앞세우기도 합니다. 마치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처럼, 스스로 우상의 늪을 향해 걸어갈 때도 있습니다. 우상은 블랙홀과 같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도, 종교인도, 존경받던 사람도 빨아들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우상을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우상이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재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소유되고,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우상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참된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운 마음에 무엇을 채우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 마음에 기도, 나눔, 사랑, 희생을 채워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습니다. 나누는 사람은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판단하기보다 품어줍니다. 희생하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입니다. 비가 내리고 강물이 밀려오며 바람이 불어닥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흙탕물이 들어오더라도 기도와 성찰을 통해 다시 맑아질 수 있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를 내렸기에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고,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말보다 삶의 열매를 통해 드러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을 해도 미움과 분열의 열매를 맺는다면 좋은 나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화려한 말은 하지 못하더라도 용서와 사랑, 인내와 희생의 열매를 맺는다면 좋은 나무입니다.

 

교회가 2,000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성전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위대한 설교자가 있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뛰어난 신학자들이 교리와 법을 정리했기 때문만도 아니며, 베드로의 수위권을 이어받은 교황님들이 있었기 때문만도 아닐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신앙의 열매를 맺어온 이름 없는 순례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성당을 청소하고, 아픈 이를 찾아가며, 가난한 이를 위해 기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랑과 희생이 교회를 떠받치는 단단한 반석이 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굳센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샘이 깊은 물과 같은 믿음,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반드시 사랑의 열매, 희망의 열매, 용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을 심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미움과 욕심을 심으면 분열과 불안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와 나눔, 사랑과 희생을 심으면 평화와 기쁨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어떤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위에 우리 삶의 집을 짓고, 좋은 신앙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이웃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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