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9일 (수)
(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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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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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6:21 ㅣ No.191771

제가 한국에 가면 꼭 찾아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울산입니다. 울산에는 제가 뉴욕에서 함께 지내던 신부님이 있습니다. 흔히 마음과 생각이 잘 통하는 사람을 두고 코드가 잘 맞는다.’라고 합니다. 신부님과 저는 코드가 잘 맞아서 함께 여행도 다니고 캠핑도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울산에 갔습니다. 신부님은 저를 아름다운 호수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의 이름을 딴 박상진 호수공원이었습니다. 호수 주변에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었고,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서점 카페도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신부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반도체의 역사를 이야기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의 반도체 이야기, 일본과 한국의 반도체 산업 이야기,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기술인 HBM 메모리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이야기했습니다. 부산과 울산 지역의 순교 성지를 이야기했고,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가운데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사람들에게 한국천주교회사를 알려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미래를 이야기했고, 신부님은 과거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기술과 변화에 관심을 두었고, 신부님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믿음의 뿌리를 지니고 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대화를 나누면서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영어에도 “Old is gold.”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낡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오늘을 비추어 주는 소중한 지혜가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마치 바오로 사도가 제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제가 알고 있는 반도체와 인공지능에 관한 지식을 열심히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사제라면, 한국의 가톨릭 신자라면 마땅히 기억해야 할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이야기했습니다. 지식은 필요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사람을 살리기보다 교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남보다 많이 안다는 생각은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무시하게 만듭니다. 반대로 참된 지식은 사람을 이해하게 하고, 품어 주게 하며, 더 겸손하게 만듭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도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알고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으로 사람을 품어 주기보다는 판단하고 단죄했습니다. 죄인과 병자를 멀리했고,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겼습니다. 마침내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율법과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제가 알고 있는 작은 지식과 경험으로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하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과 아픔을 충분히 듣기도 전에 옳고 그름을 정하지 않았는지 성찰합니다. 지식이 사랑을 잃으면 칼이 되지만, 사랑과 함께하면 사람을 살리는 빛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판단하고 낮추기보다 자존감을 높여 주셨습니다. 시몬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갈릴래아의 평범한 어부들에게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부족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명과 가능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여인들의 자존감도 높여 주셨습니다. 죄인으로 손가락질받던 사람들을 용서하셨고, 병자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방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으며, 어린이들을 가까이 불러 축복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착한 목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을 돌보아 준 착한 사마리아인의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아버지의 자비를 말씀하셨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자캐오의 결심을 기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당신의 형제요 자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편견과 차별, 신분과 민족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으셨지만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고,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십자가 위에서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신앙의 핵심은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것을 통해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낮은 곳에서 이웃을 섬기는가에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정확하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아내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비롭게 이해하고 용서하는가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습니다. 용서를 베풀면 용서를 받습니다. 자비를 베풀면 자비를 받습니다. 그러나 판단과 비난을 주면, 우리 역시 판단과 비난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태도와 행동이 결국 우리가 받을 몫을 결정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지식도 중요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지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이어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과거를 배우는 것도 더 사랑하기 위해서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고 익힌 지식이 교만의 벽이 아니라 사랑의 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말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칼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는 약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이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데 머물지 않고, 사람을 품어 주고 살리는 사랑으로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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