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토)
(녹)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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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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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26 ㅣ No.191688

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22주간 토요일>(9.5) -창조시기 5일째-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6,2)

 

'인식일(주일)의 의미와 해야 할 일!''

 

오늘 복음(루카6,1-5)의 제목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실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습니다. 같은 말씀을 전하고 있는 마태오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마태12,1) 밀 이삭을 뜯어 비벼 먹었다고 전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합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6,2)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준 사실을 상기시키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에 주인이다."(루카6,5)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은 행위는 분명 안식일 규정을 위반한 행위,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안식일이 존재하는 이유'와 '안식일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묵상으로 초대합니다.

 

'안식일'은 지금 우리로 볼 때 '주일'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주일이 존재하는 이유와 주일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곧 그분의 육화와 땀과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하느님의 사랑이 되는 날'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일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주일에 해야 할 일'이며,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곧 주일의 주인은 주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형식과 규정 그 자체에만 너무 얽매이지 말고, 그 형식과 규정이 전하는 본질, 사랑에 더  관심을 갖고 그 사랑을 살아내려고 애쓰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메타노이아, 즉 돌이킴(회심)은 미래를 만드는 고귀한 행위입니다. 오직 참회와 회심,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 때만 과거와 미래의 아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의 존재가 현재에 선물이 되고, 우리 또한 '지금 이곳'에서 하느님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바이올린과 순례자', 26쪽)

 

"모든 피조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사랑과 존경으로 소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피조물인 우리는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역은 이 가족을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찬미 받으소서', 42항)

 

(~ 에제26,21)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조욱현 신부님_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바리사이들 사이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 바로 안식일의 의미에 관한 논쟁이 나온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하느님께 충실한 길이라 믿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정신, 즉 사랑과 생명을 위한 법을 가르치신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행위는 율법으로는 ‘추수와 탈곡’으로 간주되어 금지된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굶주렸을 때,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제물의 빵을 먹은 사건(1사무 21,1-6)을 인용하시며, 사람의 필요가 율법보다 앞선다는 원리를 밝히신다. 예수님은 단순히 규칙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본래 의미를 회복시키신다. 안식일은 인간에게 짐을 지우는 날이 아니라, 해방과 회복, 창조의 완성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래서 주님은 선언하신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5절) 

 

성 이레네오는 “율법은 인간을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준비시키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라고 말했다. 안식일의 참된 주인은 예수님이시며, 그분 안에서 율법의 목적이 드러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우리의 참된 안식은 안식일 규정 안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쉼을 얻는 데 있다.”(Confessiones 안식일 주석)라고 가르친다. 즉, 안식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될 표징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율법의 글자에만 집착하면 자비를 잃게 되지만, 그 정신에 따라 살면 이웃 사랑을 지킬 수 있다.”(Homilia in Matthaeum 주석)라고 강조했다. 교회의 가르침도 이를 이어받아, 안식일 계명을 단순한 규정 준수가 아닌 “하느님을 경배하고, 인간이 쉼과 사랑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계명”(교리서 2172항)으로 해석한다. 

 

오늘 우리도 종종 신앙생활에서 ‘규칙 준수’에만 집착하다가 율법의 정신을 잃을 때가 있다. 안식일, 곧 주일은 단순히 ‘미사 참석 의무’를 다하는 날이 아니라, 참된 쉼과 사랑, 봉사의 날이 되어야 한다. 때때로 우리는 법과 규칙을 지키는 데 급급해 정작 사람을 살리고 위로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주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며 보여 주신 것처럼, 참된 신앙은 자비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정신을 새롭게 밝혀 주셨다. 안식일은 사람을 얽매는 날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자유롭게 하는 날이다. 따라서 법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법이 존재한다. 우리도 일상의 신앙 안에서 규칙을 지키되, 그 규칙을 넘어서는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살아내야 한다. 그때, 우리 역시 참된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순교자들의 모후 

 

9월 순교자 성월의 첫 토요일 미사에서, 우리는 순교자들이 피를 흘려 증거한 신앙의 모범이신 어머니, 순교자들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기리며, 온갖 박해와 환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순교자들의 굳건한 신앙을 자랑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청하며, 성모 신심 미사를 봉헌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의 마지막 순간,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 사이에 모자 관계를 맺어주시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이 모자 관계 체결에서 우리는 한 두 가지 점을 묵상해 봅니다.

 

먼저, 인간적인 차원에서, 당신이 자라난 장소인 나자렛을 떠나 공생활에 접어드신 이후 3년 동안, 홀어머니를 거의 살펴드릴 수 없었던 처지에서, 특히 악의적인 온갖 소문으로 마음을 아프게만 해드렸던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에서, 한마디로 불효자의 마음에서, 어머니를 가장 가까운 제자에게 맡겨드렸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자 관계가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에서, 이는 분명 어머니와 한 제자 사이의 사적인 관계를 넘어, 어머니와 제자들, 나아가 믿는 이들 사이의 공적이며 영적인 관계를 공고히 함에 그 목적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자관계 체결을 통해,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가 제자들 전체, 나아가 믿는 이들을 대표하게 됨으로써,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바로 이들의 영적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이 관계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 예루살렘 성안에 위치한 거처에서 사도들이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을 때, 그 자리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함께하셨다는 사실로도 확인됩니다(사도 1,12-14).

 

마리아는 이처럼 교회 안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십니다. 마리아는, 온전한 믿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해 나가는 교회의 참모습을 보여주신 신앙인의 전형(典型)이며 모범이십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교회의 응답을 제일 처음, 그리고 완벽하게 실천하신 분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동정으로 머물도록 부르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리아의 모성은 동정성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거룩하게 드높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로 세워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감사의 마음을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순결하면서도 적극적인 신앙생활로, 또한 우리 모두 한 형제임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가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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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토요일]

 모든 법의 주인

 [루카 6,1-5]

 

오늘 복음 말씀은 율법 준수에 최선을 다했던 바리사이들의 질문, 안식일법을 근거로 한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모든 율법의 기초가 되는 신법(神法)으로서의 십계명은 세 번째 계명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내라”(탈출 20,8; 신명 5,12) 하고 지시하며, 아울러 이 계명 설정 배경을 설명합니다. 탈출기와 신명기의 안식일법 설정 배경이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생명을 위한 쉼의 시간이라는 데에는 공통점을 보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에게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하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일까요? 십계명을 담고 있는 본문은 이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경우를 위해서, 다시 말해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경우를 위해서, 유다교는 성문 율법으로서의 토라’(=모세오경)를 구체화하고 보완하는 구전 율법으로서의 미쉬나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미쉬나는 반복하다또는 공부하다를 의미하는 샤나동사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치고, 제자들은 반복해서 학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다교에서 미쉬나는 토라와 같은 권위를 지니는 율법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 미쉬나에 바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서른아홉 가지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바느질 금지로 시작되는 금기사항 가운데, 농사에 관한 내용이 몇 가지 있는데, 아마도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일을 (다섯 번째) 타작 행위나 (여섯 번째) 곡식 등을 까부는 일로 취급하여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행위를, 율법을 임의로 확대하고 해석하여, 율법 위반 행위로 단죄한 바리사이들의 율법 제일주의는 결국 안식일법 설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왜곡하는 우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윗과 그 일행이 취했던 구체적인 예를 들어 바리사이들의 이의를 물리치십니다. 나아가, 오늘 읽은 루카 복음의 출처가 되는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하고 단정적으로 이르십니다. 복음서 이곳저곳에, 특히 예수님이 안식일에 더러운 영을 쫓아내거나 많은 병자를 치유해 주실 때 바리사이들은 동일한 규정을 근거로 이의를 제기하나, 예수님의 대답이 한결같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안식일은 다른 계명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진정 안식일의 주인이신 분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율법의 정신이 아니라 자구에 매여 살던 바리사이들의 이의를 물리치시며, 지상 교회의 지도자가 될 제자들에게 생생한 교육의 장을 마련해 주십니다. 모든 율법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율법 해석에 어떠한 의식과 자세를 앞세워야 하는지를 일깨우십니다.

 

 

오늘 하루, 십계명을 비롯한 이러저러한 규정에 담긴 주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가족과 이웃들에게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며 전하는, 활력 넘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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