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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타르 류비치치 신부님의 경고와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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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b38927] 쪽지 캡슐

2026-09-04 ㅣ No.3019




<비밀을 공개할 사제로 선택된 페타르 류비치치 신부님>


메주고리예의 열 가지 비밀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분이 페타르 류비치치(Petar Ljubičić) 신부님입니다.

발현 목격증인 미리야나 드라기체비치-솔도는 오랫동안, 자신에게 맡겨진 열 가지 비밀을 장차 세상에 공개할 사제로 페타르 류비치치 신부님을 선택했다고 증언해 왔습니다.

미리야나의 설명에 따르면, 비밀에 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 열흘 전에 자신이 선택한 사제에게 그 비밀을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 사제는 7일 동안 기도와 단식을 한 뒤, 사건 발생 사흘 전에 그 내용을 세상에 공개하게 됩니다.

따라서 미리야나의 증언에 따르면, 페타르 신부님은 단순히 메주고리예의 발현을 증언하는 사제가 아니라, 장차 그 비밀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맡은 사제로 알려져 왔습니다.

 

 

<79세의 페타르 신부님>

 

페타르 신부님은 1946년 10월 22일생으로, 2026년 9월 현재 79세이며 오는 10월 22일 80세가 됩니다.

그는 헤르체고비나 출신의 프란치스코회 사제로, 1972년 독일 쾨니히슈타인(Königstein)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이후 헤르체고비나를 비롯하여 스위스와 독일 등에서 사목해 왔습니다.

특히 메주고리예에서 오랫동안 사목하면서 수많은 순례자들을 만나고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2026년 현재에도 페타르 신부님은 활동을 멈춘 노년의 사제가 아닙니다.

지금도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하며, 영성 쇄신회와 신앙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사제직을 계속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후마츠(Humac)에서 사목하고 계십니다>

 

2026년 현재 페타르 신부님의 사목적 소속은 후마츠의 성 안토니오 파도바노 본당(Župa sv. Ante Padovanskog u Humcu)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후마츠 본당의 2026년 주보에는 페타르 류비치치 신부님이 본당 보좌신부(župni vikar)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크로아티아 프란치스코회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페타르 신부님을 후마츠 성 안토니오 파도바노 본당의 보좌신부(župni vikar)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026년 현재 페타르 신부님은 후마츠에서 사목하고 계신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의 최근 활동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6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페타르 신부님은 슬라본스키 브로드의 프란치스코회 성당에서 3일간의 영성 쇄신회를 이끌었습니다.

주제는 “삶의 모든 순간을 자신과 형제자매들을 위한 구원의 순간으로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였습니다.

그는 좋은 고해성사를 위한 교리교육, 믿음과 사랑에 관한 강론,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 미사와 성체조배 등을 통해 신자들에게 신앙의 은총을 실제 삶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전했습니다.

즉, 79세의 고령임에도 페타르 신부님은 지금도 사목 현장에서 직접 신자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페타르 류비치치 신부님의 경고 ― “자신의 구원을 위해 힘쓰십시오. 때가 심각합니다.”>

 

2025년 4월 4일, 메주고리예 관련 매체인 Medjugorje News에는 「페타르 류비치치 신부가 경고하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 힘쓰십시오. 세상은 위기에 처해 있으며, 메주고리예 비밀의 공개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또한 동일한 발언은 2026년 3월 20일 Medjugorje News에서도 다시 소개되었습니다.

다음은 페타르 류비치치 신부님이 이전에 했던 주요 발언입니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것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Kad će to biti, ne znamo. Slutimo da smo tome svakim danom sve bliži.”)


“사실 오늘날 모든 것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온갖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불만과 온갖 종류의 어려움이 너무나 많습니다.”

(“Činjenica jest da je danas sve u krizi. Svašta se događa. Previše je nezadovoljstva i nevolja svake vrste.”)


“각각의 비밀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때가 심각합니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 힘쓰십시오. 매 순간 인격적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하십시오.”

(“Poruka svake tajne mogla bi biti: Vrijeme je ozbiljno. Poradite na svome spasenju. Budite pripravni svakog trenutka susresti se s osobnim i živim Bogom.”)

 


<2026년에도 이어지는 페타르 신부님의 메시지>


1.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2026년 6월 28일

 

2026년 6월 28일, 페타르 신부님은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제목의 묵상을 발표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메주고리예의 비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보다 죽음과 영원, 회개와 고해성사, 거룩한 삶, 그리고 하느님과의 만남을 준비해야 한다는 권고가 있습니다.

페타르 신부님은 우리가 지금 어렵고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평화롭고 안전했던 시대는 지나갔고, 과거에는 별다른 걱정 없이 할 수 있었던 일들도 이제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국제 테러와 범죄, 폭력 등으로 인해 여행조차 주의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위기보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확실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루카 12,40)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 앞에 설 준비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페타르 신부님은 인간에게 죽음의 순간이 감추어져 있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죽을 날짜와 시간을 미리 안다면, 회개와 준비를 계속 뒤로 미룰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 죽을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언제 죽더라도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언제 죽느냐보다 어떤 상태로 죽느냐가 중요합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언제, 어디에서 죽느냐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상태로 하느님 앞에 서게 되느냐입니다.

고해성사를 하고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죽을 것인지, 아니면 죄 가운데 죽을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페타르 신부님은 죽음을 영원의 시작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느님 앞에 어떤 상태로 서게 될 것인가.

바로 이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주님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우리의 지상 생활은 영원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주님과 만나게 될 그 순간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모든 노력, 그리고 우리의 모든 걱정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중요한 문제로 모아져야 합니다.

“나는 그 큰 만남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주님께서 오셔서 문을 두드리실 때 곧바로 문을 열어드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페타르 신부님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준비되어 있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반드시 옵니다.

내일일 수도 있고, 20년 후일 수도 있으며, 30년, 50년, 80년 후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가 되든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기차

 

페타르 신부님은 우리의 인생을 기차 여행에 비유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인생이라는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계속 여행합니다.

마지막 역에서 우리는 내립니다.

그곳이 바로 영원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주신 삶의 여정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거룩한 삶을 통해 우리의 짧은 인생에 영원한 내용과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우리의 하루하루에,

우리의 일에,

우리의 모든 걸음에,

영원의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언제나 영원한 날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저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았잖아”

 

사람들은 때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저 세상에서 돌아와 거기가 어떤 곳인지 우리에게 말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러나 페타르 신부님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영원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단순히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죽음 너머에는 하느님과의 만남과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이 모든 상황 한가운데에도 복음의 기쁜 선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루카 12,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과 작별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요한 14,1-4)

 

페타르 신부님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과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말씀하신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늘을 위해, 천국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천국을 위해 창조되었고, 천국을 위해 태어났다.”

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루카 10,20)

 

그리고 다시 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우리에게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이 약속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약속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살아갈 힘을 얻기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계속 나아갈 힘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2. 거룩한 죽음 ― 아버지의 집으로 건너감


2026년 8월 14일

 

2026년 8월 14일, 페타르 신부님은 포수셰(Posušje)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을 앞둔 9일기도의 여덟째 날 미사를 집전하고, 「거룩한 죽음 ― 아버지의 집으로 건너감」이라는 주제로 강론했습니다.

이 강론에서도 페타르 신부님은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를 성인들의 삶을 통해 설명합니다.

 

 

성인들은 우리의 모범입니다

 

페타르 신부님은 성인들을 우리의 본보기이자 모범이며 경고라고 말합니다.

성인들은 사람들에게 유명해지고 인정받기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페타르 신부님은 성 프란치스코가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았으며, 우리에게도 이 세상의 삶에서 어떻게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것인지를 생각하도록 가르쳐 준다고 설명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역시 삶에서 내적인 투쟁과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사람들의 구원을 돕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 16,24)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페타르 신부님은 이것이 가장 확실한 구원의 길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을 버릴 줄 알고, 물질적인 것까지도 기꺼이 내려놓으며 영원한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삶의 매 순간을 양심적으로 살아가고,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며 그것을 자신과 형제자매들을 위한 구원의 순간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 역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특히 페타르 신부님은 용서가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했는가

 

성 프란치스코는 말년에 많은 질병으로 고통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상처를 자신의 몸에 지닌 그는 죽음을 겸손하게 맞이했습니다.

페타르 신부님은 성 프란치스코가 죽음을 ‘자매’라고 불렀으며, 죽음을 맞으면서도 하느님을 찬미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눈을 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 눈을 뜨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므로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포르치운쿨라로 데려가 달라고 하다

 

성 프란치스코는 죽음을 앞두고 형제들에게 자신을 포르치운쿨라(Porciúncula)로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곳에서 요한 복음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이야기를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권고했으며, 특히 교회를 사랑하고 교황에게 순종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또한 모든 희생에는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건네는 찬물 한 잔도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울 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미 구원의 길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느님께 서둘러 갑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빵 조각을 나누어 준 뒤, 자신을 옷을 입지 않은 채 땅 위에 눕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은 매우 짧았습니다.



“나는 하느님께 서둘러 갑니다.”

 

페타르 신부님은 이 말을 전하면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죽음은 단순히 삶의 끝이 아닙니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죽음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십시오

 

페타르 신부님은 마지막으로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라고 권합니다.

마리아는 거룩하셨고, 하느님으로 충만하셨으며, 선함과 사랑과 겸손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마리아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며, 기도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을 향해 걸어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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