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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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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보 중에 ‘최강 1교시’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의 제목은 서양의 고전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였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일리아드’는 동양의 고전인 ‘삼국지’와 비슷한 면이 있고, ‘오디세이’는 ‘서유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리아드’와 ‘삼국지’는 전쟁과 영웅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힘과 욕망, 명예와 죽음을 보여 줍니다. ‘일리아드’의 아킬레우스는 누구보다 강한 영웅이지만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립니다. ‘삼국지’의 영웅들도 충성과 의리를 말하지만, 천하를 차지하려는 욕망과 자존심 때문에 갈등과 비극을 겪습니다. 성서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 임금은 뛰어난 능력과 권력을 지녔지만, 질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너졌습니다. 반면 다윗은 큰 죄와 실수가 있었지만,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돌아왔습니다. 고전과 성서는 모두 힘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와 욕망을 다스리고 잘못을 뉘우칠 줄 아는 마음이 인간을 참으로 위대하게 만든다고 가르칩니다. ‘오디세이’와 ‘서유기’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긴 여정을 다룹니다.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수많은 유혹과 시련을 이겨 냅니다. 삼장법사와 손오공 일행도 불경을 구하기 위해 서천으로 가면서 끊임없는 장애물을 만납니다. 그 여정은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고 목적을 잃지 않는 성장의 과정이었습니다. 성서에도 이러한 여정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익숙한 고향을 떠났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을 향해 갔습니다. 그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믿음을 배우고, 욕망을 내려놓으며,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영적인 여정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잊지 않았고 삼장법사 일행이 목적지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우리도 하느님 나라라는 목적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의 길에서 병과 실패, 상처와 이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길을 잃지는 않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육적인 사람은 몸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망과 질투, 자존심과 분노에 끌려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누가 더 높으냐, 누가 더 인정받느냐, 누구의 편이냐를 따지면서 갈라지고 싸우는 사람이 육적인 사람입니다. 코린토 신자들은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라고 말하며 서로 편을 갈랐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바오로도 아폴로도 뛰어난 복음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협력자일 뿐이었습니다. 생명을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다시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세상의 영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킬레우스도, 오디세우스도, 유비와 관우와 제갈량도, 삼장법사와 손오공도 시대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도 역사의 주인은 아닙니다. 성서의 모세와 다윗, 베드로와 바오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불림 받은 협력자였습니다. 모세는 말을 잘하지 못했고, 다윗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였고, 바오로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부족함을 통해서도 당신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뒤에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이른 아침에는 외딴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 곁에 머물러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인기와 기대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파견된 목적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기도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찾으셨고, 그 뜻에 따라 다시 길을 떠나셨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내 욕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사명을 향해 나아가는 삶입니다. ‘일리아드’와 ‘삼국지’가 인간의 분노와 욕망, 명예와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 준다면, ‘오디세이’와 ‘서유기’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인내와 성장의 길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성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모든 여정의 주인은 하느님이심을 가르칩니다. 세상의 영웅은 적을 무찌르고 나라를 얻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영웅은 자신을 이기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참된 승리는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참된 귀환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협력자입니다. 우리는 씨를 뿌리고 물을 줄 뿐입니다. 결과를 이루시고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시기하고 다투기보다 서로 협력하고,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하느님을 드러내며, 육적인 욕망보다 영적인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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