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6일 (수)
(녹)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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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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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0:09 ㅣ No.191449

이병우 신부님_"이처럼 너희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마태23,28)

 

'나도 위선자는 아닌지?''

 

오늘 복음(마태23,27-32)도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이웃 종교인 불교의 명진 스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어제 서울 봉은사에서 종교시민사회장으로 거행된 영결식에 유튜브를 통해 함께 했습니다. 명진 스님과 함께 했던 분들이 많이 참석했고, 이승에서 함께 나누었던 아름다운 삶을 떠올리면서 조사를 했습니다. 특히 장사익의 눈물나는 조가와 눈물로 보내드리는 세월호 유가족의 조사 앞에서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명진 스님은 정의와 자비를 몸소 실천한 분입니다.

명진 스님은 낮은 곳에 있는 분들의 마음에 함께 한 분입니다.

명진 스님은 큰 고통과 시련 중에 있는 이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간 분입니다.

명진 스님은 그렇게 사회적 약자들에게 부처가 되어 주었고, 우리로 말하면 예수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래도 세상이 살 맛 나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남아 있는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주님, 명진 스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예수님께서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강하게 질책하십니다. 이런 위선자들은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계십니다. 위선에 대한 책망은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전하고 있고, 이 위선으로부터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나도 위선자는 아닌지?'

 

오늘 독서(2테살3,6-10.16-18)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 하였습니다."(2테살3,7-10)

 

명진 스님의 삶과 사도 바오로의 이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보는 복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예레42,22)

 

조욱현 신부님_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27절) 주님의 말씀은 단순히 그 시대 사람들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겉모습과 내적 실재 사이의 괴리, 참된 신앙의 본질을 묵상하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바리사이들의 문제는 겉과 속의 불일치였다. 겉으로는 경건과 의로움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불의와 교만으로 가득했다.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은 당시 유다인들에게 잘 알려진 상징이다. 무덤은 겉에 회칠해서 멀리서 보면 깨끗해 보였지만, 그 속은 부패와 죽음으로 가득했다. 위선은 단순히 작은 잘못이 아니라, 진리를 가리는 죄이다. 선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31절)라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박해함으로써 겉모습의 경건함과 내적 불신앙이 얼마나 심각하게 어긋나 있는지를 드러내신 것이다. 
 
교부들은 이 구절을 깊이 묵상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바리사이들이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탐욕과 교만이 가득하다. 회칠한 무덤은 사람들을 속이는 위선의 상징이다.”(Hom. in Matthaeum 72 요약)라고 해석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위선을 ‘이중적 삶’이라고 부른다. 그는 “겉으로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듯하나, 속으로는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다. 그들은 하느님의 성전이 아니라, 부패한 시신의 저장고다.”(Sermo 73 참조)라고 말한다. 교회 전통에서도 ‘회칠한 무덤’은 단순한 도덕적 비판이 아니라, 성전의 참된 의미와 연결된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의 몸이 성령의 성전입니다.”(1코린 6,19참조)라고 했다. 따라서 성전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적 거룩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성찰을 요구한다. 나는 겉으로는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 마음이 메말라 있지는 않은가? 신앙생활이 외적인 습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혹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 행위가 아닌가? 참된 신앙은 하느님을 향한 내적 진실함에서 비롯된다. 하느님은 우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1사무 16,7)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살아 있는 성전이 되는 것이다. 죽은 뼈로 가득한 무덤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한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 겉과 속이 하나 된 진실한 삶, 하느님 앞에서 투명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참으로 주님의 자녀가 된다. “회칠한 무덤”이 아니라, “성령의 성전”으로 살아가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불행하여라, 셋

 

오늘 우리는 일곱 가지 불행 선언 가운데 마지막 두 선언을 읽고 묵상합니다. ‘회칠한 무덤과 같은 존재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비난하는 여섯째 불행 선언은 그 동기에서는 직전의 다섯째 선언과 유사합니다: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예루살렘을 순례하다 보면, 키드론 골짜기 주변에서 많은 무덤을 발견하며, 모두 흰색을 띠고 있음을 봅니다. 밤에도 무덤을 분별할 수 있도록 횟가루를 뿌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죽음과 맞닿아 있는 부정한 장소이므로 어두움 속에서도 그것을 알아보고 접근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성전을 방문하러 오는 이들이 밤에 무덤에 몸이 닿아 부정하게 됨으로써, 성전 전례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려는 조치입니다. 아무튼 이미지는 강렬해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 불행 선언을 통해서, 의롭게 보이기 위해 겉모습은 횟가루로 아름답게 꾸며 놓았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 곧 위선자의 악취와 율법에 반하는 정신으로 가득 차 있음을 폭로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불행 선언에도 무덤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앞선 불행 선언과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조상들이 잘못해서 처형해 버린 위인들의 무덤을 단장하여 속죄의 뜻을 피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조상들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우리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참 예언자들 모두 갖은 반대와 핍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을 박해한 사람들은 자신을 율법에 성실한 사람, 곧 의로운 사람으로 자처하던 사람들이었으며,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하고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남김없이 하여라하는 말씀으로, 예언자 가운데 예언자이시며 의인 가운데 의인이신 당신의 죽음과 함께 당신이 파견하실 제자들의 운명을 이미 내다보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34을 읽어 보시면 이 점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제 내가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면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또 이 고을 저 고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

 

일곱 차례의 불행 선언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세 번째 선언의 눈먼 자를 예외로 하면, 위선자로 고발됩니다. 다시 말해서, 말과 행동이 다르고,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믿는 대로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로 비난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국한되는 질책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르고,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믿는 대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위선자또는 눈먼 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언행(言行)과 지행(知行)과 신행(信行)이 일치하고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가톨릭 신앙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한층 높이는 복된 하루,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말과 앎과 믿음이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뜻깊은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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