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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시 ] 피로 남긴 사랑의 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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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남긴 사랑의 찬가 Ⅰ. 순교의 유언 날카로운 마지막 감각이 살결에 닿아도 그들의 영혼만은 끝내 상처를 입지 않는다. 지상위에 가누던 허물어진 몸은 찰나의 계절을 지나가는 거푸집일 뿐, 마침내 가슴속에 타오르던 단 하나의 사랑을 향해 조용히 숨을 바친다. 가장 깊은 아픔 너머로 피어나는 영원한 사랑, 비명 대신 가슴 깊이 차오르는 승리의 침묵. 죽음이 그들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을 향해 기꺼이 나아가는 것이기에, 이 수난의 마지막 순간은 세상에 남기는 가장 아름다운 유언이 된다. “주님, 저희의 목숨을 받으소서.” Ⅱ. 빛으로 남은 향기
어둠이 스스로를 태워 새벽을 부르고, 씨앗이 침묵의 땅 밑에서 제 껍질을 깨뜨리듯, 그들의 영혼은 가장 깊은 아픔 속에서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거친 바람에 흩날리는 촛농처럼 육신은 붉은 눈물을 흘리며 스러져가지만, 그 촛불이 향하는 곳은 바람이 아니라 어둠 너머의 사랑의 빛이다. 바다는 파도를 부수어 백사장에 바치고, 향나무는 자신을 찍는 도끼날에 향을 묻히듯, 가장 깊은 상처를 베어 문 자리에 마침내 가장 짙은 사랑의 향기가 퍼져 나간다. 스스로 부서짐으로써 완성을 이루는 것, 제 몸을 녹여 누군가의 길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은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사랑을 위해 영원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거룩한 이행이다. 그들이 흘린 피는 더 이상 피로만 머물지 않는다. 어둠을 밀어내는 희망의 불꽃으로, 닫힌 문틈을 넘어서는 아득한 향으로 살아나 오늘, 우리를 다시 그 빛으로 부른다. Ⅲ. 살아 있는 기억 오래된 핏자국 위로 다시 풀잎이 자라고, 굳어 버린 땅의 침묵을 깨며 작은 뿌리 하나가 어둠을 뚫고 내려간다. 유물로 남은 이름들이 바람의 결을 타고 돌아와 식어 가는 가슴의 온도를 되살린다. 편안함에 익숙해진 손끝이 차가운 바람을 피할 때, 문득 손바닥에 새겨지는 작은 흉터 하나. 그것은 끝나지 않은 질문이며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다. 우리가 잊고 있던 그 모든 눈물이 오늘, 이 길 위에서 다시 붉은 꽃으로 필 수 있을까. 바람은 여전히 거칠고 밤은 깊어 가지만, 발끝에 닿는 어둠의 무게를 느끼며 우리는 다시 그 낯선 빛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흘러간 시간의 깊이만큼 더 깊이 뿌리내리는 묵묵한 서약 하나를 새기며. 그들이 피로 지킨 사랑을 이제 우리의 삶으로 이어 가겠다는 서약. 저자의 서(書) 피는 흘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토양 깊이 스며들어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나무를 키워내는 거룩한 원동력입니다. 순교자들이 걸어간 길을 가만히 묵상할 때마다 가슴을 치는 것은 그들이 견뎌내야 했던 참혹한 고통이나 수난의 크기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참혹함마저 완전히 집어삼켜 버린, 단 하나의 사랑—신을 향한 흔들림 없는 신망(信望)과 세상을 향한 숭고한 긍휼이었습니다. 차가운 형구와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그들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세상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침묵에 찬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 연작시 《피로 남긴 사랑의 찬가》는 그 거룩한 수난의 현장에 바치는 작은 헌사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신앙을 비춰보는 조용한 거울입니다. 1부 〈마지막 유언〉에서는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사랑과 승리의 고백을 담고자 했고, 2부 〈빛으로 남은 향기〉에서는 자신을 부수어 어둠을 밝히고 세상에 향기를 퍼뜨린 희생의 승화를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부 〈살아 있는 기억〉에서는 시선을 '그들의 어제'에서 '우리의 오늘'로 돌려보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흘린 붉은 피 위로 다시 푸른 풀잎이 자라고 참혹했던 기억은 유물이 되어가지만, 그들이 손바닥에 남겨준 거룩한 흉터는 여전히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안락함과 타협에 길들여진 식어가는 우리의 가슴을 향해, 과연 우리는 오늘 어떤 발걸음으로 그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피로 지켜낸 그 위대한 사랑이 과거의 전설로 잊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어둠 속에서 밝혀든 작은 촛불과 문틈으로 스며드는 오래된 향기가, 오늘이라는 고단한 삶의 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 묵묵한 위로이자 삶으로 신앙을 이어가게 하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장 깊은 아픔 너머에서 피어난 그 영원한 사랑을 기억하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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