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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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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마태23,23.25)
'본질에 충실하자!'
오늘 복음(마태23,23-26)은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라사이들의 위선, 곧 율법의 본질보다는 율법 규정에 얽매여 있는 그들의 위선과 마음 속에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는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십니다. 그런 그들을 두고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마태23,23)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마태23,25-26)
예전 어렸을 적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저는 아버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곤 했습니다. "주일미사를 빠지면 밥 먹지 마라. 그리고 쇠죽(소밥)을 주지 않으면 밥 먹지 마라." 당시 재산 목록에서 소 두 마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컸고, 구교 집안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거의 주일미사를 빠지지 않았고, 시간에 맞추어서 소밥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밥 먹으려고 ㅎㅎ
주일미사를 빠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일미사의 본질인 성체의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서로 사랑 안에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미사를 했네, 기도를 했네, 말씀을 가까이 했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사와 기도와 말씀의 본질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삶으로 살아내야 할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질에 충실하고, 본질을 따라가는 행복한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3,16.18)
(~ 예레36,32)
조욱현 신부님_먼저 속을 깨끗이 닦아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위선을 강하게 꾸짖으신다. 겉으로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 같으나, 내면의 정의와 자비와 신의는 무시한 채 형식에만 집착하는 삶은 하느님 앞에서 공허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에게 십일조는 율법의 중요한 의무였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하찮은 박하와 소회향까지 철저히 십일조를 내면서, 정작 율법의 핵심인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무시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24절) 즉, 사소한 것에는 집착하면서 더 큰 본질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신다.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의 참된 정신은 단순한 의식적 준수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이며, 그 중심은 정의·자비·신의이다. 교부들은 이 구절을 깊이 묵상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율법의 의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의 봉사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라고 하며, 율법이 지향하는 목표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사랑임을 강조했다. 성 예로니모는 “작은 십일조에 집착하면서 더 중요한 의로움과 자비를 버린 것은, 물을 걸러 내며 낙타를 삼키는 어리석은 모순과 같다.”(Comment. in Matth., 23장 요약)라고 설명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역시 “그들은 외적 행위로 스스로 경건하다고 말하지만,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그들의 내면이다.”(Homilia LXXIII in Matthaeum 요약)라고 가르쳤다. 교회의 가르침 또한 일관적이다. 교리서는 “덕행은 사랑으로 완성된다.”(1827항)라고 말한다. 사목 헌장도 신앙은 단순한 외적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라고 강조한다.(24, 27, 43항 참조)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도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혹시 나는 신앙생활에서 작은 규칙과 형식에는 철저하지만, 정작 이웃을 향한 정의와 자비에는 무관심하지 않은가? 혹시 나는 겉모습으로는 신앙인 같지만, 내면은 여전히 자기를 위한 집착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예수님의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26절)라는 말씀은 외적 행위도 참된 내적 정결에서 흘러나올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을 일깨워 준다. 율법의 조문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의와 자비, 그리고 신의이다. 겉이 아닌 속을 먼저 정결히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모두 형식적 신앙에서 벗어나 진실한 내적 회심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신다. 오늘 하루, 우리의 신앙이 겉모습이 아니라, 정의와 자비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내적 진실함에서 흘러나오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김건태 신부님_불행하여라, 둘
어제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을 지낸 관계로 특정 복음 말씀이 봉독되었지만, 전례상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에서 우리는 따르지 말아야 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적 행실을 ‘불행’이라는 표현에 실어 고발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일곱 차례에 걸쳐 불행이 선언되는데, 어제 세 가지, 오늘 두 가지, 그리고 마지막 두 가지는 내일 울려 퍼질 것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불행이 선언됩니다. 어제 복음 말씀에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당시 유다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종교 지도자들을 거슬러 이처럼 맹렬하게, 때로는 그들의 자존심을 망가뜨릴 정도로 가혹하게 비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입니다. 당시의 군중이 여러 차례 입에 올렸듯이, 예수님의 가르침은 “권위에 찬 놀라운 가르침”이었으며, 이 권위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열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느님 나라가 자리하도록 하시려는 열정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넷째 불행 선언은 ‘십일조’에 관한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십일조를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게 지키던 사람들로서, 박하와 시라와 소희향과 같은 매우 사소한 농작물에까지 적용했습니다. 이 농작물들은 자연적으로 자라기도 하지만 경작하기도 했으며, 대부분 그 씨를 빵과 여러 음식의 맛과 향을 돋우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일조 자체나 십일조 준수에 대한 철저한 정신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으시나, 조건을 두십니다. 어디까지나 그 철저함 또는 세심함이 ‘의로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부족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자비’, 모든 인간관계에서 늘 전제되어야 할 ‘신의’가 경시되거나 무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입니다. 이러한 의로움과 자비와 정의가 없다면, 종교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같이 “네 탓이요!”를 소리 높이는 집단에 불과할 것입니다. 다섯째 불행 선언은 그야말로 ‘위선적인 행실’, 겉과 속이 다른 행위에 관한 것입니다. 유다인들에게 식기 청결은 단순한 위생적 차원을 넘어 종교적 정결 예식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었습니다. 식기를 세척할 때 겉과 속을 깨끗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에서 속은 그대로 둔 채, 겉만 깨끗이 하는 행태가 불행 선언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잔 속’을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시며,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나온다.”(마태 15,19) 하고 적시하신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겉보다는 잔 속을 먼저 깨끗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유다교의 종교적 의무인 십일조와 종교적 전통인 식기 청결에 대해 유권 해석을 내리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적 행위를 겨냥해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율법에서 더 중요한 요소들인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경시하고,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찬 마음을 깨끗이 하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되풀이하지만,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신앙생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신앙생활에는 권위가 있을 수 없으며, 기쁨과 보람 또한 함께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아는 대로 행동하는 자세를 뛰어넘어, 믿는 대로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자랑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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