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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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신부님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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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6-08-06 ㅣ No.191031

 

오늘은 제가 제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이 내용은 사적인 제 개인적인 내용이지만 이 내용을 올리는 데 생각한 내용은 제가 평소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랜 시간 묵상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세상적으로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분들에게는 도움이 되실 겁니다. 또 한편으로는 사목하시는 신부님들도 어쩌면 이 글이 사목하는 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신부님도 세상적인 비유를 하면 우리가 천국이라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실제 공교육은 예수님과 하느님께서 성경으로 전달해 주셨지만 우리는 그걸 잘 모르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신부님이라는 선생님으로부터 사교육을 받는 것과 비슷한 비유로 생각해 평소 많이 묵상한 것인데 오늘은 이 묵상을 바탕으로 해서 제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 전에 그 내용을 한번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뿐만 아니라 신앙 안에서도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을 듯해서 올립니다. 오늘 이 글에서 제가 표현한 선생이나 강사를 쉽게 신부님 정도 상정하시고 학생은 신자로 보시면 좀 더 현실적으로 이 글이 와 닿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소나마 신앙에 도움이 되시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사교육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간혹 학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사교육을 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환경이 갖추어졌을 때 막상 학원을 보내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유는, 사교육의 도움을 받은 애들과 같이 수업을 했을 때 진도라든지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조금 같이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 고민에 앞서서 우리가 학원이나 인강 등 학생들이 왜 이런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지 그 이유라기보다는 왜 받게 되었는지 그 현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교육을 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현실을 설명하겠습니다. 공교육이라는 현실 속에서는 모든 학생들의 수준을 다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사교육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저도 이 현실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표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시간이 많다거나 또 사교육의 도움 없이도 공부를 자기주도적으로 잘 알아서 할 수 있는 학생이라면 조금은 부족하지만 얼마든지 공교육만으로도 원하는 기대치만큼 성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그렇게 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영어만 수학만 그리고 언어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적인 한계 때문에 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럼 이런 현실에서 사교육을 받기만 하면 다 좋은 효과를 보는가 하는 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효과를 톡톡히 본 학생도 있지만 생각만큼 효과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사교육이라는 건 공교육이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충하는 역할을 할 따름입니다. 이게 가장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만약 사교육이 보충에서만 그치는 수준에 머문다면 그럼 굳이 사교육을 받을 필요성이 그다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현실이 아니라 과거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사교육인 일명 과외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요즘도 있긴 하지만 예전과 같은 그런 과외는 많이 사라진 게 현실입니다. 과외가 됐든 이런 사교육이 단순히 실력을 올리기 위해서 도움을 받는 건 물론 맞는 말이지만 좀 더 팩트에 근거해서 왜 필요하게 된 것인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교육을 하는 입장에서 사교육을 대변하는 말씀 같아서 일면 송구한 점도 있습니다만 어쩔 수 없는 사회 현실이기도 합니다. 학생이 만약 사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면 어떤 점을 위해서 받아야 하는지 그 점에 대해 먼저 학부모님이나 학생이 알아야 합니다. 

강사나 선생의 역할을 학생이 시간이 많이 있다면 충분히 자신이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구할 수도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렇게 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교육이 맞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 공부를 한다면 시간대비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고등 3년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말을 한다면 서울 지역 학생들이라고 해서 3년이라는 세월이 4년으로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모든 학생들에게는 고1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 학년의 학생들이 수능을 보는 시간까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동등한 시간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실력이 격차가 난다면 그 실력을 메울 수 있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게 사교육입니다. 단순히 사교육만 받는다고 해서 실력을 올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사교육은 만능통치약 같은 약을 처방하는 약국이 아닙니다. 

사교육의 도움으로 성적이 향상되는 데에는 사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역량이 있어야 할까요? 학생들이 스스로 하게 되면 많이 소요될 시간을 첫째 줄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학생에게 필요한 것만 전달할 수 있는 강사의 역량과 자질에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학생이 고민해서 스스로 답을 찾는다면야 그게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이고 최선이지만 최선으로 만족이 안 됐을 때 차선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 되겠습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한다면 둘러가거나 해서 길을 헤매는 경우라면 그 길을 잘 아는 사람이 단번에 잘 안내해서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줄이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간혹 잘못 이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길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 길을 직접 걸어야 하는 건 분명 학생입니다. 학생이 직접 걸어야 하는 것이지 선생이 그렇다고 해서 대신 걸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간혹 상담을 하다 보면 선생이 그 길까지 직접 걸어야 하는 대상인 줄 착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마라톤 같으면 선생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서 같이 달려주기도 합니다. 결국 사교육의 역할은 이런 역할이어야 하는 거지 강사나 선생이 목적지까지 잘 뛰어가겠다는 건 넌센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강사나 선생의 실력도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자신의 실력과 티칭 능력은 좀 다른 별개의 개념입니다. 좀 쉬운 개념으로 이 개념을 생각해보겠습니다. 

2002년도에 한국이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루어냈습니다. 이때 물론 선수들도 훌륭히 기량을 잘 발휘한 것도 있지만, 가장 주목을 받은 건 히딩크 감독의 감독으로서의 자질이었습니다. 히팅크 감독은 전체 축구 인생으로 보면 개인 인생에서 볼 때 선수 시절에 선수로서는 각광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빛을 보지 못했던 선수 시절보다는 감독으로서의 명장 역할은 훌륭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명성은 있었지만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해서 히팅크 감독의 감독으로서의 몸값은 더 올라간 것도 사실입니다. 히팅크 감독이 감독으로서 우리나라에서 대성공을 거둔 이유도 많이 있겠지만 여러 축구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서 판단한다면 물론 축구라는 스포츠는 팀웍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팀웍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인 기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것도 모래성 위에 집과 같은 것이 됩니다. 개인 기량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히팅크 감독에게 있었던 게 있습니다. 바로 체력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기량이 좋아도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국 축구 선수들에게는 유럽이나 축구 강호들과의 시합에서는 전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간파를 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논리를 한국 축구 현실에 접목을 했을 때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게 사실이었습니다. 근데 이와 같은 히팅크 감독의 실험 결과는 월드컵 결과에서 증명됐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운이라는 게 그때 많이 따라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정말 세상에서 말하는 운이라는 걸 잘 모르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설령 그게 운이라고 해도 그런 운은 그냥 복권이 당첨되듯이 오는 게 아닙니다. 운도 실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는 절대 따라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다시 원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모든 사교육의 선생이나 강사는 히팅크 감독과 같은 면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언론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월드컵 이후 오랜 시간 동안 히팅크 감독과 함께 지낸 선수라든지 아니면 코치진들이 그동안 히팅크 감독과 같이 생활하면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걸 여러 차례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저는 강사의 시절과 학원 원장의 시절을 보내면서 히팅크 감독이 왜 우리나라에서 대단한 성과를 냈는지 많은 자료를 흥미롭게 찾아보고 고민해봤습니다. 물론 축구라는 운동과 우리가 말하는 공부랑은 별 연관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역량만 있는 선수는 그럴 수 있지만 세계적으로 이름을 남길 만한 선수 정도가 되려면 단순히 말하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정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능도 아주 뛰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모든 감독들도 히팅크 감독을 벤치마킹하면 다 대성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왜 그게 잘 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누구나가 잘 아는 기본원칙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히팅크 감독은 축구감독으로서의 자질도 자질이지만 그 자질보다는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선수 개인에게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게 동기부여를 잘 해줬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말 그자체는 쉬운 말이 될 수 있지만 동기부여를 잘 할 수 있다는 건 그냥 단순히 격려 차원에서 하는 동기부여는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수가 대성할 것 같으면 대성하지 않을 선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좀 더 세분해서 이야기한다면 그 선수 하나 하나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특성 이런 걸 잘 꿰뚫어서 그 선수에게 맞는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있는 특유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 강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교육 선생은 개인의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모든 학업의 기본원칙을 잘 고수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잘 안내해 주는 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력 연마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해 줄지 자신만의 티칭 능력을 가지려고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누구나가 아는 일반적인 문제 풀이 접근 방식, 스킬로 해결하려고 하는 그런 원초적인 설명보다는 그게 흔히 말하는 스킬이라면 스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스킬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본 원리로만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원론적인 지식을 잘 전달하는 게 가장 뛰어난 선생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슈퍼 컴퓨터도 단순히 예스냐 노냐 하는 이진법의 논리가 수많은 집약으로 연산을 처리해서 인간의 능력보다 뛰어난 연산처리능력을 가지고 있듯이 스킬이라는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의 이진법의 단순논리이지만 이 논리가 엄청나게 많이 결합돼서 구성된 것이 트랜지스터이고 이 트랜지스터의 수많은 결합이 집적회로인 ic가 거대한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것처럼 선생은 그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 자체를 잘 전달할 수 있게 철저히 연구를 해 전달하는 게 더 훌륭한 선생이고 그렇게 해서 학생이 문제를 접근해 풀 수 있도록 그 역량을 키워주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 결론을 내기 위해서 정리를 한번 하겠습니다. 사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다 좋은 효과를 낼 수는 없습니다. 사교육을 담당하는 선생의 능력이나 자질도 중요합니다.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학생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 같은 것을 면밀히 잘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 학생에게는 어떤 면이 부족한가 하는 것과 그 부족한 면을 어떻게 전달해서 잘 메꿀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열심히 연구를 해서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합니다. 강사의 티칭 능력은 모든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똑같은 실력으로 전달하는 건 모든 학생들의 수준이 똑같다는 전제하에서는 그게 타당할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학생 또한 그 학생이 가지고 있는 지식 또한 이해의 스펙트럼이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은 그 학생의 이해의 정도를 제일 먼저 파악하는 게 관건이 됩니다. 그 자체를 모르고 강의를 한다는 건 병명도 모르고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처럼 강사도 어쩌면 그런 의사와 같을지 모를 일입니다. 만약 모든 강사가 그와 같은 것을 고민하며 학생들을 지도한다면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은 학생들이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상황에서 고민해야 하는 점이 있다면 이런 점을 잘 보완해 줄 수 있는 학원을 선택한다면 그런 고민은 다소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이제 저는 신앙의 틀 안에서 이 주제를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하면서 성당이라는 학교에 다닙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초보부터 시작해서 천국이라는 대학을 가기 위한 교육을 받는 것과 비슷합니다. 모든 교육이 그러하지만 교육을 받는 학생은 우수한 학생만 있는 게 아닙니다. 열등한 학생도 있습니다. 세상은 어차피 생존경쟁이라는 구조 안에서 열등한 학생과 우등한 학생이 어쩔 수 없이 존재해야만 하는 구조이지만 신앙이라는 학교를 다니는 신자는 좀 달리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여긴 어떤 차별도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공부를 해서 가는 대학처럼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가는 곳이라면 정말 비참할 것입니다. 천국은 사교육이 없어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이 천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천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만이 일명 세상에서 말하는 사교육 같은 걸로 가는 곳이라면 그곳은 천국이 아닐 것입니다. 그건 천국을 돈으로 사는 것일 것입니다. 다행히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얼마든지 사교육 없어도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당이라는 공동체가 어떤 역할을 세상에 해야 하는지 그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고민을 많이 하는 신부님이 계신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향해서 믿음 하나로 천국 입성을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부님이라는 선생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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