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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18주일 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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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일 가해] 마태 14,13-21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지켜야 할 교리 내용 중에 ‘연대성의 원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회 구성원으로써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인류 전체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와 이웃은 서로 아무런 연도 없는 남남같지만, 이 세상이라는 ‘한 배’를 타고 가는 동료이자 형제들입니다. 세상에 있는 재화에는 한계가 있기에 내가 배불리 먹는 동안 누군가는 굶주릴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유행따라 취향따라 멀쩡한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사 입는 동안 누군가는 제대로 된 옷 한 벌 없이 헐벗게 됩니다. 나의 무관심 때문에 아이들이 폭력에 노출되거나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하고 있고, 내가 어른으로서 좋은 본보기를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철 없는 청소년들이 ‘촉법소년’ 운운하며 당당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아름답지 못한 것에는 내 책임도 있으며, 이 세상에 부정과 불의 그리고 불공평이 만연한 것은 내 잘못이기도 하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런 점을 상기시키십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들을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시지요. 예수님은 당신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당신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먼 길을 따라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군중의 모습을 가엾이 여기십니다. 그래서 당신께 청하는 이들을 물리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며 치유해주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한 말이 그대로 실현되는 듯하지요.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한 없는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군중을 가엾이 여기시며 사랑과 정성으로 따뜻하게 보살피시는 그분 모습이 그 증거이지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그 어떤 난관도 우리를 먹여 살리시며 보살피시는 하느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통해 그런 우리의 깨달음을 확신으로, 당신께 대한 굳건하고 깊은 믿음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도 세상의 거센 풍랑에 치이고 굶주림에 지친 이들을 보았지만, 그냥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굶주리는 건 자기들과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가진 얼마 안되는 양식으로는 어차피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없으며, 자기 먹을 것은 제 힘으로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중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자고 예수님께 건의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이 무작정 당신을 따라나선 군중을 그냥 돌려보냈다가는 집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굶주림에 지쳐 쓰러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과의 연대를 저버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기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 재료란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아낌없이 내어놓는 봉헌물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내어 놓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족할지라도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런 우리의 마음에 하느님의 은총이 더해진다면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으로도 온 세상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 점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음식들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어떤 일을 하실 때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계산’ 같은 건 하지 않으셨지요. 장정만도 오천명이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려면 몇 개의 빵이 필요한지, 그만큼의 빵을 사려면 돈이 얼마나 들겠는지 그런건 굳이 생각하지 않으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이치에 어둡거나 대책없는 분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보면 의구심과 걱정이 커져 사랑의 실천을 망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게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 나눔이지요. 또한 어차피 우리 인간의 능력과 조건은 항상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느님 앞에 사랑으로 봉헌하면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으로 그 부족함을 채워 충만하게 만드십니다. 물질적인 ‘음식’에 불과했던 빵과 물고기가 영적 ‘양식’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거룩한 변화를 이루시기 위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의 기도를 드리신 겁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변화된 양식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직접 나누어 주시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서 군중에게 나누어 주게 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제자들은 이 일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을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를 실천함에 있어 ‘양’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마음 안에 내 것을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진심만 있다면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으로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 충만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그렇게 모두가 함께 배불리 먹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는 것을… 이것이 빵과 물고기의 기적이 주는 교훈입니다. 기적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은 모든 사람이 함께 누려야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각자 가진 것을 조금씩만 서로 나눈다면 부족함 없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조금씩만 양보하고 배려한다면 이 세상에는 모두가 앉기에 충분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나만 생각하는 개인주의나 이기심은 버리고 사랑으로 서로 연대해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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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8월 3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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