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8일 (화)
(녹)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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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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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7-27 ㅣ No.190834

25년 전에 손님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꽥꽥!” 아침부터 거위 한 마리가 성당 마당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전날 성당으로 들어온 거위였습니다. 수녀님께서는 그 거위에게 ‘Bona’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라틴어로 착한, 좋은, 선한이라는 뜻입니다. 암컷이었기에 여성형으로 ‘Bona’라고 불렀습니다. 목에는 예쁜 리본도 달아 주었습니다. 밤에는 차고에서 잤고, 아침에는 빵도 얻어먹고, 수녀님께서 끓여 주신 라면도 먹었습니다. 참 행복한 거위였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날이었습니다. 눈은 소리 없이 수북이 쌓여 가고, 거위는 나뭇잎 위에 쌓인 눈을 먹고 있었습니다. 사무장님은 관리인이 새로 왔다.”라고 좋아하였습니다. 저는 그 거위가 우리에게 온 손님이면서,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작은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새해에는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리라는 표징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우리도 다른 이웃들에게 착한 모습, 선한 모습,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하느님의 초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 교우 몇 분과 수녀님은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작은 정성을 준비해서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봉고차로 나갔지만, 눈이 많이 내려서 사륜구동이 되는 차로 바꾸어 타고 나갔습니다. 문득 신학교 때 자주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Ecce Quam Bonum!” 시편의 말씀입니다. “얼마나 좋고도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 그렇습니다. 함께 사는 것이 좋습니다. 함께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를 손님으로 맞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손님이 되고,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선물이 되는 것은 더 아름다운 일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주교님과 신부님 두 분이 오셨습니다. 2,000년 전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해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렸습니다. 이번에 오신 주교님과 신부님들은 내년에 서울에서 열리는 서울 세계 청년대회를 알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교님이 오신 날, 마침 월드컵 경기가 있었습니다. 한국과 체코의 경기였습니다. 주교님은 본당 교우들과 함께 친교실에서 경기를 응원하였습니다. 경기 결과는 한국의 21 짜릿한 역전승이었습니다. 저는 주교님께서 한국의 승리를 선물로 가져오신 것처럼 느꼈습니다. 주일에는 주교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시고, 교우들의 영적인 갈증을 채워주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한국의 승리도 선물이었고, 주교님의 말씀도 선물이었습니다. 본당 공동체도 서울 세계 청년대회를 위해 작은 정성을 나누었습니다. 선물은 좋은 뜻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present’라는 말에는 선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오늘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내가 좋은 뜻으로 이웃에게 나눌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선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밭에 좋은 씨가 뿌려졌지만,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갑니다. 종들은 가라지를 뽑아 버리자고 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말합니다.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는 때때로 세상을 너무 쉽게 둘로 나누고 싶어 합니다. 저 사람은 밀이고, 저 사람은 가라지라고 판단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서둘러 판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밭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랍니다. 우리 안에는 착함도 있고 약함도 있습니다. 선한 마음도 있고 이기적인 마음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열망도 있고 세상 것에 흔들리는 마음도 있습니다.

 

죄인은 회개를 만나면 은총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죄인은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죄인이 용서받고 새롭게 변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지만 주님을 만나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회개의 눈물을 흘린 뒤 주님의 양 떼를 돌보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젊은 날의 방황을 지나 위대한 신학자와 성인이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세상의 즐거움을 따르던 삶에서 돌아서서 가난과 평화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삶에도 가라지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은총 안에서 밀은 더 크게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 말씀의 밀과 가라지는 남을 판단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 안의 밀을 잘 키우라는 말씀입니다. 내 안의 가라지를 보고 절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직 수확의 때가 오기 전까지 우리에게 시간을 주십니다. 그 시간은 회개의 시간입니다. 성장의 시간입니다. 선물이 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나는 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힘든 이웃을 위해 작은 정성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돌아설 수 있다면, 내 안의 가라지는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내 안의 밀은 은총 안에서 자라날 것입니다. 25년 전에 손님으로 찾아온 거위 한 마리도 우리에게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먼 길을 찾아온 주교님과 신부님도 우리에게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선물은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은 가라지 때문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약함까지도 은총의 밭으로 바꾸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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