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6일 (일)
(녹)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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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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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7-25 ㅣ No.190797

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마태13,18) 

 

'내 마음의 밭은?' 

 

오늘 복음(마태13,18-23)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길에 뿌려진 씨,

돌밭에 뿌려진 씨,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

좋은 땅에 뿌려진 씨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길에 뿌려진 씨'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기는 하지만, 고통과 시련 앞에서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에 빠져있는 사람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닫는 사람, 생각과 말과 행위로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밭이 길과 돌밭과 가시덤불 속과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좋은 땅의 모습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내 마음의 밭은?' 

 

요즘은 모든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한 곳에만 집중하려고 애쓰는 시간입니다.

그 한 곳이 바로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필사하는 것'입니다.

시편 필사를 마치고 잠언 필사를 마쳐가고 있습니다.

내일은 코헬렛 필사를 시작합니다.

요즘 말씀들이 더 마음에 깊이 다가옵니다. ㅎㅎ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씀을 필사하는 바로 그 시간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은총으로 주어진 한 달의 시간이 늘 그런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하느님의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바로 오늘 복음이 전하는 메시지와 같습니다.

오늘 독서(예레3,14-17)에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과도 같습니다. "배반한 자식들아, 돌아오너라. 주님의 말씀이다."(예레3,14ㄱ)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5,45)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은총은 모두에게 쏟아지는 은총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은총은 '상존은총'이고, 그래서 교회가 공번됨과 보편됨의 의미를 지닌 '가톨릭 교회'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매일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말씀을 통하여 매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총)이 내 마음의 밭에 떨어져 좋은 열매, 곧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그래서 매일 부활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 잠언29,15) 

 

조욱현 신부님_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 사도를 기념하고 있다. 복음에서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은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 자리를 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22절). 예수님은 이미 자신 앞에 놓인 십자가를 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께 간구하셨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결국 그 잔을 마셨다. 그는 헤로데에게 목이 베이는 순교를 당했으며(사도 12,2), 요한은 파트모스로 귀양을 갔다. 

 

1. 복음 해설과 교부 가르침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26절)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28절)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겸손과 섬김 속에서 나타난다. 참된 제자는 남을 섬기며 자신의 뜻을 낮추어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Serm. 138,2 의역) 예수님의 섬김과 낮아지심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적인 사랑이다. 

 

교회는 이 복음을 통해 제자들이 세속적 야망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섬김과 순교를 통해 참된 영광을 얻는 길을 보여 준다. 교리서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셨으며, 제자들도 그 길을 따라야 한다.”(521항 의역) 또한,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자리가 주는 이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은총에 합당한 이에게 주어진다고 가르치신다.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23절) 

 

2. 야고보 사도의 모범

야고보 사도는 처음에는 수난과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후에는 주님의 뜻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다. 그의 삶은 순교적 제자직의 완성을 보여 주며, 우리가 신앙 속에서 견디어야 할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제자는 스승을 본받아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과 영광이 드러난다.”(Homilia in Matthaeum, 88 의역) 

 

3.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우리도 수난과 섬김의 신앙으로 세속적 욕심이 아닌,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참된 제자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십자가를 통한 성장을 노력하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섬김으로써, 영적 성장과 하늘 나라의 참된 영광을 체험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견디는 믿음을 갖도록 하여야 한다. 야고보 사도처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믿음과 순종으로 끝까지 따라가는 삶이 중요하다. 

 

4. 삶의 적용

일상에서 겸손과 섬김을 실천하며, 세속적 욕심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며, 어려움과 시련 앞에서도 신앙을 견디며, 십자가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야고보 사도의 순교적 모범을 본받아, 믿음과 충실함을 말과 행동으로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사도 야고보 

오늘 우리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분인 사도 야고보를 기립니다.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도가 두 분이 계시는데, 한 분은 알패오의 아들로서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지며(마태 13,55; 마르 6,3; 갈라 1,19), 훗날 예루살렘 교회의 책임자 곧 주교로 봉직하셨던 분으로 추정되는 야고보이며(축일 5월 3일), 또 한 분이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의 형인 야고보입니다. 이 야고보 사도는 44년경 사도로서는 처음으로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시며, 그분의 유해는 여러 곳을 거쳐 지금은 도보 순례로 유명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주교좌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교회는 이 두 분을 구별하고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소(小) 또는 차(次) 야고보로,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대(大) 또는 장(長) 야고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제베데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다가와 무엇인가를 청한다는 이야기로 열립니다. 마태오 복음저자가 원전으로 사용했을 마르코 복음에는 “제배데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이름이 직접 거명되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두 아들의 자리를 어머니가 대신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르코 복음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오른쪽과 왼쪽 자리를 직접 청하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마태오 복음 저자는 이들의 청원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여, 이 두 사도의 명예에 흠을 내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어머니를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속적인 자리로 취급되고 있는 오른쪽과 왼쪽 자리에 관한 진정한 의미와 수용에 관한 질문만큼은 두 사도에게 직접 건네십니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그것은 결국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 곧 그분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을 받아들일 때 가능한 자리로 선포됩니다.

 

한편,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하는 언급에서, 우리는 이들도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애정어린 가르침이 펼쳐집니다. 오늘 말씀의 근본적인 메시지가 이 가르침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일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자는 스승을 따르는 사람이어야 하기에, 스승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면”, 제자들도 마땅히 섬김의 삶을 그대로 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사도 야고보는 물론 다른 모든 사도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한 생을 섬김의 삶으로 채워나가신 분들입니다. 사도들은 가끔 섬김을 받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오늘 스승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죄송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종으로서의 길, ‘종들의 종’으로서의 길을 걸어가셨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야고보를 비롯한 사도들을 기초 삼아 세우신 교회에 우리를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사도들을 본받아 이웃을 섬기는 삶을 자랑할 수 있는, 은총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PS: 암 투병중이신 고모 병원 방문으로 늦게 올려 죄송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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