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묵상 에세이 2부> 고해성사, 잃어버린 은총을 회복하는 샘 |
|
|---|---|
|
<묵상 에세이 2부> ✦ 고해성사, 잃어버린 은총을 회복하는 샘 최근 저는 고해성사의 은총을 더욱 깊이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저는 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세속과 피조물에 대한 집착을 끊고,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대중매체와 각종 미디어가 사람의 말과 욕망, 죄와 악을 매우 빠르게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이러한 매체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합니다. 수 년째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있으며, 전화 통화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문자로 필요한 내용만 주고받고, 휴대전화 역시 꼭 필요한 용도로만 사용합니다.
이러한 삶은 세상에서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유혹과 소음으로부터 제 마음을 지켜 주었습니다. 덕분에 한 달에서 두 달에 한 번 정도 고해성사를 보며 은총의 상태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06. 너희에게 당부하는 단식,11) "죄를 짓기 쉬운 기회도 피해야 한다. 이 때문에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는 너희 영혼 안에 순결과 은총의 빛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347. 이 빛나는 길,10) "너희는 주변의 극심한 악 -- 너희가 사는 곳을 더럽히는 엄청난 불순결일랑은 쳐다보지도 말아라. 텔레비전 시청을 끊어버려라. 너희 영혼 안에 빛을 간직하기 위해서이고, 또 너희 생활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잠심과 묵상과 기도에 바치기 위해서이다."
은총의 상태를 유지하면 기도가 의무가 아니라 삶이 되고, 성체성사는 영혼의 생명이 됩니다. 복음을 전할 용기와 힘이 생기고, 마음은 마치 도가니처럼 뜨겁게 타오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목마르다."고 하신 말씀처럼 영혼 구원에 대한 갈망이 깊어지고,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기꺼이 협력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삶의 중심도 점차 나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옮겨집니다.
이것이 바로 은총의 힘입니다.
반대로 은총이 약해지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기도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기도하기 싫어지고, 기도에 정성을 다하지 못하며, 집중도 어려워집니다. 평일 미사를 소홀히 하게 되고, 성경 말씀보다 세상 뉴스와 돈 버는 일, 사람이나 피조물에 의지하는 마음,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에 더 마음이 끌리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은총이 약해지고 죄가 영혼 안에서 힘을 얻고 있다는 표징입니다.
이런 신호를 느낀다면 미루지 말고 고해성사를 통해 다시 은총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각자의 영적 상태에 맞게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적 생활이 비교적 안정된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세상의 유혹 속에서 자주 흔들리는 사람이라면 더 자주 고해성사를 보는 것도 큰 은총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영적 변화를 느낄 때마다 고해성사를 통해 다시 은총을 회복하려고 노력합니다. 최근에는 3일 간격으로 세 차례 고해성사를 보면서 은총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더욱 자유로워졌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더욱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복음을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은총은 사랑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소란스럽게만 느껴졌던 사람들도 이제는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을 축복하며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최근에 나누었던 「은총의 길로 다시 걸어가야 할 때(회개와 봉헌의 갱신)」 에세이에서도 소개했듯이, 성모님께서는 대환난기의 가장 중요한 영적 징표 가운데 하나로 '은총의 상실'을 말씀하십니다.
(486. 대환난기,10) "대환난이 너희 모두에게 닥쳐왔다. 사탄의 극심한 위협에 시달리며 악령들에 의해 크게 손상을 입고 있는, 내 불쌍한 자녀들인 너희 모두에게 말이다. 너희가 처해 있는 위험은 ‘은총’의 상실과 하느님과 일치하는 생명의 상실인 바, 이는 내 아들 예수께서 ‘속량’의 순간에 너희에게 얻어 주신 것으로서, 그때 그분은 너희를 악마의 종살이로부터 구해내시고 죄로부터 해방시키신 것이다."
이어지는 211번 「더 이상은 죄짓지 말아라」 메시지에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을 잃어버려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살아간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486번 「대환난기」 메시지에서는 사람들이 이제 죄를 악으로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죄를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칭송하기까지 한다고 경고하시며, 그 배경 가운데 하나로 대중 전달매체의 기만적인 영향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죄를 죄로 인정하는 순간, 이미 회개의 첫 단계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회개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211. 더 이상은 죄짓지 말아라,5-6) "불행히도 인류는 나의 이 메시지에 여전히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계속 하느님께 반항하면서 그분 사랑의 법을 완고하게 거부하는 길로 나아갈 따름이다. 죄 자체를 부인하고, 더없이 추악한 도덕상의 문란(紊亂)도 잘못 이해된 자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에 이르렀다. 내 원수인 사탄이 그렇듯 교활하게 너희를 꾀어 넘긴것이다. 그래서 허다한 사람들이 죄의식마저 상실해버려서, 갈수록 많은 죄를 지으며 정당화한다. 죄의식이 없으니 통회도 거의 사라져버렸다. 이것이 회개의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인데 말이다." (486. 대환난기,11) "사람들이 이제는 죄를 악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때때로 죄를 참으로 가치있는 어떤 것, 훌륭한 무엇으로 칭송하기까지 한다. 대중 전달 매체들의 기만적인 영향으로 이렇듯 죄를 악으로 의식하는 태도마저 점차로 사라져서, 사람들이 갈수록 많은 죄를 지으며 그것을 정당화하고, 더는 고해성사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이 말씀은 성모님께서 바라보시는 죄와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가 반드시 같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성모님께서는 죄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1. 더 이상은 죄짓지 말아라,3-4) "더 이상은 죄짓지 말아라! 더 이상은 내 성자 예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아라. 그분은 이미 너무도 많은 능욕을 받으셨다. 회개하여, 기도와 보속의 길로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결국 죄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사랑의 친교를 이루시기 위해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계명은 우리를 얽매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하느님과 더욱 깊은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이끄시는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죄를 끊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세상의 가치관이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사로잡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셨지만, 우리는 어느새 부와 성공, 인정과 편안함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남들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하고, 남들이 누리는 것은 나도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세상의 유혹들이 하느님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여 우리의 마음과 신뢰를 빼앗는 데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도 오늘날 사람들이 수많은 거짓 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405. 표범같이 생긴 짐승,10)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출애 20,3 참조) ─ 고 하신 주님의 계명에 대해 프리메이슨은 다른 거짓 우상들을 세운다. 허다한 자들이 그런 우상들 앞에 엎드려 절하고 있는 오늘날이다.
오늘날 우리가 경계해야 할 우상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형상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며,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바치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우상이 됩니다.
우리는 일하고 가정을 돌보며 이웃을 사랑하는 책임을 충실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 안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하느님을 향하고, 그분을 삶의 가장 첫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세상 안에서 살아가되 세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의 작은 실천 안에서도 드러납니다. 특히 금요일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신 날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금육과 절제를 권고하며 그 사랑을 기억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우리는 이날만큼은 세상의 즐거움보다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묵상하며, 감사와 보속의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기도와 속죄의 삶은 마리아 사제운동뿐 아니라 메주고리예에서도 성모님께서 일관되게 요청하시는 초대입니다.
단식은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물질과 욕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몸과 마음으로 고백하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또한 단식을 사랑으로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음식뿐 아니라 술과 담배, 사치와 탐욕, 험담과 미움, 시기와 질투, 분노와 악습 등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걸림이 되는 모든 것을 끊어 내는 것 역시 하느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단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깊이 성찰하고 올바르게 식별하며, 회개를 통해 다시 은총의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기도와 속죄의 삶을 끊임없이 요청하시는 이유도, 우리 모두가 하느님과의 친교를 회복하고 끝까지 은총 안에 머물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루르드 발현을 기념하는 538번 메시지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호소하십니다.
(538. 샘으로 와서 씻어라,3-4.8) "샘으로 와서 씻어라. 더러워진 자는 씻을 필요가 있다. 너희 영혼의 아름다움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죄이다. 죄는 영혼에서 성화 은총을 앗아가고, 주 하느님과 나누는 생명의 친교로부터 너희를 떼어 놓는다. 죄는 너희로 하여금 사탄의 종살이로 돌아가게 하고, 그리하여 사탄이 그의 악한 지배력을 너희에게 행사하게 된다. 즉 죄가 너희를 영원한 멸망의 길로 데려가는 것이다." "샘으로 와서 씻어라. ‘하느님 자비’의 샘물 속에 잠겨라. 너희는 ‘화해의 성사’를 통해, 창에 찔리신 ‘예수 성심’에서 쏟아져 내리는 이 샘물을 받게 된다. 예수께서는 당신 ‘구원사업’의 고귀한 열매로서 그 성사를 제정하셨으니, 너희의 극심한 나약함을 만나 주시려는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신 후 사도들에게,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다.'(요한 20,23) 하고 말씀하셨다. 너희 영혼이 죄로 흐려질 때마다 깨끗이 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비’가 온 인류에게 쏟아지게 하는 유일한 샘이니, 예수께서는 이 ‘성사’를 통해 새 마음을 기르시어 생활을 고칠 수 있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 고귀한 ‘성사’에 의해서만 그분의 자비로우신 사랑이 교회와 온 인류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왜 고해성사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일깨워 줍니다. 죄는 단순히 잘못된 행동 하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 안에 머무는 성화 은총을 약화시키고 하느님과의 생명의 친교를 흐리게 합니다. 반대로 화해의 성사는 그 잃어버린 은총을 다시 회복시켜 주는 하느님 자비의 선물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를 가볍게 여기고, 죄를 정당화하며, 고해성사를 멀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시대이기에 우리는 더욱 자주 하느님 자비의 샘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해성사는 우리를 심판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을 씻어 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죄인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넘어질 때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언제나 용서하시며 당신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자비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십시오. 화해의 성사를 통해 하느님 자비의 샘으로 나아가십시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잃어버린 은총을 회복시켜 주시며, 다시 당신과 사랑의 친교 안에서 살아가도록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 함께하는 가톨릭 기도 (체나콜로)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190671 |
07.18.토 / 한상우 신부님 |
04:30 | 강칠등 |
| 190670 |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
04:15 | 조재형 |
| 190669 |
섭생(攝生) |
01:57 | 김중애 |
| 190668 |
하느님을 느끼려면 어떻게 할까? |
01:56 | 김중애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