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8일 (토)
(녹)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이루시려고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묵상 에세이 2부> 하나의 복음, 하나의 길 (좁은 문으로 가는 일치의 길)

스크랩 인쇄

박소영 [b38927] 쪽지 캡슐

2026-07-17 ㅣ No.2952

<묵상 에세이 2부>


✦ 하나의 복음, 하나의 길 — 좁은 문으로 가는 일치의 길

 

하루에 두 번, 서로 다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같은 복음 말씀인데 왜 신부님들의 강론은 이렇게 다를까?"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하면서, 그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상처받으시고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곤 합니다. 

 

저는 2023년부터 여러 영상과 글을 통해 한 가지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해 왔습니다.

 

복음 또한 본질적으로 하나의 길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 곧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어가라”(마태 7,13-14)는 그 길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왜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하나의 길이 여러 갈래처럼 보이게 되는 것일까요?



이 문제는 앞서 다루었던 「진리를 잃어버린 시대, 이성의 절대화와 상대주의의 독재」에서 언급했듯이, 현대의 합리주의적 사고와 상대주의적 경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기준에 맞추어 해석하고, 자신의 영성적 틀 안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향은 교회 안에서도 나타납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신심과 기도 전통이 시대적 변화와 개인의 사목적 판단 속에서 그 의미가 약화되거나,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오던 성시간, 첫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 묵주기도 등의 실천이 점차 사라지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복음은 점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진리의 길"이라기보다, "각자의 관점과 해석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여겨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반복해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곧이곧대로 선포하며, 곧이곧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의 삶과 일치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과 일치하도록 우리를 가장 깊이 양육하실 수 있는 분은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과 닮은 사람으로 길러 주시며, 복음 말씀을 온전히 살아가도록 이끄시는 어머니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과 함께할 때 우리는 더욱 깊이 예수님과 일치하며, 오직 그분만을 위해 살아가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7. 오직 내 아들 예수님을 위하여,3)

"그와는 반대로 오직 내 아들 예수님만을 위해 살면서, 복음을 곧이곧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나와 함께, 나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 까닭은, 오직 나만이 그들의 정신과 마음이 더욱더 깊이 내 아들 예수님과 일치하도록 길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이 엄마의 은밀한 감도(感導)를 따라, 마치 내 손에 이끌리듯이, 다만 예수님만을 위해 활동하게 될 것이다."

(68. 너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13)

"신앙이 이 시대에는 온통 파탄에 이른 듯 보일지라도 심란해하지 말아라. 너희가 진리 안에 머물고자 한다면 내 아들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단 한 마디도 부정하면 안된다. 모든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복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모님께서는 복음을 어린아이의 단순함과 순교자의 열성, 그리고 증거자의 충실성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좁은 문이며 좁은 길입니다.

 

이 길은 가장 단순하고 아름다운 길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길입니다. 기도와 참회, 희생과 덕행의 실천, 신뢰와 희망, 그리고 완전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마음과 삶 전체를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는 길입니다.

 

(282. 나의 책,8-11)

"나는 하나의 단순하고 아름다운 길, 그러나 어려운 길 -- 오, 과연 어려운 길이다! -- 을 지시한다. 너희가 봉헌을 실천하며 살고자 한다면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너희에게 가르치는 것이니, 나와 함께 사는 습관이 붙도록 너희를 구체적으로 육성한다.

또한 가장 내 마음에 두고 있는 말을 한다. 그러기에 이것은 예수께서 '복음'에서 하신 말씀과 똑같은 말이다. 너희는 오늘날 어린이의 단순함과 순교자의 열성, 그리고 용감한 증거자의 충실성을 가지고 '복음'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곧이곧대로 살아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기도와 참회, 희생, 덕행의 실천, 신뢰와 희망, 더욱 완전한 애덕 실천의 길로 부르고 있다."

 

만약 이러한 복음을 곧이곧대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곧 기도와 참회가 없고, 희생과 덕행의 실천을 외면하며,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희망, 그리고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말입니다.

 

그러한 삶은 말씀처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불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나아가 진리에서 벗어난 가르침에 흔들리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릇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게 될 위험에 놓일 수 있습니다.

 

(498. 내가 너희에게 맡기는 사명,5)

"너희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복음’에 충실한 사도들이 되어, 복음을 너희 삶에 옮기며 곧이곧대로 선포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거짓 교사들(2 베드 2,1)이 허다한즉, 그들의 그릇된 가르침에 넘어가지 마라. 새로운 교리들이 일반적인 신봉을 받고 있더라도 너희는 그런 것들에 현혹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그분의 ‘진리’도, 과거나 현재나 또 언제나 영구 불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곧이곧대로 살아가는 삶은 우리를 예수님과 더욱 깊은 일치로 이끌고, 궁극적으로 하느님과의 사랑의 결합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완성을 아래 제1독서는 아름다운 ‘혼인’의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2026년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1독서를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16.17ㄷ-18.21-2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6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17 거기에서 그 여자는 젊을 때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올 때처럼 응답하리라.

18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는 네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21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22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의 참된 의미는, 주님을 안다는 것은 주님과의 “사랑의 결합”, 곧 영적 혼인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이 혼인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 계명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시고,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우상들 앞에 머무르지 않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을 “나의 주님”이라 고백하며 그분 안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과의 친밀한 일치, 곧 영적 혼인의 자리로 이끄시며, 그 안에서 당신 자신을 더욱 깊이 알게 하십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 에세이 「참된 사랑의 길 — 하느님 사랑에서 영적 혼인까지」에서 이미 나눈 바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우리의 영적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 곧 “영적 혼인”입니다.

이는 마치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처럼 준비된 삶입니다.

 

묵시록은 이를 “거룩한 도성(새 예루살렘)”으로 표현합니다.

 

(묵시 21,1-2)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거룩한 도성이 지금 우리의 마음 안에서도 건설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악과 욕정의 유혹을 끊고,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 드리며, 그분을 첫째 자리에 모실 때 이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은총과 기쁨 안에 머물게 되고, 마치 창조 때의 순수한 상태를 회복하게 됩니다. 또한 악을 이기고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483. 거룩한 도성,8-13)

너희 천상 엄마에게 맡겨진 임무는 다음과 같다.

거룩한 도성은 우선, 내 모든 자녀들의 마음과 영혼 안에, 즉 생명 안에 건설되어야 한다.

이는 너희가 악과 욕정의 모든 유혹을 끊고 돌아와, 당신과의 영원한 생명의 일치 안에 살도록 너희를 이끄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자리를 내어 드릴 때 이룩된다.

그리하면 너희는 죄의 종살이로부터 해방되어 은총과 순결과 기쁨을 체험하는 상태를 회복하게 되는데, 그것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최초로 범죄하기 이전에 아담이 누리던 생명의 일상적 상태이다.

그때 너희는 천국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며, 악과 ‘악마’를 이긴 정복자가 되고, 주님께서 너희를 위해 예비하신 복락을 차지하여, 너희 자신이 그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어좌에 앉아 계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내가 하는 말은 확실하고 참된 말이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나는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에서 솟는 물을 거저 주겠다. 승리하는 사람은 이것들을 받을 것이며, 나는 그의 하느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묵시 21,5-7 참조)

 

제가 이 글에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입니다.

 

하느님과의 혼인, 곧 완전한 일치로 나아가는 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 안에 있습니다.

 

그 삶은 회개를 통해 영적으로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지고, 겸손과 가난, 순결과 순종 안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삶입니다. 또한 복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기도와 속죄 안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충실히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처럼 복음의 단순함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은 결국 우리를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 곧 영적 혼인의 신비로 이끌어 줍니다.

 

 

* 함께하는 가톨릭 기도 (체나콜로)

  블로그: https://blog.naver.com/letspraytogether1004

  채널: https://www.youtube.com/@letspraytogether100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2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