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6일 (목)
(녹)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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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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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7-15 ㅣ No.190624

김건태 신부님_하느님의 방식

대부분의 사람에게 힘 있는 사람들은 앞에,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은 뒤에 서 있는 존재로 인식됩니다. 부자들은 앞서가며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들로, 빈자들은 뒤처지며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로 취급됩니다. 식자들은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영광을 당연한 것으로 요구하며 가는 길마다 꽃길이어야 하나, 배운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무언가 주어지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많이 소유한 사람들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아도 될 기회를 많이 누리나,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늘 타인의 주장에 동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곤 합니다.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게 사는 사람들은 말할 권리가 자주 주어지나,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권리는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행동하시지 않고, 그들처럼 생각하시지 않고, 그들과 같은 판단 기준을 활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 인간사회의 모든 것은 정반대로 작동합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됩니다. 힘 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이 되고, 식자들과 현자들에게 닫혀 있는 경이로운 현실들을, 배운 것은 별로 없지만 순박한 사람들은 곧바로 알아봅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이 당신의 가르침에 귀를 닫고 있으나, ‘철부지들’이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현실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경탄하시며 아버지께 찬미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이 말하고 있는 ‘철부지들’은 우리가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단순하고 순박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많이 가지지 못하고 배우지 못해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설 수 없었으며, 살아가면서 자랑할만한 업적을 남기거나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소시민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느님의 일에 마음을 온전히 여는 감수성,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이 소유하지 못한 감수성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실은 이 철부지들이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입니다. 세속적인 잣대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 또는 신앙인의 눈으로 본다면, 이들이야말로 진정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존재로서, 하느님의 뜻이 담긴 그분의 일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허무’임을 우리는 신앙을 통해 익히 알고 있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고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오늘 예수님은 아버지께 올리는 찬미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 모두, 많이 가지고 있고 많이 알고 있고 많이 체험하고 있음을 떠나, 오로지 좋으신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일에 마음을 모으고 뛰어들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하루, 이 하루를 허락해주신 좋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하느님 바라기’처럼 그분이 원하시는 바에 따라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나서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그렇습니다,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신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25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혜로운 자와 철부지는 단순히 지식이나 나이의 문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혜롭다는 자는 세속적 지혜와 자기 의로움에 의존하는 사람,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사람이며, 철부지는 세속적 교활함이나 죄에서 멀리 떨어진 순수한 마음, 겸손한 사람을 의미한다. 주님의 은총과 구원의 신비는 교만한 지혜를 가진 자에게는 감추어지고,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느님은 자기를 낮추는 이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자기를 높이는 이에게는 감추신다.”(De Trinitate, 8,10 요약) 우리는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었지만, 마음을 열지 않으면 하느님의 깊은 뜻은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27절)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아들에게 맡기셨다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사랑의 모든 것이 아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아들을 통해서만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를 통해서만 아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자 한다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를 알고, 그 안에서 순종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성 보나벤투라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신비는 성령 안에서만 완전히 드러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믿음과 순종, 그리고 사랑이다.” 

 

우리는 항상 철부지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교만하거나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하느님의 신비를 막는다. 예수님을 깊이 알고, 그분의 말씀과 삶을 본받는 것이, 곧 하느님을 아는 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아는 삶을 살 때, 진정한 순종과 사랑이 나타난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단지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낸다. 기도와 사랑, 용서와 봉사로 하느님의 뜻을 살아내는 삶이 필요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겸손과 신뢰, 그리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르친다. 지혜로운 세상 사람들의 교만함을 피하고, 철부지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아들과 아버지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를 이해하며 참된 구원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마태11,27ㄱ) 

 

'오, 보나벤투라!' 

 

오늘 복음(마태11,25-27)은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11,25-26)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11,27) 

 

오늘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형제요 제자인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먼저 오늘 뜻깊은 영명축일을 맞이하신 형제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 보나벤투라!'

'오, 좋은 일이여!'

'보나벤투라(Bonaventura)'는 '좋은 운명', '뜻밖의 행운'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이 어렸을 적에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일 때, 어머니가 그를 성 프란치스코에게 데려가 기도를 요청했는데, 프란치스코의 중재기도로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두고 "오, 좋은 일이여!"(보나벤투라)라고 외쳤는데, 그때부터 '보나벤투라'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만인의 형제'라고 부릅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하게 하나가 되는 것'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표지로 '그리스도의 오상(다섯상처)'을 받으셨고, 훗날 사람들로부터 '또 하나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라는 칭호도 받으셨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형제요 제자인 성 보나벤투라는 '진리의 깨달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은 분명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빛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진리를 알 수 없으며, 진리란 명상과 기도로 영혼을 끊임없이 단련하여 하느님과 직접 일치할 때 알 수 있는 것이다."(나무위키사전 참조) 

 

보나벤투라 성인의 천상 탄신일을 맞이하여 성찰합니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진리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려 하고 있는가? '머리와 지식으로', 아니면 '몸으로', 아니면 '명상과 기도로' 하고 있는가?

다 중요합니다. 

 

저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명상과 기도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려고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그런 삶에 부족한 결과'라는 깊은 성찰도 하게 됩니다.

보다 더 명상과 기도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한다면, 조금 후에 지금을 두고 "오, 보나벤투라!"라고 외치게 되지 않을까? 

 

우리네 삶 속에서 '보나벤투라'가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잘 견디어 내어서 훗날 "참으로 그때가 보나벤투라였어!" 라고 외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더욱 더 명상과 기도로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물려고 노력하는 철부지들이 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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