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5일 (수)
(백)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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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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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7-14 ㅣ No.190613

주일에는 미사가 네 번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 5시 미사, 주일 오전 10시 미사, 주일 낮 12시 미사, 그리고 오후 3시 미사가 있습니다. 저는 주로 주일 오전 10시 교중미사와 오후 3시 미사를 담당하고, 부주임 신부님은 토요일 오후 5시 청년 미사와 주일 낮 12시 영어 미사를 담당합니다. 토요일 5시 미사는 청년들이 전례를 담당하기 때문에 활기찬 면이 있습니다. 주일 낮 12시 미사는 영어 미사라서 제게는 조금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할 때도 있지만, 주일학교 학생들과 미국 분들을 만나는 신선함이 있습니다. 주일 오전 10시 미사는 마치 홈그라운드에서 경기하는 것처럼 편하고 친숙합니다. 매주 만나는 교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 오후 3시 미사는 마음이 조금 홀가분합니다. 한 주간의 주일 사목이 마무리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부주임 신부님이 여름 행사로 자리를 비우거나 휴가를 가면 제가 청년 미사와 주일학교 미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사목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혼자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면 지치고 힘들지만, 함께 짐을 나누어지면 기쁨이 됩니다.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 부주임 신부님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휴가를 편하게 다녀올 수 있고, 본당의 여러 사목도 함께 나누어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기를 바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서로 돕고, 서로 믿고, 서로 부족함을 채워 주며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신학생 때 본당 청년들과 함께 천마산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의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는 비가 곧 그칠 테니 그냥 저녁을 먹고 텐트를 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산에서는 폭우가 위험할 수 있으니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서로 의견이 분분할 때 모두가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신학생이니까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나 봅니다. 순간 저는 당황했습니다. 비가 조금 내릴 거로 생각하고 그냥 머물자고 하면 짐을 옮기지 않아도 되고, 밥을 계속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폭우로 변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안전한 곳으로 짐을 옮기자고 하면 안전하기는 하지만, 비가 금방 그치면 괜히 사람들을 번거롭게 한 선택이 됩니다. 그때 저는 선택이란 단순히 머리로 계산하는 일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제가 되고 나서도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하였습니다. 어떤 선택은 참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선택은 아쉬움과 후회가 남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대부분의 신자분이 부족한 저의 선택을 존중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하신 결정이니 믿고 따르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늘 최선의 선택, 최상의 결정을 한 것은 아닙니다. 더러 부족했고, 미흡했고,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자들이 믿고 따라주었기에 사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택의 순간마다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안다는 교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청하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듣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걸어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큰 사명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라는 사명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처음부터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말주변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런 큰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능력만 보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말솜씨만 보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 말씀이 모세에게 주어진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사람이어서 사명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기에 모세는 위대한 사명의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능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모로, 봉사자로, 사목자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도 우리의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부족해도, 때로는 우리가 두려워해도, 때로는 우리가 말주변이 없어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면 길이 열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을 찾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 계산이 빠른 사람, 자기주장이 분명한 사람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조금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 하느님께 의지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과 함께 걸어갈 줄 아는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철부지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참된 지혜는 많이 아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데 있습니다. 참된 선택은 나에게 유리한 길을 고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길을 걷는 데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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