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2일 (일)
(녹) 연중 제15주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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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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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7-11 ㅣ No.190554

미국에서 성당이나 본당이 통폐합되는 것을 영어로 머지(Merger)’라고 합니다. 코네티컷 교구도 많은 본당이 통폐합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오클랜드 교구도 그런 과정에서 한인 공동체가 자리를 옮겨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민 공동체는 사제가 있을 때는 미사와 성사를 중심으로 활기를 얻지만, 사제가 없으면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저는 두 달에 한 번 엘파소 한인 공동체를 방문합니다. 그곳에는 한국인 사제가 없습니다. 교우들은 주일에는 영어 미사에 참례하고, 매주 화요일에는 사제관에 모여 기도 모임을 합니다. 대부분은 70세가 훌쩍 넘으신 어르신들이지만, 젊은 두 가정도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고백성사, 강의, 미사를 하였고, 5월에는 고백성사와 장례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비록 작은 공동체이지만, 저는 그곳에서 따뜻한 신앙의 마음을 봅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오고,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주고, 미사에 참례한 모든 분이 고백성사를 보았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여러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교우들이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께서 전국의 공소를 다니며 고백성사와 미사를 봉헌하셨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신앙은 큰 건물이나 많은 숫자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향한 마음,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려는 정성, 공동체를 지키려는 사랑이 있을 때 신앙은 살아 있습니다.

 

엘파소 방문 중에 한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제님에게는 딸이 세 명 있습니다. 큰딸은 4년 전에 보스턴 대학에 입학했고, 이제 곧 졸업한다고 합니다. 둘째 딸은 이번에 휴스턴의 라이스 대학에 합격했다고 합니다. 막내딸은 4년 후에 뉴욕의 NYU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형제님은 자녀들이 좋은 길을 걸어가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족이 매일 저녁 함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엘파소 방문 때도 세 딸이 함께했고, 두 딸은 미사 복사를 했습니다. 형제님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신앙 안에서 기쁘게 사는 가정의 자녀들이 잘 자라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성실하게 공부하면 미국에서는 장학금을 받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형제님의 두 딸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비게이션을 생각했습니다. 목적지를 정확하게 입력하면 자동차는 길을 찾아갑니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도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줍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인생의 목적지를 하느님께 두면, 때로는 흔들리고 돌아가더라도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가정은 신앙이라는 목적지를 분명히 정했기에 희망과 사랑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에는 세 가지가 나옵니다. 씨 뿌리는 사람, , 그리고 토양입니다. 씨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은 능력과 재능을 말할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 외모가 준수한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장애가 있는 사람, 지적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 유전적인 어려움을 지닌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씨앗이 있습니다. 토양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은 환경을 말할 것입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 부유한 집에 태어난 사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 부모가 늘 다투는 집에서 자란 사람,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환경은 분명히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먼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씨 뿌리는 사람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없다면 씨는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토양이 있어도 씨가 뿌려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씨 뿌리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마음에 믿음의 씨앗을 뿌립니다. 사제는 교우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을 뿌립니다. 교우들은 서로에게 위로와 사랑의 씨앗을 뿌립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도 씨앗입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도 씨앗입니다. 좋은 말은 사람을 살리는 씨앗이 됩니다. 따뜻한 격려는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나 상처 주는 말, 판단하는 말, 험담하는 말도 씨앗이 됩니다. 그것은 마음을 메마르게 하고, 공동체를 갈라놓고, 신앙의 싹을 말라 버리게 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일부러 나쁜 토양에 씨를 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좋은 씨앗을 뿌리기보다 분노와 이기심의 씨앗을 뿌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은 좋은 씨앗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도 좋은 밭이 되어야 합니다. 길바닥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들어도 곧 잊어버립니다. 돌밭 같은 마음은 잠시 기뻐하지만, 시련이 오면 쉽게 포기합니다. 가시덤불 같은 마음은 세상의 걱정과 재물의 유혹 때문에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좋은 땅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인내하며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땅은 처음부터 완성된 땅이 아닙니다. 농부의 수고로 만들어지는 땅입니다. 돌을 골라내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기도의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미사의 은총으로 물을 주어야 합니다. 이웃을 위한 사랑과 배려로 흙을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교만과 욕심의 돌을 골라내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의 잡초를 뽑아내야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가 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앙의 길에도 고난은 있습니다. 엘파소 공동체처럼 사제가 없어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매일 함께 기도하며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져도 기도 모임을 지키고, 공동체를 지키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척박한 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하느님의 말씀이 깊이 뿌리내린 좋은 땅입니다. 세상은 숫자와 규모를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마음의 밭을 보십니다. 세상은 조건과 환경을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믿음의 결심을 보십니다. 우리도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본당에서, 이웃과의 만남 안에서 좋은 말을 뿌리고, 사랑을 뿌리고, 용서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싹을 틔우시고, 꽃을 피우시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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