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0일 (금)
(녹)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7-09 ㅣ No.190521

예전에 캔디라는 만화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캔디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입니다.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하지만, 캔디는 주저앉지 않습니다. 울고 싶을 때도 있었겠지만, 다시 일어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캔디를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외롭고 슬픈 일을 만납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이 내 삶의 마지막이 되느냐, 아니면 새로운 길을 여는 시작이 되느냐입니다.

 

얼마 전에 캔디처럼 어려운 상황을 씩씩하게 이겨내는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자매님은 사기 결혼으로 미국에 왔습니다. 알고 보니 배우자는 유부남이었고, 폭력도 있었습니다. 결국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는 인종차별 때문에 힘들어서 이직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 직장에서는 그런 차별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매님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었습니다. 힘든 과정을 걸림돌로 여기지 않고 디딤돌로 여기는 긍정의 힘이었습니다. 저는 자매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생활의 안정을 찾고, 아이와 함께 행복한 미국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신앙은 고통을 없애 주는 마술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은 고통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힘을 줍니다. 신앙은 외로움과 슬픔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게 하는 빛입니다.

 

또 종신 부제 과정을 공부하는 부부를 만났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신앙과 삶이 일치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부부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마치는 분들이었습니다. 저에게 세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연옥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은지 물었습니다. 네 복음서 중에 어느 복음을 좋아하는지 물었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 어느 제자를 좋아하는지 물었습니다. 보통 교우들과 대화할 때는 잘 받지 않는 질문이었습니다. 마치 호기심 많은 학생이 선생님에게 질문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연옥을 설명하면서 패자부활전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교회는 성인들의 통공을 이야기합니다. 성인들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가 함께하면 연옥에 있는 영혼도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정화되어 천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뜨거운 감자는 삼키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뱉어 버리기도 아깝습니다. 잠시 기다리면 감자가 식고, 그때는 삼킬 수 있습니다. 지옥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국으로 곧바로 들어가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영혼이 정화되는 곳, 그것이 연옥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네 복음서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긴박함이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예수님의 공생활과 수난과 부활을 전합니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삶을 구약의 완성으로 전합니다. 유대인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쓰였습니다. 루카 복음은 이방인 공동체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돌아온 아들, 자캐오, 백인대장의 이야기를 보면 하느님의 자비가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도 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을 영적인 스승으로, 태초부터 계신 말씀으로 선포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라는 고백처럼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곧 하느님이심을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저는 루카 복음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루카 복음에는 가난한 이들, 죄인들, 병자들, 이방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이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열두 제자 중에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제자를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나 역시 오늘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사도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신앙인의 길을 이야기합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걷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신앙의 길은 특별한 사람만 걷는 길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가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지혜와 분별이 충만하여 주님의 길을 충실히 걸어간다면 우리는 신앙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이 신앙의 길을 사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걱정하기보다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고, 오늘 내게 주어진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신앙인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캔디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 고통을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는 사람,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지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신앙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신앙이 있다고 해서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이 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은 고통 중에도 하느님의 뜻을 찾게 하는 이정표입니다. 절망 중에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입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외롭고 슬픈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아버지의 영께서 우리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길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의인은 그 길을 따라 걷고, 죄인은 그 길에서 비틀거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비틀거릴 때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연옥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처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주님 안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20 2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190534 불효자. 03:37 이경숙
190533 이 호영. 루가....... 03:33 이경숙
190532 악을 키우는자. 03:23 이경숙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