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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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2부> 하느님 사랑의 부재(영혼의 죽음)에 대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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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b38927] 쪽지 캡슐

2026-06-29 ㅣ No.2945

<묵상 에세이 2부>


✦ 하느님 사랑의 부재(영혼의 죽음)에 대한 묵상


『벼락을 맞았습니다 ― 나를 살리신 하느님』(글로리아 폴로 오르티츠)은 제가 2023년 총고해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제가 『체나콜로에서, 아버지의 뜻이』에서 고백했듯이, 2020년 이전의 저는 성공과 출세를 삶의 목표로 삼으며 살아갔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얻는 데에는 열심이었지만,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신앙은 제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었고, 영성 서적보다 경제와 과학기술, 특허, 논문, 시장과 외환 정보처럼 현실적인 성공에 도움이 되는 책들만 찾아 읽으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정화의 시간을 보내면서, 제 삶에도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묵주기도와 비르지타 성녀의 「예수님 수난 15기도」, 파우스티나 성녀의 「하느님 자비 5단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고, 조금씩 가톨릭 영성 서적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지에서 한 신부님께서 건네주신 책이 바로 『벼락을 맞았습니다 ― 나를 살리신 하느님』이었습니다.

 

처음 책을 읽으며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글로리아의 삶이 마치 제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하느님께서 제 삶에 얼마나 많은 은총과 축복을 베풀어 주셨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저를 사랑하시며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한 가지 탄식이 깊이 울려 퍼졌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진리를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평화의 길을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생각과 함께 깊은 통회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성모님께서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242. 새 예루살렘 242,1)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너(=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마태 23,37;루가 13,34)

너에게 허락된 날 동안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루가 19,42 참조)"

 

이 말씀은 단지 예루살렘(교회)만을 향한 탄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애절한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성모님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도 끊임없이 우리를 평화의 길로 초대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세상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며 회개와 기도의 초대를 뒤로 미루곤 합니다.

 

(242. 새 예루살렘 242,4-5)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예루살렘처럼, 또한 수세기 동안 고대해 온 메시아, 약속된 메시아이신 '하느님의 아들'마저 이 도시가 배척하고 능욕하여 마침내 사형선고를 내렸듯이, 오늘날 하느님의 새 예루살렘인 교회도 이 마지막 시대의 천상 예언자인 너희 엄마의 구원 사업을 너무나 자주 침묵과 부인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여러 방법으로 말해 왔으나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여러 모양으로 나 자신을 나타내 보여도 내가 주는 표를 믿지 않았다. 나의 중개 역시 그 가장 특별한 것에 대해서마저 이의를 제기하는 터였다. 오, 예수님의 교회요 하느님의 참된 이스라엘인 새 예루살렘아!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했던가...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특별한 표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며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기 전에 이미 우리를 찾고 계시며, 돌아오기만을 오래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붙잡고 있는 우상마저 내려놓도록 이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글로리아에게, 세상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돈과 재물을 섬기는 삶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야말로 참된 축복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재정 파탄으로 너를 덮쳤을 때, 그것은 네가 생각한 것처럼 벌이 아니었다. 아니 축복이었다. 그 파탄으로 너를 네 자신의 우상, 네가 섬겼던 ‘황금송아지'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 파탄은 너를 내게 돌아오게 하기 위한 나의 방법이었다."


우리는 흔히 축복을 건강과 성공, 돈과 안정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은 세상의 것을 더 많이 갖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던 것들을 내려놓게 하시는 은총입니다.

 

때로는 『욥기』처럼 시련과 고통을 허락하시고, 재정적인 어려움이나 상실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시기도 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봉헌하려 했던 것처럼, 가장 소중한 것마저 내려놓을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요구하시기도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정화되고, 거룩함으로 나아가며,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으로 빚어져 갑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이며,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반대로 하느님 사랑이 없는 삶은 어떠할까요?

 

글로리아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영혼이 이미 오래전에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육신은 살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무관심했고, 사랑은 식어 있었으며, 성공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 속에서 영혼은 조금씩 질식해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영혼의 죽음이란 단순히 죄를 많이 짓는 상태가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사람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자비와 용서, 희생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교만과 욕심, 무관심과 증오가 자리 잡게 됩니다.

 

결국 영혼의 생명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만 살아 숨 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순히 봉사와 활동을 많이 하거나 지식을 쌓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살아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이웃에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벼락을 맞았습니다 ― 나를 살리신 하느님』은 저에게 하느님께서 잃어버린 한 영혼을 끝까지 찾아오시는 사랑을 다시 깨닫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죽어 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 하느님 사랑의 부재, 영혼의 죽음 (글로리아 폴로 오르티츠) - 『벼락을 맞았습니다 ― 나를 살리신 하느님』

 

주님께서 계속적으로 제게 질문하셨던 내용을 여러분이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 헌신적이고 아무런 조건에 매이지 않은 사랑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표현하신 그 사랑, 그 “카리타스", 그 자비, 그러한 "이웃 사랑"이 제 안에 없었다는 사실들을 그제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삶의 모든 순간과 사건들을 집약해서 바라본 결과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가 태어나면서부터 그분에게서 받았던 사명과 달란트인 하느님 사랑을 살아가면서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것의 부재 상태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알겠느냐, 네 영적 죽음을? 네 영혼은 이미 죽었다는 것을?"

 

그제야 매우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제 육신은 아직 살아 있으며 숨을 쉬고 있지만, 사실 저는 오래 전에 죽었다는 것을. 제 영혼은 이미 죽었으며, 그것도 질식해 죽었습니다. “영적 죽음”은 영혼이 죽은 것이며, 영혼이 질식해 죽은 것입니다.

 

모든 것에 증오심을 느끼는 영혼의 모습이 어떠한지 보셔야 합니다. 그 영혼에서 어떤 전율과 어떤 공포가 솟아 나오는지 보게 된다면....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며, 정말 불쾌하여 참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 영혼은 어떻게 하든 전 세계를 더 악하게 몰아가려고만 합니다. 무거운 죄를 안고 있는 영혼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제 영혼이 그 본보기였습니다. 저는 외적으로 볼 때 값비싼 향수 냄새를 풍기며 비싼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 안에 있던 제 영혼은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인간과 악령의 사악함의 극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늘 우울증에 시달렸고, 나쁜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했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영적 죽음은 바로 네가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고통에 대해 전혀 무관심해지면서 시작되었다. 너는 그들에 대해 그냥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네 눈앞에 보여 주었을 때, 그것은 네게 대한 나의 경고였고, 네게 경고음을 울리기 위해서였다. 네가 텔레비전이나 다른 언론 매체를 통해 사람들이 납치되어 살해당하고, 폭탄에 찢겨져 나가고, 내쫓기게 된 모습을 볼 때면, 너는 종종 그냥 피상적인 언급만 입 밖으로 내뱉었지. '어휴 이 불쌍한 사람들! 그들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얼마나 큰 죄야!’ 하지만 너는 그들의 고통에 아무런 연민도 가지지 않았다. 돌처럼 굳어 버린 네 마음에 그런 감정이 들어갈 수 없었지. 그들의 운명이 네게 부딪혀 박살이 났었다. 네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네 마음은 돌처럼 딱딱했고, 얼음장처럼 찬 벼랑이었다. 네가 지은 죄로 인해 네 심장은 돌처럼 굳어 버렸고, 얼음덩이처럼 차갑게 변해 버렸다!"

 

마침내 제 "생명의 책' 겉장을 덮었을 때,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큰 부끄러움과 슬픔이 제게 밀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가는 동안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께 얼마나 사악하고 배은 망덕하게 행동했는지를 깨닫고는 그것을 몹시 후회하면서 느낀 고통은 그보다 훨씬 더 엄청났으며 견디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지은 모든 대죄, 특히 너무도 불결한 정신과 타인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과 가혹하고 비열한 모든 감정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항상 저를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찾아 오셔서 저를 따라다니시면서 제가 당신께로 되돌아가려는 의지를 표현하는 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도구인 사람들을 늘 제 인생의 여로에 보 내셔서 저와 마주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통해 제 마음을 움직이고, 제가 당신께 돌아올 수 있게 배려하셨습니다. 당신의 도구로 쓰신 사람들을 통해 제게 말을 걸어오셨고, 당신께 주의를 돌리도록 하셨고, 종종 아주 큰 소리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또한 제 삶을 반성할 수 있도록 제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가셨습니다. 제게 시련과 힘든 시간을 주셨습니다. 제가 인생의 모든 것에 크게 실망하도록 어려움도 안겨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저를 당신께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신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말이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며 저의 의지 표현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단 한 번도 제 자유의지를 꺾으신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 수많은 부르심과 기다림을 깨닫고 제 자유의지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압니까? 그분은 마치 구걸을 하기 위해 따라다니는 거지처럼 우리 삶의 여로에서 바로 우리 옆에 서 계십니다. 그러면서 마치 거지처럼 항상 우리에게 끊임없이 애걸하시고, 우리 뒤를 따라오시며, 종종 귀찮게도 하십니다. 그분은 돌처럼 굳어 버린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려 울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당신을 냉대하고 당신께 신경도 쓰지 않거나 못 본 체할 때마다, 그분은 그 거룩한 성심 깊이 슬픔을 느끼십니다.

 

그분은 자주, 마치 십자가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당신을 낮추십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변화됨으로써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할 목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분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 저를 지옥에 떨어뜨린 분이 주님 아니신가요?"

 

이 말을 할 때 제가 얼마나 비겁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저를 벌하신 게 아니라, 이미 제 자유의지로 모든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즐거움과 쾌락에 따라,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셨고 또 그것을 언제나 존중하신 자유의지에 따라 제가 직접 결정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제 아버지와 그 일족을 제가 선택했던 것입니다.

 

제가 선택한 아버지는 하느님 아버지가 아닌 사탄과 그 졸개들이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제 삶의 아버지이며 지도자로 받들었습니다. 사탄의 의지와 거짓말에 따라 제 삶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와 그의 속임수가 가련한 제 인생의 유일한 의미였습니다.

 

제 "생명의 책”을 덮자, 제가 여전히 저 아래 끔찍한 암흑의 지옥 언저리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분명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그 어두운 구멍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 끝에는 문이 하나뿐이니, 거기를 통해 "영원한 암흑”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아무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자 절망감이 밀려들면서 저는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소리치며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성인들께 저를 구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성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그렇게도 많은 성인들과 성인의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저는 미지근한 아니 정말 나쁜 가톨릭 신자였기에….

 

하지만 그 순간엔 구출되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노동자인 성 요셉이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이든, 또는 그 누구든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를 구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알고 있는 성인들의 이름이 끊기면서 더 이상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기에 갑자기 다시 죽음에 든 것처럼 고요해졌습니다.

 

그런 적막 가운데 저는 다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위로가 없는 공허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저는 혼자이고 완전히 버림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지상에서는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분명 저를 "착한 사람", "아름다운 여자", "거룩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명성은 제가 직접 쌓아 올린 것이며, 제가 만든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저 때문에 슬퍼하면서도, 저의 "거룩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들의 "성녀"가 될 것이 분명한 제게 이런 저런 기적을 청하기 위해 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다시피 저는 너무도 불행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지상에서 슬퍼하며, “분명 성녀가 될” 저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 아무도 제가 얼마나 가망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영원한 저주 직전에, 지옥으로 가기 직전에 있었는데, 지상의 지인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제 처지와 지상에 남겨진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 사이의 간극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 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위쪽으로 눈을 돌렸고, 제 어머니와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지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어머니께 소리쳤습니다. "엄마! 이건 너무 치욕적인 일이에요. 그들이 저를 지옥으로 내몰고 있어요. 제가 지금 갈 수밖에 없는 그곳으로 말이에요. 그곳에서 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우리는 다시 볼 수 없을 거예요."

 

그 순간 어머니께 크고 놀라운 은총이 내렸습니다. 어머니는 그때까지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굳은 자세로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당신의 두 손가락을 위로 올릴 수 있게 되었고, 제게 위를 쳐다보라는 분명한 몸짓을 보이셨습니다. 그 순간 제 눈에서 두 개의 큰 껍질이 떨어져 나갔는데, 엄청나게 아팠습니다. 그것들로 인해 제가 그동안 영적으로 장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떨어져 나가자 저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도록 아름다운 장면을 보았는데, 그 가운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언젠가 제가 진료하던 어느 환자가 제게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의사 선생님, 귀담아 새겨 두셔요! 선생님은 지금 매우 만족스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제가 지금 선생님께 하는 이야기를 상기하게 될 겁니다. 매우 처절하게 그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겁니다. 선생님이 가장 위험할 때, 이 말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위험에 처할지는 전혀 중요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무조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의 고귀한 성혈로 선생님을 덮어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셔요. 이렇게 하면 주님께서는 선생님을 결코 홀로 내버려 두시지 않을 거예요. 주님께서 당신의 고귀한 성혈로 선생님과 선생님 영혼의 구원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불현듯 이 말이 생각나자 마음에 큰 회한과 고통을 느끼면서 목청껏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를 용서하소서! 주님, 저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소서! 두 번째 기회를 주소서!"

  

 

* 원문 글 링크 : https://blog.naver.com/letspraytogether1004/224331046641

 

함께하는 가톨릭 기도 (체나콜로)
https://www.youtube.com/@letspraytogether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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