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8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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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예언자를 예언자로 알아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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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41 ㅣ No.19033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마태 10,40)라고 하십니다. 파견된 이를 대하는 것이 곧 파견하신 분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상급의 법칙을 일러 주십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마태 10,41) 예언자를 예언자로 알아보고 받아들이면, 그 예언자가 받을 상을 내가 받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참 예언자이며, 우리는 그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예언자란 누군가를 알리기 위해 파견되어 온 사람, 곧 파견하신 분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참 예언자에게는 분명한 표가 있습니다. 참 예언자는 반드시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파견하신 분의 뜻을 전하기에, 나의 비위를 맞추는 대신 나에게 순종을 청합니다. 그리고 그 요구에 순종하면, 반드시 성령의 능력이 따라옵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나를 그대로 두는 자는 예언자가 아니며, 그 말을 들어도 내 믿음이 조금도 강해지지 않는다면 그 또한 거짓 예언자입니다. 참 예언자의 말에 순종했을 때는 언제나 상이 옵니다. 이것이 예언자를 알아보는 법칙입니다. 바로 여기서 구약의 나아만 장군을 보아야 합니다. 시리아의 위대한 장군이던 그는 나병에 걸려 엘리사 예언자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얼굴도 내밀지 않고 심부름꾼을 통해 이렇게만 전합니다. "요르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2열왕 5,10 참조) 나아만은 격분합니다. "다마스쿠스의 강물이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낫지 않으냐"(2열왕 5,12 참조) 하며 발길을 돌리려 합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화나게 했습니까. 일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도리어 너무 쉬워서, 그 쉬운 말에 순종하면 부하들 앞에서 자기 영광이 깎인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장군인 자기에게는 걸맞게 대단하고 번지르르한 치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안수만 어서 해 달라던 그분들처럼, 나아만도 자기 방식의 치유만을 고집한 것입니다. 그가 그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한 것 자체가, 그가 하늘의 증언을 거부하고 땅에 속한 사람임을 드러냅니다. 그러면 나병이라는 진노는 그에게 그대로 남습니다. 그런데 그를 살린 것은 한 부하의 말이었습니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더 큰일을 하라고 하였더라도 하셨을 텐데, 그저 몸을 씻고 깨끗해지라는데 못 하실 것이 무엇입니까."(2열왕 5,13 참조) 이 부하야말로 순종을 배운 사람입니다. 그는 아마 어릴 적부터 알았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 하고 입을 벌려라" 할 때 입을 벌리면 밥이 들어온다는 것을. 작은 순종이 생명을 채워 준다는 것을 몸으로 익힌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것을 시켰어도 했을 텐데 그깟 목욕이 무어 어렵냐고 권합니다. 나아만이 마침내 자존심을 꺾고 그 쉬운 말에 순종하여 요르단에 몸을 담그자,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처럼 새로 돋아 깨끗해졌습니다(2열왕 5,14 참조). 그 작은 순종이, 자기에게 명령한 그 예언자가 참으로 하느님께 파견된 분임을 인정하는 인장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종이 표징보다 먼저임을 배웁니다. 표징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순종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됩니다. 요한 복음은 이를 놀랍게 표현합니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요한 3,33) 직역하면 "하느님께서 참되심에 인장을 찍은 것이다"가 됩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감히 창조주께 "당신은 참되십니다" 하고 도장을 찍어 드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 걸음 내디딜 때, 그 순종이 곧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께서 참되심에 찍는 인장이 됩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독을 채운 일꾼들만이 그 물이 포도주가 된 표징을 보았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파견된 이에게는 파견하신 분의 권능이 함께 주어집니다. 나라의 특명을 받은 전권 대사가 외국에 나가면, 본국은 그 대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한량없이 지원합니다. 대사의 체면이 곧 나라의 체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신다. 그분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이다."(요한 3,34 참조) 가장 완전하게 파견된 분, 곧 아버지의 말씀 자체가 되어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가장 완전한 예언자의 말씀마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쉬운 말을 마다했듯이, 안수만 청하던 그분들이 제 말을 마다했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단순합니다. 그냥 한번 해 보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죽어 가며 백억짜리 수표를 내밀며 말한다고 합시다. "사실 내가 네 아버지다. 잃어버린 너를 찾아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이것이 너를 위해 평생 모은 전 재산이다. 은행에 가서 찾아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는 시늉이라도 해 보는 것입니다. 잠깐의 창피를 무릅쓰고 은행에 그 수표를 내밀어 보는 것입니다. 찢어 버리거나 방치하면 그것은 한낱 종잇조각이 되고, 아버지를 부정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그분이 참되신지 알아보려 시도라도 한다면, 은행은 분명 돈을 내어 줄 것이고, 그제야 우리는 온전히 믿게 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그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하니, 우선 믿고 한번 실천해보는 것 외에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알게 됩니다. 제가 조원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목회 위원들에게 한 가지를 시킨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날마다 읽고 한 줄씩 단체 대화방에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위원들은 거의 다 따랐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하기 싫어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주임신부가 그것을 왜 시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실천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습니까. 그 책을 읽으며 나아간 사목위원들은 하나같이 마음이 일치하고, 순종하며, 맡은 임무를 훌륭히 해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목회를 한 것보다 그 책을 읽게 된 것이 더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요구가 있었고, 그 요구에 순종했더니, 표징이 따라온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순종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사정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께, 혹은 마음의 병으로 시달리는 분께 저는 종종 권합니다. 그 책을 읽고 날마다 성체조배를 하시라고. 그렇게 하는 분들은 표징을 봅니다. 그 힘든 병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어서 안수나 해 달라고 합니다. 안수 한 번으로 빨리 끝내고 싶은 것입니다. 제 말은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자기들이 정한 그 방식대로만 하면 나으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왜이겠습니까. 저를 예언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파견된 이가 청하는 그 요구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뜻을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교황 주일이며, 교회의 권위를 묵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태도는, 그분이 파견하신 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고스란히 달려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셨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끝까지 공경했습니다. 죽일 기회가 있었어도 "내 어찌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겠느냐"(1사무 26,9 참조) 하며 원수를 용서했습니다. 그 인품을 따진 것이 아니라, 파견되어 세워진 분이라는 그 하나를 본 것입니다.  

이제 예언자를 알아보는 법을 정리해 봅니다. 참 예언자는 반드시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나를 그대로 두는 자는 예언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요구에 순종할 때 반드시 상이 따라옵니다. 순종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는 가짜입니다. 그러니 그 인품이 훌륭하면 더 좋겠지만, 인품을 따지기 전에 그분이 파견된 분이라는 그 한 가지만으로 그 말씀에 순종해 보십시오. 나아만처럼 자존심을 꺾고, 안수만 구하던 그 손을 내려놓고, 청해진 그 작은 일에 그냥 한번 순종해 보십시오. 그 작은 순종이 어린아이의 새살처럼 우리를 새롭게 하고, 우리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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