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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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2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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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b38927] 쪽지 캡슐

14:49 ㅣ No.2939

<묵상 에세이 2부>


✦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하는 음식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고, 필요한 물건은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집 앞까지 배달됩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세상의 정보와 오락, 쇼핑과 인간관계까지 모두 손안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풍요는 늘어났고 편리함은 커졌지만 평화는 줄어들었고, 사랑은 점점 메말라져 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모님께서는 여러 메시지를 통해 그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보다 육체의 쾌락과 물질적 만족을 더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내가 눈물을 흘리는 까닭,3)

"내가 눈물을 흘리는 까닭, 너희의 이 엄마가 우는 까닭은, 너무나 많은 내 자녀들이 육체의 쾌락에 빠져 하느님을 잊고 사는데다, 어떻게 손을 써 볼 수도 없이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78. 사탄이 설치고 있다,6)

"그러나 아들아, 그들은 아직 너무도 인간적이라는 점을 네가 알아두는 게 좋겠다. 자아, 쾌락, 남의 존경, 이 세상의 재물, 사물에 대한 자기 식의 관점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256. 기도하며 깨어 있어라,3)

"세상은 내 원수의 권세에 속해 있다. 그가 자신의 교만과 반역의 영으로 세상을 지배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무리의 하느님 자녀들을, 쾌락과 죄의 길, 하느님의 '뜻'을 얕보며 그분의 계명에 불순종하는 길로 유인하고 있다."


(269. 천국의 빛으로,12)

"인류가 하느님을 거역하고 고집스럽게 타락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너희가 수확하고 있는 것은 악한 열매들, 곧 증오, 폭력, 부패, 불경(不敬), 음란, 우상 숭배이다. 육체를 우상삼아 떠받들고, 쾌락을 최상의 가치로 추구한다."


(273. 나는 십자가 아래에 있다,5)

"나는 봉헌의 서원에 충실함으로써 세속 정신에 대항하며 살고자하는 '봉헌된 영혼들'의 십자가 아래에 있다. 세속 정신은 오늘날 수많은 수도원에 침투하여 수도자들을 무(無)열성, 불순결, 방종, 세속적 쾌락 추구로 유인하고 있다."


(296. 사랑하는 아들들아, 싸워라!,12)

"내 원수가 특히 너희 나라들에서 신(新)이교주의와 도덕적 문란이라는 독으로 너희를 유혹하고 있는데, 이것이 점점 퍼져나가서 수많은 내 아들들을 그 희생물로 거두어들이고 있다. 얼마나 무수한 젊은이들이 온갖 쾌락의 추구로 악덕에 빠지고, 널리 만연된 음행과 마약의 꾐에 끌려들어 병든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러니 이들에게 치유의 손길이 얼마나 필요하겠느냐!"


(306. 너희에게 당부하는 단식,1-2)

"보속과 극기의 길을 걸어라.

오관을 극기하기 위한 방법으로 몸의 단식을 하기 바란다. 오직 육체적 물질적 쾌락을 마음껏 누리는 것만이 추구할 가치가 있는 행복이라는 기만이 오늘날 허다한 내 자녀들을 유혹하고 있으므로, 널리 퍼져 있는 이 오류를 보상하기 위함이다. "


(314. 두 군대,3-4)

"그 우두머리는 만물이 자기를 하느님으로 경배하도록 하기 위하여 오늘날에도 하느님께 정면 도전을 되풀이하는 '루치펠' 자신이다. 모든 악마들이 그와 힘을 합해 싸우고 있는데, 지금은 그 악마들이 지옥에서 지상으로 쏟아져 나와 되도록 많은 영혼을 멸망으로 이끌려고 하는 시대이다.

게다가, 이미 멸망한 모든 영혼들과 이 세상에서 이기심과 증오와 사악과 음행의 길을 걸으며 하느님을 배척하고 업신여기고 모독하며 살고 있는 자들도 그 악마들과 합세한다. 그들 중 아직 현세에 살고 있는 자들의 유일한 목표는 쾌락 추구이다. 자신들의 온갖 정욕을 충족시키면서 증오와 악과 불신앙의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사탄은 처음부터 증오와 악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먼저 편안함과 즐거움, 만족과 쾌락으로 사람을 유혹합니다. 그래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소비문화는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영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몇 달 전 저는 스타벅스 로고에 담긴 상징성에 대해 사람들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지나친 해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특정 기업이나 커피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습니다.

 

스타벅스 로고는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Siren)을 모티프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결국 파멸로 이끄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물론, 스타벅스 로고는 마케팅적으로는 '커피의 유혹'을 의미하지만, 현실을 바라볼 때에는 인간을 유혹하는 현대 소비문화의 한 단면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세이렌이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을 유혹하듯이, 현대 소비문화 역시 끊임없이 만족과 편안함을 약속하며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유혹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 나도 사야지."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니, 나도 즐겨야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니, 나도 먹어야지."

 

사람들은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 더 만족스러운 것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문제는 소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하느님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저는 지난해부터 커피를 끊었습니다. 커피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절제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사랑하는가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시간과 관심과 마음을 바치게 됩니다. 만일 하느님보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바라보고 있다면, 하느님보다 오락과 취미를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면, 하느님보다 소비와 만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정신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절제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릴 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원할 때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롭다는 사실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 쾌락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실제로 현대 문명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

"그 정도는 괜찮다."

"너만 안 하면 손해다."

"지금 즐기지 않으면 언제 즐기겠느냐."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복음은 자기 만족의 길이 아니라 자기 부정의 길이며,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문과 좁은 길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 16,24-25)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마태 7,13-14)

 

그리고 그 좁은 길을 선택하는 이들에게 놀라운 약속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마르 10,29-31)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오늘날 특별히 기도와 단식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2026년 5월 25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메시지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시간이 너희에게 기도와 단식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돌아오너라, 자녀들아.

너희의 평화이신 하느님께 사랑으로 돌아오너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 승인)


기도와 단식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단식은 하느님께 자신의 욕망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것을 붙잡고 싶어 합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단식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하느님이 계시면 이것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기도와 단식이 깊어질수록 자연스럽게 가난의 영성도 배우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복음적 가난은 하느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받는 선물로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갓난아이가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듯이 하느님을 신뢰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받는 선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감사할 줄 알고, 겸손할 줄 알며, 하느님께 의지할 줄 압니다.

반대로 마음의 부유함은 집착이 문제가 됩니다. 재물과 능력, 지식과 권력을 자신의 안전으로 삼기 시작하면 하느님을 의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초대 부산교구장이셨던 최재선 주교님께서도 이 점을 깊이 염려하셨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성직자와 수도자의 생명은 기도라고 말씀하시며, 교회가 참으로 살아 있으려면 먼저 기도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물질만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뜻합니다. 돈만으로는 인간의 마음이 채워지지 않고, 쾌락도, 성공도, 명예도 결국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인간 영혼을 채우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더 많이 버리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더 많이 즐기고 소비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기도하고 단식하라고 호소하십니다.

 

우리가 잠시 물질과 쾌락을 포기하면 세상은 우리를 어리석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비움을 통해 우리 영혼을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비록 육체는 부족함을 느낄지라도 영혼은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기도와 단식, 그리고 복음적 가난 안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께 사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2026년 5월 25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메시지 중)

"돌아오너라, 자녀들아.

너희의 평화이신 하느님께 사랑으로 돌아오너라."

 

 

함께하는 가톨릭 기도 (체나콜로)
https://www.youtube.com/@letspraytogether100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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